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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 청구된 1973년 '윤필용 사건'

입력 : 2010.09.12 09:40


 1973년 4월 박정희 대통령의 총애를 받으며 군내 실력자로 군림하던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육군 소장)은 그를 따르던 장교들과 함께 쿠데타를 모의한 혐의로 전격 구속된다.

제4공화국의 권력지도를 바꿔놓은 '윤필용 사건'은 유신 선포 직후 윤 사령관이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 등 박 대통령의 측근 실세들과 만찬을 하던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노쇠했으니 후계를 준비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 발단이 됐다.

1949년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임관한 윤 전 사령관은 1961년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 대리를 지낸 박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고 군부 내 신진세력인 '하나회'의 후원자이기도 했다.

윤 사령관의 발언내용은 박종규 경호실장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 보고됐고 대노한 박 대통령은 강창성 보안사령관에게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이 사건으로 손영길 수경사 참모장 등 '윤필용 그룹' 10명이 1~15년의 징역형을 받았고 30여명이 군복을 벗었다. 중앙정보부에서도 이후락 부장과 가까운 '울산사단' 30여명이 구속되거나 쫓겨났다.

군 관계자는 "당시 박정희 정권은 이후락-박종규-윤필용-강창성이 측근으로 서로 견제하는 양상을 보였다"며 "이후락 부장과 윤필용 사령관이 가까워지면서 권력의 균형이 깨지는 것을 우려한 박 대통령이 윤 사령관을 제거한 사건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신들의 든든한 후원자를 잃은 하나회도 위기를 맞았다.

당시 강창성 보안사령관은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뿌리 뽑겠다고 나섰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박 대통령이 하나회를 자신의 친위세력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필용 사건은 박정희 정권 내 권력 향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윤 사령관은 그해 4월29일 열린 군사재판에서 업무상 횡령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 8개 죄목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윤 전 사령관은 3년 만인 1975년에 석방됐고 1980년 하나회가 주축이 된 신군부가 집권한 이후에는 한국도로공사 사장과 한국전매공사 이사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반면, 강창성 전 보안사령관은 신군부가 권력을 잡은 이후 2년5개월간 투옥되는 등 심한 고초를 당해야 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