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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은 곧 퇴출' 유통업계는 봉건사회인가?

강선우

입력 : 2010.08.04 16:22


21세기판 봉건주의가 판친다!

중세 봉건주의(feudalism) 시대의 농노는 영주가 하사하는 땅을 경작해서 9할은 상납하고 자신은 1할만 받은 뒤 겨우 목숨 부지하며 살았습니다. 영주가 농노에게 A는 여기 B는 저기하고 땅을 배정해주면 감읍해하면서 죽도록 일을 할 수 밖에 없었죠. 그렇게라도 못하면 굶어죽기 때문에 불가항력이었습니다.  역사 교과서에 나와 있듯이 심지어 초야권까지 빼앗는 등 영주들의 횡포는 상상을 초월했죠. 

너무 극단적인 비유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요즘 우리의 유통업계에는 이런 봉건주의의 악행과 유사한 행태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농산물을 들여와 이를 가공해 대형할인점에 납품을 하는 업체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기자와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기에 정말 힘들게 만났죠. 언론과 접촉한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업계에서 매장되고 사업을 철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장님 말씀이 할인점에서 세일 행사를 할 때마다 가장 두렵다고 합니다. 세일 종류도 다양해 정기세일, 특별할인행사, 몇주년 창립 기념 세일 등등 1년에 10여차례나 세일을 하는데 심지어는 '전단지 세일'이라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전단지에 품목을 400개 정도 골라 30~50%씩 할인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소비자는 싸게 판다는데 싫을 리가 없죠. 그런데 이 할인폭만큼을 납품업체에 떠넘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납품업체 입장에서는 마진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손해보고 팔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억지 강매인 셈이죠. 이를 거부하면 바로 쫓겨납니다. 

백화점도 사정은 마찬가집니다. 유명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의류 업체의 사장이 얘기를 해주던군요.  6개월에서 1년마다 MD개편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MD는 머천다이징을 말하는데 상품 구성이나 진열등에 변화를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판매실적이 좋지 않거나 백화점에 잘 못 보인 업체는 구석으로 쫓겨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충성경쟁을 벌일 수 밖에 없고 '갑'인 백화점에 대해 ‘을’인 입점업체는 모든 요구사항을 그대로 들어줄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영주님이 시키고 지정해주는 대로 따라야 하는 봉건주의 방식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셈이죠.  

올해 상반기 국내에서 가장 큰 유통재벌인 롯데와 신세계 두 곳은 막대한 영업이익을 기록했습니다.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인데요 롯데는 6천억원, 신세계는 5천억원의 기록적인 이익을 낸 것입니다. 매출이 아니라 이익을 이정도 냈으니 장사를 매우 잘 한 것이겠죠. 연간 단위로 따지면 올해 두 회사 모두 1조원대의 영업이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이런 막대한 이익의 이면에는 수많은 중소협력업체들의 고통과 불만과 억울함이 깔려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상생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떠들어대는데 과연 대기업과 중소업체 간의 새로운 협력 동반 관계가 일회성이 아니라 영속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기대하기 쉽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