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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북 정책에 변화는 있는 걸까?

주영진

입력 : 2010.08.27 10:25

도식적인 분석 보도에 대한 경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6일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지난 1월 북한에 몰래 들어갔다가 불법입국혐의로 억류중인 미국인 곰즈씨를 미국으로 데려오기 위해서 갔습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공식 면담은 없었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당초 하루만 북한에 머물려던 일정을 하루 더 연장했다고 합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94년 7월에도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1차 북핵위기 국면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북한 핵시설 폭격을 적극 검토해 한반도에는 전운이 감돌던 때였습니다. 카터는 그 긴장을 푸는 고리 역할을 잘해냈습니다.

카터가 평양에서 서울로 와서 남북정상회담도 합의됐다는 소식을 전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애석하게도 김일성 당시 북한 주석이 갑자기 사망해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의 남북정상회담은 무산되고 말았지요.

텔레비젼을 지켜보던 돌아가신 제 아버님이 "김일성이 끝까지 나를 도와주지 않네."하면서 한숨을 쉬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북에 두고온 가족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다리셨죠.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면 그 기회가 빨리 오리라던 기대가 물거품이 된 아쉬움이셨을 겁니다.

이번 카터의 방북에 대한 미국 정부의 태도가 재미있더군요. 백악관과 국무부 대변인들의 브리핑이 거의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습니다. "개인의 인도적인 노력일  뿐이다. 곰즈씨가 무사히 미국으로 돌아오는 게 중요하다. 미국 정부가 현재의 상황에 대해 언급했다가 곰즈씨 무사귀환을 위태롭게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미국 국가안보회의에서 마련한 문구라는 얘기도 있더군요. 한 시간 넘게 계속된 기자들의 추궁에 이 말만을 반복하던 대변인들의 뚝심이 대단해 보이기 까지 했습니다. 한국 정부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조금은 달랐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카터의 이번 방북에도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천안함 사태 이후 강경 일변도인 미국의 대북기조에 일정부분 변화가 있는 것 아니냐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보도가 오히려 도식적인 보도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의 사안이 발생했을 때 그 겉만을 보지 않고 이면의 속사정까지 가늠해보고 들여다 봐야 하는 게 언론의 사명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기자생활을 17년동안 해오면서 지켜봤을 때 도식적인 분석기사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으레 그럴 것이라는 추정을 하고, 거기에 갖다 붙이면 딱인 사례가 있으면 되는 그런 보도 말이죠.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나 주미한국대사관의 외교부 사람들의 말은 한결 같았습니다.

"미국은 해외에 나가 있는 미국인의 안전을 대단히 중시한다. 단 한명이라도. 지금은 곰즈씨의 안전한 귀환에 미국 정부가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돌출 발언과 행동을 하는 편이어서 마음에 꼭 드는 것은 아니지만, 94년 방북으로 북한 사람들이 친근감을 갖고 있는 카터의 방북을 요구했을 때 결국 수용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렇다고 북한에 대한 미국 정부의 강경기조에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추가 대북제재조치도 곧 발표될 것이다. 북한이 천안함 사태에 대해 응분의  책임있는 조치를 취하고 비핵화에도 성의를 보여야만 대화를 재개할 수 있다는 미국 정부의 방침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언론들은 일제히 뭔가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는 쪽의 기사들을 쏟아냈습니다. 공교롭게도 거기에 걸맞는 사례가 하나 있었습니다.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최근 이달초에  대북정책평가회의를 소집했다는 것인데요, 크롤리 미 국무부 대변인이 공식적으로 밝힌 내용입니다.

"클린턴 장관이 외부 전문가도 초청한 가운데 북한 정책에 대한 회의를 했다. 북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외부 인사들의 의견을 들었고, 현재 국무부의 정책을 설명했다.슬로터 국무부 정책실장이 이끄는 정책그룹에서는 다양한 이슈에 대한 정책들을 평가하고,특정한 정책들을 추진하면서도 과거에 검토되지 않았던 다른  대안들도 고려한다"

이 브리핑이 나오게 된 계기가 된 포린 폴리시의 보도 내용입니다.

