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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토크]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공진구

입력 : 2010.08.04 09:39|수정 : 2011.04.26 17:30

'아시아리얼리즘'전 세 번째 이야기


아시아 리얼리즘전도 마찬가지지만 사실주의 그림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보통'사람들입니다.

언뜻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도 있지만, '보통' 사람들이 그림의 주인공이 된 것은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닙니다. 몇 천 년에 이르는 미술의 역사 중에서 거의 이백 년도 되지 않은 일입니다.

더 예전에는 그림의 주인공이 주로 영웅, 위인, 왕, 벼슬, 역사나 신화 이야기 등장인물 등이었는데요. 아마 보통사람을 그리는 것보다 훨씬 훌륭한 일이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일상적인 모습보다는 좀 더 고상하고 높은 정신을 가졌던 사람을 주인공으로 그림으로써 교훈적인 그림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가족도' 배운성 (한국, 1930~35)

보통 사람들의 삶이 중요한 역사의 순간이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화가의 삶이 중요해진것도 사실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보통사람의 얘기와 화가 자신의 얘기가 같이 중요해 진 것입니다.

갑자기 서민이 주인공이 된 이유가 있었을까 궁금해 하실 텐데요.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그만큼 '보통' 사람들의 삶이 중요해 졌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에도 민본주의의 개념이 있었고 왕의 힘이 민초에게서 나온다는 발상은 있었지만 그건 사회 지도자층에서 나온 사상입니다.

하지만 근대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어 가면서 농사만 지으며 살던 사람들이 공장에서 일하는 경우도 많아졌고, 공장에서 만든 상품을 판매하는 상인이 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밤기차' 아카마츠 린사쿠 (일본, 1901)

서민들의 고단한 삶 자체가 중요한 의미가 되었습니다. 그림의 주인공은 서민들이 되었고 그들의 표정은 강한 전달력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요즘 전철을 탈 때마다 같은 차를 탄 사람들을 보며 한명 한명의 소중하면서도 고단한 삶을 상상하곤 하는데요. 이 그림은 그런 애잔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정부에 의한 변화보다 더 빠른 것이 서민들이었고 그들이 능동적으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새로운 기술이나 자립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도 왕을 중심으로 한 정부가 아니라 서민들이었고, 식민 지배에 조직적으로 저항한 것도 서민들이었던 것이죠.

여기에 더해 그동안 묵묵히 농사를 지으며 살아오던 사람들이 얼마나 숭고한 사명을 다해왔는지도 사람들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농부귀가' 아시이 추 (일본, 1887)

서민들의 삶을 돌아보기 시작하면서 농부들의 모습도 중요한 주제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그들이 얼마나 숭고한 삶을 살아왔는지 깨달은 것입니다.

화가들은 이런 흐름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리고 그림으로 표현한 사람들입니다.

마치 밀레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그림도 그려졌는데요. 농부들의 모습이 경건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유는 화가들의 이런 사회인식이 반영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농부에 대한 화가들의 태도가 항상 민중의식과 같았던 것은 아닙니다. 농사일을 아름답게 그림으로써 식민 지배를 미화시킨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사회적 의식이 성장한 만큼 좋은 의미로 이용되는 동시에 안 좋은 의미로 이용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내기' 페르난도 아모르솔로 (필리핀, 1924)

필리핀의 국민작가로 알려진 아모르솔로의 그림인데요. 너무나 아름답게 그려진 농촌 풍경이 식민 지배를 긍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비난도 받았습니다.

정리하자면 근대에 이르러 그림의 주인공으로 ‘보통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는데요. 그 이후로 그림의 주인공이 더욱 확장되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의미’를 부여한 주인공에 대해 관객들의 허용도도 커졌는데요. 서민들의 삶이 소중하고 의미가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흐름은 정치적으로 급변하던 시대에 민중미술의 형태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고단한 삶의 무게를 보여 주는데 그치지 않고, 더 나은 사회가 되기 위해 그 사회를 비판하는 기능도 하게 된 것입니다. 서민들의 삶이 그려진 그림을 보면 시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민이 주인공이 된 이후에 점점 더 나아지는 사회를 꿈꾸며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상상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오랜 대중가요 가사가 생각나는데요. '욕심많은 사람들, 도화지속에 그려진 마치 풍경처럼 행복하면 좋겠어'라는 가사입니다.
서민들이 주인공인 그림을 보면서 고단한 일상일지라도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전시작품 설명은 김인혜 큐레이터(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원)께서 수고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