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시시비비 제대로 가려야
지난 1977년 한국의 에베레스트 등반대장을 맡았던 원로 산악인 김영도 선생이 며칠 전 어느 일간 신문에 글을 실었다. "산을 모르면 함부로 오은선을 말하지 말라"는 다분히 도발적인 제목이 붙어있다.
지난해 한겨레를 비롯한 일부 언론의 보도가 있었고 얼마 전에는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의혹 제기에 이어 산악연맹이 "칸첸중가 등반에 성공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김 선생의 글에는, 최근 봇물터지듯 쏟아져나온 '칸첸중가 등반 의혹' 보도에 대한 원로 산악인의 불편하고 안타까운 심정이 잘 녹아있다.
김 선생은 "알피니즘이 무엇인가 아는 사람들은 이 문제에 그다지 무게를 두지 않는다. 등산은 무상(無償)의 행위이며, 경주가 아닌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등산이 보상을 노린 행위가 아니며 또한 경주가 아니라는 말은 "산이 있으니 오른다"는 말 만큼이나 등산이라는 행위에 대한 감동적인 설명이다.
가슴에 울림을 주는 부분은 더 있다. "등산의 세계는 경쟁과 관계없이 생(生)과 사(死)가 공존하는 별세계다. 오은선의 문제를 놓고 지금 국내·외가 제법 시끄러운 모양인데, 나는 여기서 철학의 빈곤을 본다. 등산은 과학이 아니며, 증명이 필요한 세계가 아니다. 육체적 노동을 거쳐 도달하는 정신적 고양(高揚)의 세계다."
나는 솔직히 목숨을 걸고 8천 미터가 넘는 산에 도전하는 행위를 이렇게 철학적으로 제대로 설명해 놓은 글을 예전에 미처 읽은 적이 없다. 물론 이런 분야에 무지한 탓도 있겠지만...
하지만 아무래도 제목은 좀 걸린다. 잘해봐야 지리산, 설악산 정도 밖에 가보지 못한 우리는 칸첸중가의 진실을 거론할 자격이 없는 걸까? 도대체 '무상(無償)의 행위이며 경주가 아닌' 등산을 고도의 상업적 영역으로 편입시키고 '세계 최초'를 놓고 목숨을 건 '경주'를 벌인 것은 도대체 누구인가? 알피니즘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적어도 현재의 산악계의 문제가 '산을 모르면서 함부로 오은선을 말하고 있는' 우리 일반인이 벌여놓은 일은 아니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 언론은 반성할 대목이 다른 어느 부문보다 많다. 상업주의를 부추기고 등산을 경마식 보도의 대상으로 삼았다. 어느 분야를 대할 때나 마찬가지인 고질적인 병폐인 과도한 민족주의도 빠지지 않았다. 언론으로서의 원칙과 냉정이 없었기에 문제가 이렇게 커질 때까지 언론은 아무런 책임도 다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일에 대한 언론의 보도마저 이런 비판을 받아야 하는지 나는 선뜻 동의하지 못한다. 국민들은 세계 최초 여성 14좌 완등을 축하했던 것 만큼이나 국가적 경사에서 세계적인 의혹으로 변모한 이 일의 진실을 알고 싶어한다. 그리고 알 자격이 있다. 지금이라도 언론은 냉정하게 진실을 밝혀야 한다.
이미 일본이 1956년에 등반한 에베레스트를 1977년에야 오를 수 있었던 우리의 국력. 4천 미터의 알프스가 있는 유럽과 달리 2천 미터 안팎의 '야산' 밖에 없는 자연 조건. 우리 등산의 환경은 열악하고 역사는 일천하다. 하지만 이런 어느 것도 국민 모두가 여성 최초 14좌 완등에 환호했던 기억을 찜찜하게 가슴 속에 묻어두고 입을 다물어야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지금의 상업화된 등산이 증명이 필요없는 행위이자 아무런 보상을 목표로 하지 않는 단순한 정신적 고양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세계 최초 여성 14좌 완등의 '기록'에 열광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고미영은 목숨을 잃었고, 온 국민이 애도의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시시비비에 약하다. 오히려 충분한 시시비비가 필요하다. 등산의 역사가 일천하다는 이유로 정작 외국에서는 의혹으로 다퉈지는 것을 정작 우리 국민들만 몰라서야 말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스스로도 '완벽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면서 현실적인 조건의 문제를 거론하는 건 솔직히 변명처럼 들린다. 2천 미터 야산 밖에 없는 나라라고 해서 정상 정복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4천 미터의 알프스가 있는 나라와 다를 수는 없지 않을까.
"갔다고 하면 간 것이다. 믿어야 한다"는 엄홍길 대장의 말도 마찬가지다. '믿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 않나.
모쪼록 산악연맹을 비롯한 등산인들이 이번 일을 대충대충 덮는 것이 아니라 깔끔하고 슬기롭게 마무리하기를 기대해본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지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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