"북한 정책에 좌절감을 느낀 클린턴 장관이 이달초  슬로터 실장에게 고위급 회의를 소집하도록 지시했고, '신선한 대안들'을 점검해보도록 지시했다" 스타인버그 부장관, 캠벨 차관보등 기존의 대북 라인과는 다른 대안들을 제시해달라는 요구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들을 근거로 이번 카터의 방북을 통해 미국의 대북 정책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기사들이 나온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그게 답니다. 변화의 근거가 되는 구체적 내용들은 더 없습니다. 미국국무부의 발언에도 변화로 감지될만한 내용은 없습니다. 

"북한의 태도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직접적으로 북한과 대화하는 일은 없다, 대북 제재와 동맹국과의 조율을 중시하는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은 큰 틀에서 변하지 않았다."가 오히려 현재 흐름을 읽는 대세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8월 당시 북한에 억류돼 있는 여기자 2명을 데려오기 위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까지 만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대북 정책에 큰 변화가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천안함 사태 이후 한국은 물론 미국도 북한에 대해 강한 적대감을 나타내며 응분의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긴장 국면입니다. 그렇다고 이 국면이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미국은 결국 6자회담 재개를 통한 북한의 비핵화에 나설 것이라는 점도 한반도에 관심있는 전문가들이라면 다 예상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렇다고 카터의 방북이라는 소재를 놓고 천편일률적으로 변화가 예상된다고 쓰는 기사를 보면서 기자인 저로서도 '도식적'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는 게 이 글의 요지입니다. 제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정말 저변에 그런 기류가 도도히 흐르고 있는데 제가 무지해서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위에 언급한 것처럼 미국은 결국 북한과 대화에 나설 것인데, 지금은 아니라는 거죠.

이솝우화에 나오는 바람과 해의 경쟁 이야기를 아실 겁니다. 나그네의 외투를 누가 벗길 수 있느냐는 시합인데,결국 해가 이겼다는 내용, 그래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 유명한 '햇볕정책'이라는 말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이은 이명박 정부는 햇볕정책은 실패한 정책이라고 규정하고 엄격하게 북한문제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천안함이 침몰했고 미국 역시 강경한 대응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추가 대북제재조치도 곧 발표할 예정입니다.(이 추가 대북제재조치도 지난달 20일쯤인가요, 크롤리 대변인이 a couple of weeks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사전적으로는 2주라는 의미지만 미국인들은 흔히 조만간이라는 뜻으로 쓴다고 하더군요. 다른 곳에서는 2주뒤 발표로 나갔고,저는 조만간이라는 뜻으로 썼는데요, 결국 그 2주는 커녕 한달이 지난 지금도 아직 발표되지 않고 있습니다.)

인생에 사이클이 있든 북한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대응에도 사이클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강경한 쪽입니다. 올 하반기에 북한이 김정은 체제를 구축하면서 상황 돌파의 필요성을 느낀다면 뭔가 제스처를 취할 것이고 그 걸 계기로 다시 유화국면으로 돌 수도 있습니다.

천안함의 직접적 피해자인 한국 정부도 공개적으로 천안함에 대한 책임있는 조치, 비핵화 이행에 성의가 보인다면 북한과의 대화가 가능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결국 공은 북한에 넘어가 있는 것이죠.이 긴장국면을 타개할 수 있는 것도 한국과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라는 게 화가 나기도 하고, 이해가 안되기도 하지만, 그게 한반도 정세의 핵심일 수 있습니다. 5천년 한반도의 형님나라 역할을 한 중국이 북한의 뒷배가 돼서 한국과 미국을 상대하는 모양도 가볍게 봐서는 안되겠죠.

아, 어렵습니다. 하지만 눈 뜨고 지켜봐야 하는 것이 한국과 한국 사람들의 숙명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