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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증시 기사쓰기 어려웠던 날

이현식

입력 : 2010.09.02 10:02|수정 : 2010.09.02 10:13

'다우지수 1만선 공방' 기사에 녹여야 했던 이야기


뉴욕특파원의 하루 일과 중 제일 규칙적이고 중요한 (제가 생각하기에) 일은 뉴욕증시 상황을 서울 아침뉴스에 리포트 하는 겁니다.  매일 하다 보니 조금은 요령도 생기고, 나름대로 시장을 보는 눈도 길러지긴 하는데, 날에 따라 기사쓰기 쉽고 어려운 차이가 있습니다.

기사쓰기 쉬운 날은 우선 지수 움직임이 일방적이고, 변동폭도 큽니다. 하루에 다우존스 지수가 100포인트(대략 1%) 이상 움직이면, 그런 날은 이유도 명쾌합니다.

반면, 31일(뉴욕 화요일)같은 날은 참 까다롭습니다. 지수는 하루종일 다우지수 1만선을 사이에 두고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이유도 복잡미묘합니다.

보통 뉴욕증시는 경기지표 관련 뉴스와, 개별 기업 실적들의 영향으로 변동합니다. 어제의 경기지표 관련 뉴스로는 이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오전 장에 나온 것들입니다.

"스탠다드 앤 푸어스가 발표하는 미국 주택가격 지수의 6월 수치가 전월대비 1%, 전년 동기 대비로 4.2퍼센트 올랐습니다.  하지만 당시 주택구입에 따르던 세금혜택은, 지금은 사라졌습니다."

"민간 경제조사단체인 콘퍼런스보드가 발표한 8월 소비자 신뢰지수는 53.5로, 전달보다 조금 반등했습니다."

나름대로 풀어서 쓴다고 했는데도, 증시를 자주 챙겨보는 분이 아니면 이 수치들이 갖는 의미를 한 눈에 파악하기 어려울 겁니다.  더구나 어제는 이 지표들이 지수에 별 영향을 주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제 아침 뉴스에서는 위 문장들을 나중에 생략했습니다.

오후에는 증시가 보다 더 비실거렸습니다. 원인을 제공한 것은 연준 공개시장위원회(Federal Reserve Open Market Committee)의 상세 회의록(minutes) 공개였습니다. 

여기서부터 얘기가 복잡해집니다. 일단 회의 주체와 명칭이 휙 듣고 지나가게 되는 방송기사에서 쓰기는 부적합할 정도로 복잡하지요? 

이 회의는 미국 연방의 중앙은행이라 할 수 있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줄여서 '연준'(Federal Reserve)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회의입니다.

각 권역별로 설치돼 있는 연방준비은행의 총재들이 참석합니다.  이 회의는 사실 지난 8월10일에 열렸습니다. 그때 나온 결정은, 연준이 매입한 MBS(모기지-쉽게 말하자면 주택담보부대출-을 담보로 한 채권)가 만기가 되어 돌려받는 현금을 국채(Treasury Bond) 매입에 쓴다는 것이었습니다.

개개인-특히 신용도가 부족한 개개인이 그동안 주택담보 대출을 받았습니다. 그 돈 받을 권리를 투자은행들이 모아서 별도의 증권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온 사방에 팔았습니다. 주택시장이 좋을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집값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내가 산 증권에 포함된 대출 건 중 어느 것이 부실화될지, 다시 말해 내가 산 채권 중 어느 정도나 돈이 날아갈지 누구도 모르는 깜깜이 고스톱판이 돼 버린 겁니다. 주택담보대출을 기반으로 한 채권들은 갑자기 휴지조각이 돼 버렸습니다. 주택시장과 자금시장이 마비됐습니다. 누군가는 이걸 사 줘서 시장에 돈이 돌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최후의 보루인 연준이 나섰습니다. 연준이 이 채권들을 사들이고 그 값으로 내보낸 현찰이 2008년 금융위기로 신음하던 미국 경제의 숨통을 틔워주었습니다. 이 채권들이 만기가 되면, 채권소유자인 연준에게 돈이 돌아오겠지요. 그걸 연준 금고에 쌓아두면 '위기시 긴급 공급했던 유동성의 해소' 다시말해 '출구전략'이 됩니다.

경기가 웬만큼 좋아졌다고 생각되면 이렇게 해야만 인플레이션의 부작용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연준은 8월10일 회의에서 그러지 않기로 했습니다.

시중에서 중앙은행으로 들어오게 되어 있는 현금을 '국채 매입'이라는 방식으로 다시 시장으로 돌려보낸다- 다시 말해,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시중에 풀었던 돈을 거둬들이지 않고 그대로 둔다는 것이었지요. 경기부진으로 세금이 덜 걷혀 골치인 미국 정부가 쓸 돈을 융통해 준다는 의미도 고려되었을 겁니다. 대신, 시중에 추가로 새로운 돈을 풀지도 않기로 했습니다.

이 8월10일 공개시장위원회의 결과는 이미 그날 증시에 반영이 되었습니다. '국채 매입방식을 통한 유동성 공급 유지'라는 회의 결론이 그날 발표되었기 때문입니다.  뉴스에서도 당연히 다뤄졌습니다.

