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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토크] 현실과 현실도피 사이

공진구

입력 : 2010.08.02 14:58|수정 : 2011.04.26 17:30

'아시아리얼리즘'전 두 번째 이야기


 '사실'을 그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한번 생각해 보았는데요. '사실'이란 말이 가지는 무게 중에 가장 큰 것은 아마도 '현실'이 아닐까 합니다.

'현실'과 '사실'이 같은 말은 아니지만 '현실적인', '현실과 비슷한' 이란 말을 떠올리면 '사실적이다'라는 표현과 유사합니다. 뭔가 사실적인 표현을 한 작품을 보면 '현실적이다'라는 감탄사를 쓰기도 하니까요. 생각에 따라서는 굉장히 다른 말일 수도, 거의 비슷한 말을 수도 있습니다.

영화를 생각해 보면 쉬울 것 같습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았기 때문인지 너무나 공감 가는 영화가 있는데요. 우리 주변의 얘기가 참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어서 주인공과 쉽게 동화되어 버리고 맙니다. 때로는 불편한 사실을 담고 있기 때문에 눈을 돌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것 역시 영화 속 현실과 동화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이창동 감동의 '밀양'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너무나 가슴 아파 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그림도 영화처럼 현실이 그려져 있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아프게도 기쁘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마치 디즈니 만화영화처럼 현실과 크게 상관없어 보이는 그림도 있습니다. 마냥 아름답기도 하고 낭만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다른 성향의 그림은 같은 시대에 같이 등장합니다. 현실을 비판한다든지 하는 그림과 그냥 보기에 아름다운 그림은 같이 그려지는 것이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겉보기에 마냥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그림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담겨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재미있게 읽는 만화 속에도 그 스토리 이면에 현실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요. 처음 볼 때는 잘 모르다가 그런 의미가 있다고 누군가 알려주면 그때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창작을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은 속해 있는 시대에서 마냥 자유로울 수만은 없나 봅니다.

지금은 작품 속에 현실을 드러내건 숨기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하에 있을 때 일본을 대놓고 비판하는 그림을 그리긴 힘들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현실을 무시하고 마냥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그림만을 그리는 것도 마음이 불편했을 겁니다. 작가의 민족을 향한 양심도 그렇고, 당시 사람들이 뒤에서 비난하는 것도 걸렸을 겁니다. 사실 우리나라가 일제치하일 때 그림을 그릴 수 있던 사람들은 집안이 부유했던 경우가 많았는데요. 서양의 미술을 처음 배워 우리나라에 소개했던 작가들은 일본, 유럽 등에 유학을 다녀온 후에 활발한 활동을 하곤 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일제치하에서 많은 서민들이 겪었던 어려움들을 같이 하던 분들이 아닌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가난과 역경을 이겨내며 예술혼을 불사른 분도 계시지만 그건 일단 예외로 하고 얘기를 풀었습니다. 예외성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주장하시면 그 말이 맞지만, 당시 상황을 상상해 보자는 말이지 그 시대를 규정하자는 말은 아니옵니다.)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유학까지 다녀올 수 있었던 우리의 미술 선구자들은 민족적 현실과 자신의 현실이 다름을 고민하며 예술로 표현합니다. 그렇다고 대놓고 표현하지는 못하고 그림 속에 숨기기도 하고, 현실도피처럼 보이는 서정성에 빠져들기도 하고, 아니면 정말로 민중 속으로 뛰어들기도 했습니다. 미술가마다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모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텐데요. 현실과 싸우기도 하고, 현실에 순응하기도 하고, 현실도피를 꾀하기도 하는 등 정말 다양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1800년대 말부터 1900년대 말까지의 상황은 작가들에게 '현실과 나'라는 주제가 어느 때보다 강했던 시기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일제식민지배가 있었고 6.25전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치적 격변기를 통해 민주화를 이루어 낸 과정이 있었습니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작가들의 고민은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는 모든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우리나라의 상황은 아시아 여러 나라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식민통치를 당한 경험이 있고, 공산주의 이념 논란이 있었으며, 근대 정치가 안정화 되는데 많은 진통을 겪었습니다. 덕수궁 미술관 전시의 제목이 '아시아 리얼리즘'인 것도 이런 시대적인 이유가 클 것 같습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한국 세 나라의 작품설명을 들어보면 이런 상황이 조금 더 이해가 잘 되실 것 같습니다. 베트남 작가의 <베트남 풍경>이란 작품은 서양화의 원근법 등을 아주 전통적인 기법을 이용해 그렸습니다. 마치 '너희 것을 배웠지만 그대로 따라하지는 않겠다'는 다짐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인도네시아 작가 라덴살레의 <푼착고개>는 아주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풍경 말고는 다른 게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푼착고개'라는 곳이 네델란드 식민시대에 중요한 장소였다고 하는 군요. 수도 자카르타로 넘어가는 길목이어서 네델란드 식민정부의 감시가 가장 심했던 곳이었습니다. 한국의 이인성이 그린 <해당화>는 일제치하의 암울함을 역설적으로 그린 듯한 작품입니다. 우리는 춥고 어두운 현실 속에 있는데 꽃은 아랑곳 하지 않고 핀다는 한편의 시 같습니다.

작품 설명을 김인혜 큐레이터레게 직접 들어보았습니다.

 

'베트남 풍경' 응우옌기어찌, 베트남 1940

 

'푼착고개' 라덴살레, 인도네시아 1871

'해당화' 이인성, 한국 1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