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12일 항소심에서 1심과 달리 일부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은 유일한 증거인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진술의 신빙성을 무너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에서 박 전 회장은 돈을 건넨 시기와 장소, 방법을 상세하게 기억해 '박연차의 입'이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다른 모든 재판에서 그가 직접 돈을 줬다고 진술하면 어김없이 유죄가 선고됐고 박 의원도 1심에서는 예외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박연차의 입'은 검찰에게는 든든한 우군이었고 피고인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덫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변호인이 박 의원의 사례와 다른 사건의 차이에 주목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박 전 회장은 후원했던 정당의 중진 또는 지역의 자치단체장 등으로 그와 오랜 친분을 맺거나 사업에 꼭 필요한 인물에게만 직접 돈을 줬는데 박 의원은 박 전 회장이 돈을 건넨 것으로 지목된 날 그를 처음 만났기 때문이다.
변호인은 이를 중심으로 박 전 회장의 진술의 허점을 파고들었고 '합리적 의심'에 무게를 싣는 단서를 부각했다.
박 의원을 초청한 인물은 박 전 회장이 아닌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었고 오랜 기간 외교 분야에서 몸담은 박 의원으로서는 국빈이 참석하는 자리라 거절하기 어려웠다는 점, 돈을 건넨 것으로 지목된 장소가 사람들의 눈에 띄기 쉽다는 점도 강조됐다.
증인으로 출석한 박 전 회장은 돈을 준 동기나 전달 계획, 사전에 돈을 마련해 보관한 방식, 돈 준 사실을 실토한 경위에 대한 설명을 수사기관 또는 1심에서와 다르게 조금씩 바꾸었고 이런 변화가 쌓여 결과를 바꾸었다.
재판부는 결국 "이 사건은 박 전 회장에게서 금품을 받아 문제가 된 여타 사건과는 차이가 있어 다른 사건에서 신빙성이 배척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의 진술을 당연히 믿을 수 있다고는 볼 수 없다"며 박 의원의 손을 들어줬다.
1심에서 유죄를 뒷받침했던 행사 사진은 '대역이 박 전 회장과 동일한 체형이 아니고 나타난 형상만으로 주머니에 2만달러가 든 봉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증명력이 인정되지 않았다.
항소심에서 변호인으로 합류한 박철 변호사는 "그간 박 전 회장 진술의 신빙성이 모두 받아들여져 유죄판결이 났던 것이 가장 큰 부담이었지만 다른 사건과 차이가 있다는 점이 박 의원의 말을 믿게 하는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박 전 회장이 직접 돈을 줬다고 했음에도 해당 공소사실에 무죄를 선고한 첫 사례로 남은 '박연차 게이트'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을 끈다.
여러 피고인의 판결이 확정됐지만, 이광재 강원도지사나 민주당 서갑원·최철국 의원 등은 아직 대법원의 심리를 남겨두고 있다.
상고심은 법률심이라서 원칙적으로 사실 관계가 아닌 법 적용의 오류만을 따지는데 결국 이들이 무죄를 주장하면 박 전 회장의 진술을 신빙한 것이 증거법칙을 위배했는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