어제는 그 회의의 '상세 발언록'이 공개된 겁니다. 3주나 지나서 말이죠. 특별히 내용을 모를 것도 없는 것이지만, 내용이 공개된다는 것은 시사적인 뉴스로서 또다른 생명력을 가집니다. 당시 회의에서는 지금의 경기상황이 디플레이션(경기침체로 전반적인 임금과 물가가 하락)이냐, 또는 디스인플레이션(경기 둔화이기는 하지만 디플레이션만큼은 아닌..)이냐 등의 논란이 벌어집니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이냐- 연준이 무슨 조치를 취해서 시장을 부양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집니다. MBS 만기로 돌아오는 자금으로 국채를 재매입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방만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보다 더 확실하게 시장에 자극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미국의 전문 언론과 분석가들은, 연준 회의에서 경기 분석과 대책이 이만큼 엇갈리는 경우도 흔치 않다고 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런 상황은 투자가들에게 확실한 경기침체보다 더 나쁠 수도 있습니다.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불확실성(uncertainty)"라지 않습니까.

어제 주가가 1만선 아래위로 오르락 내리락 혼조세를 보인 것은 바로 이런 분위기의 반영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경제는 더블딥으로 가는 것일까요? 분석가들의 전반적인 견해는, '그렇지는 않다. 경기와 고용은 회복되고는 있다. 그러나 그 회복세가 너무나 완만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수렴됩니다.

주가가 심하게 곤두박질치지 않고 결국 1만 위에서 마감됐다는 것도 그런 관점에서 연결시켜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들어가자면, 다우지수 1만선은 일반인과 미디어가 쳐다보는 심리적 지표일 뿐 경제상황에 대해서 특별히 의미하는 바는 없다는 주장도 많습니다).

미국의 올해 1분기가 예상 외로 호조였다는 것은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합니다. 지금처럼 '경기 시계 오리무중'이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한 달 남짓 됐을까... 8월 들어 갑자기 장 분위기가 많이 나빠졌습니다. 언제는 인플레이션을 어느정도 용인하는 것이 경기 회복에 유리하냐를 논쟁하던 전문가들이 순식간에 "추가 부양책은 뭐가 가능할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 문제의 해답은 "현재로서는 딱히 없다"로 요약되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중앙정치에 대한 환멸, "내가 낸 피같은 세금이 제대로 쓰이지 않는다-특히 나에게 혜택이 직접 돌아오지 않는다"는 불만은 미국이라고 우리보다 덜하지 않습니다.

오바마 정부는 그동안 '국민의 혈세'를 퍼부어 월가의 금융시스템이 붕괴되지 않도록 떠받치고 미국 자동차 산업을 살려내고 공무원 대량해고를 막았습니다.

경제적으로 보면 상당한 성과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경제를 말아먹은 것은 월가의 탐욕스런 '살찐 고양이들'(fat cat)들인데, 왜 그들은 경기부양의 수혜를 받고 나는 계속 어렵게 살아야 하느냐는 불만이 전국적으로 팽배해 있습니다. 이런 불만과 분노는 '티 파티 (Tea Party)'로 대표되는 극우보수주의 창궐의 토양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부양책이 추가로 필요하다 할지라도 오바마 정부가 부양책을 쓸 수 없다고 봅니다. 지금 경기부양을 위해 정부가 돈을 더 쓰거나 세금을 더 걷어야 겠다고 얘기하는 것은 중간선거를 고려하면 정치적 자살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워싱턴의 실세들 사이에선 유럽이나 한국과 같은 '부가가치세' 제도 도입 논의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이를 섣불리 공론화하려는 사람은 없는 실정입니다.

자, 이제 문제는, 증시가 마감된 오후4시부터 사실상의 기사마감시간인 4시30분까지 이러한 사정들과 부가적인 시장 정보를 어떻게 90초짜리 기사에 녹여내느냐 하는 겁니다.

방송은 써놓은 글을 생각하면서 읽는게 아니라 듣고 귀로 흘리게 되니까, 가급적 용어를 풀어써야 한다는 전제도 따라붙습니다.  나름대로 피를 말리는 고민끝에, 제가 출고한 기사는 이렇게 정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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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지수는 5포인트 오른 만15포인트로 장을 마감했습니다. 하지만 장중, 특히 장 후반에 여러차례 만 선이 무너졌습니다. 오후에 ,지난 10일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록이 공개된 뒤였습니다.

당시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경기가 어느 정도 둔화되고 있는 것인지, 돈을 더 풀기는 해야 하는 것인지, 푼다면 어떻게 풀어야 할지에 대해 이례적인 격론을 벌였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회의가 열린 지 20일 이상 지나서 분위기가 그랬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향후 경기의 불확실성이 새삼 부각됐습니다.

오바마 정부가 경기를 부양하려면 예산지출을 늘리거나 세금을 더 걷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극심한 상황이어서 오는 11월 중간선거 전에는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탓에, 뉴욕증시는 2001년 이후 최악의 실적으로 8월 장을 마감했습니다.

8월들어 다우와 s&P 500 지수는 4퍼센트, 나스닥은 6퍼센트 이상 하락했습니다. 경기가 회복되지 않아 석유 수요도 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속에, 뉴욕 국제유가는 오늘 또 3.7퍼센트 떨어져, 배럴당 71.92달러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이번주 후반에 허리케인이 미국 동부지역을 강타할 것이라는 예보도 유가에 악재로 작용했습니다.

휴가철 막바지를 즐기려는 여행객들이 줄어서, 휘발유 소비가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입니다. 뉴욕에서 SBS 이현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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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적인 정보-특히 수치-는 자막으로 전달하기도 합니다만, 저는 가급적 맥락과 분위기를 시청자들께 전하고, 추가적인 호기심이 있는 분들이 인터넷으로 관련 정보를 찾아보실 때 도움이 되는 틀을 제공해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단편적인 사실을 어떻게 하나의 스토리로 엮느냐, 마지막 문장에 얼굴 내밀때는 무슨 말을 해야 섣부른 예측을 삼가면서도 의미있는 분석이나 분위기 전달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도 늘 어려운 문제입니다.

오늘 증시는 제발 좀 단순명쾌하게 움직이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