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요토미 히데요시 신사의 면적은 적어도 귀 무덤의 수십배는 돼 보였습니다. 귀 무덤은 일본인 관리인 한명이 외롭게 관리를 하고 있었지만,도요토미 신사는 이 앞에서 결혼식을 올릴 정도로 그야말로 일본인들의 관광 명소였습니다.
◆ '일본 문화의 시조' 왕인박사의 묘
그 다음날 아침 일찍 들른 곳은 오사카에 있는 왕인박사의 묘였습니다.
왕인 박사는 잘 아시다시피, 1,600년전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들고 와 문자를 전했던 백제 인물입니다. 일본 문화의 시조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일본에 문화를 전수해 준 한국인과, 일본인들에게 무참히 살해된 한국인들의 무덤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함께 있는 것입니다. 굳이 연결 짓자면, 한국인한테 문화를 배운 일본인들이 거꾸로 한국인들을 살해했던 셈입니다.
왕인 박사의 묘 역시 방치돼 있다시피 한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소박한 규모로, 그것도 주택가 골목길 안쪽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마땅한 표지판도 없어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방문객도 그리 많지 않아 보였습니다.
일본 현지에 있으면서 일본인들에게 반성을 촉구하고, 한국에 대한 고마움을 일깨워주는 것도 큰 의미가 있지만 두 무덤을 아예 우니나라로 들여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조선왕조의궤 뿐 아니라, 이 두 무덤을 반환하라고 요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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