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파스'가 훑고 지나간 현장은 참담했다. 아비규환의 전쟁터보다도 더 끔찍했다. 지난 3일 찾은 태안읍 상옥리의 가영현 가옥(도지정 민족자료 제17호)은 마치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폐가처럼 짚으로 엮어있던 지붕은 뒤짚어져 마당으로 떨어졌고, 창호지로 곱게 발라있던 나무격자가 선명한 사랑채 문짝은 갈기갈기 찢겨 폐가를 연상케 만들었다.
안채는 이보다 더했다. 초가지붕에서 떨어진 짚이 마당에 여기저기 너부러져 있고, '곤파스'에게 한방 얻어맞은 장독대는 전통장맛을 이어오던 종갓집의 손맛까지 앗아가 버렸다.
더군다나, 농촌체험학습장으로서 인기를 끌며 가옥 인근에 사과농장을 운영해 왔던 가영현 가옥은 수확을 앞두고 아직 익지도 않은 새파란 사과가 낙과돼 두 배의 고통을 떠안게 되었다.
대민지원에 나서 아직 익지도 않은 낙과를 주워 담던 한 주민은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본격 수확철인데 너무 안타깝다"며 "낙과라도 얼른 회수해야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겠느냐"고 연신 낙과를 주워 담았다.
처참한 모습의 가영현 가옥과 안흥성

'곤파스'의 마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비단 가영한 가옥만이 아니었다. 지난 3월말부터 12년만에 새 옷으로 갈아입을 수순을 밟아가던 안흥성(도 지정기념물 제11호)도 '곤파스'에게 한 방 얻어맞고는 폭삭 주저앉아 버렸다.
안흥성은 지난 3월말부터 1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수홍루를 새로이 보수하는 공사에 들어갔다. 9월 6일을 공기로 해서 진행된 사업으로 수홍루의 형체가 드러나야 하는 시점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보수완료시점을 3일 앞두고 덧집이 파손되기 까지 수홍루의 형체는 커녕 안흥성 주변에는 공사 자재만이 나뒹굴고 있었다.
안흥성 관계자는 "공기에 맞춰 수홍루가 완공이 된 상태였다면 더 큰 피해가 있었을지 아니면 피해가 없었을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수홍루 공사가 지연되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이번 피해로 수홍루 보수공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군 관계자도 "안흥성은 그동안 보수정비가 진행되고 있던 사업으로 이번 피해로 인해 별도의 예산은 요청하지 않을 것"이라며 "시공업체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밝혔다.
태풍에도 끄떡없는 태을암과 흥주사, 문화재 멀쩡
천연기념물인 안면송과 모감주나무 군락지, 신두사구, 도지정문화재인 가영현 가옥과 안흥성 등 태풍 '곤파스'는 문화재에도 크나큰 피해를 입혔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태안 유일의 문화재인 마애삼존불상이 있는 태을암과 아들 낳는 은행나무가 있는 곳으로 잘 알려진 흥주사 등 사찰은 인근 숲의 나무가 일부 쓰러졌을 뿐 문화재는 멀쩡했다.
태을암은 인근 5그루의 나무가 쓰러지고 화장실 출입문이 파손되는 경미한 피해에 그쳤고, 흥주사 또한 대웅전 뒤편 소나무 한 그루와 진입로상 소나무 몇 그루 등의 피해를 입었을 뿐 문화재에는 전혀 영향이 없었다.
이 외에도 국내 유일의 해안사구인 태안 신두리사구는 완충지역이 심하게 훼손되었으며, 안면도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안면송 800여 그루도 꺾이고 부러지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태안군 관계자는 "시급한 사안에 대해서는 본예산을 투입해 긴급조치를 할 예정이고, 모감주나무 군락지와 신두사구 등 큰 피해지역에 대해서는 문화재청에 긴급보수를 신청해 응급복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동이 SBS U포터 https://ublog.sbs.co.kr/east334(※ 이 기사는 '태안뉴스'에도 송고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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