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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실은 청와대 비밀요원이었어요"

박상진

입력 : 2010.07.29 09:42


지난 2005년 9월 사업가 A씨는 자신이 소유한 100평 크기의 전원주택을 월세로 내놓았다. 그러자 한 세련된 중년부인이 계약신청을 했다.

59살 김00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2년치 월세 1억2천만 원을 한 번에 내겠다고 했다. 또한 아들 혼자 살 집이라고 말해 A씨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집은 깨끗하게 쓰겠지' 하는 생각에 계약을 맺었다.

고급 브랜드로 머리부터 둘러싼데다 교양 있는 말투에 세련된 외모를 보고 A씨는 김씨에 대해 더욱 믿음이 갔다. 1억2천만 원이라는 거액을 낸 뒤 김 씨는 그 뒤에 사라졌고 그 집은 김씨의 아들 36살 이 모 씨가 살았다. 2년 동안 아무런 문제도 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2년 뒤 임대차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이 되자 김씨는 계약갱신 문제를 상의하자며 집주인 A씨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리고는 청와대에서 보내준 인삼이라며 청와대 문양이 그려진 보자기에서 인삼을 꺼냈다. 그 다음에는 청와대 경호실 문양이 새겨진 넥타이 핀, 커프스 등을 선물로 줬다. 그러면서 김 씨는 자신을 소개했다. 자신은 미국와 프랑스 국적을 가지고 있고 현재 서울의 유명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3조 원 가량의 재산을 상속받은 사람이라고....

단순히 부잣집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란 사람인가보다라고 생각한 A씨에게 김씨는 놀랄만한 이야기를 계속 꺼내기 시작한다.

"저와 제 아들은..실은 청와대 비밀요원이었어요."

김씨는 자신을 청와대 직속 비공식 비밀조직원으로 전직 대통령 등이 컨테이너 등을 이용해 숨겨놓은 금괴, 달러, 구권화폐를 찾아 정부에 반환하는 일을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물건을 찾아 현 정부에 넘기면 은닉자금의 15% 상당을 수수료로 받는다고도 했다. 김 씨는 A씨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못 믿을 줄 알았다며 수표, 금괴, 구권화폐가 촬영된 비디오를 보여주며 아들과 함께 작업을 해서 찾아낸 돈이라고 설명했다. A씨가 점점 빠져들기 시작하자 김씨는 자신의 목적을 위한 작업에 착수한다.

"물건을 찾는데 품과 시간이 걸린다. 나중에 정부로부터 돌려받은 차액으로 2, 3배 가량은 돌려줄테니 경비를 투자하라"는 말이었다.

7, 80년대도 아닌 요즘 자신이 청와대 비밀요원이라며 작업비용을 투자하라고 하면 누가 믿을 것인가. 초등학생 아이들도 믿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사기행각은 그럴듯한 내용으로 포장한 뒤 결국 '돈 좀 투자해라'로 마무리된다는 공식을 알고 있을 텐데... 하지만 A씨는 김씨의 말에 이미 빠져들고 있었다.

A씨는 우선 향후 2년치 월세비 1억2천만원을 경비로 투자했다. 그리고 김 씨가 요청할 때마다 1천만 원, 2천만 원씩 돈을 건넸고 결국 1년 만에 김씨에게 투자한 돈은 월세비 외에 8억4천만 원이 됐다. 1년 동안 김씨에게 건넨 돈은 모두 10억원이 넘는다. 하지만 A씨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2,3배의 돈은 커녕 2, 3십만원도 받지 못했다. 자신이 경영하던 사업체도 파산했다.

김씨는 하룻밤에 수십만 원씩 하는 서울의 유명호텔에서 생활하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김 씨는 실제 지방의 모 고등학교를 2년 정도 다니다 중퇴했고 20여년 전 이혼을 한 상태였고 프랑스, 미국 국적은 커녕 해외거주 경험도 없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김씨는 호텔거주 비용, 명품 옷, 시계, 신발 구입비용에 대해 모두 자신의 돈이라고 주장하며 자신도 피해자라고 강변했다.

피해자는 한 명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경찰은 김씨의 소재파악이 안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조사가 꾸준히 안된 상태에서 체포를 해서 현재 1명 밖에 없을 뿐이지, 더 많은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기사건 취재를 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떻게 저렇게 허황된 말에 사람들이 속아 넘어갈까', '속는 사람이 바보여서일까, 속이는 사람이 뛰어나서일까'.

사기 피해자들의 답변도 거의 비슷하다. '지금 와서 보면 황당하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밖에 생각이 안 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도 허무맹랑하게 보이는 내용을 철저하게 포장한 김씨의 용의주도함에 A씨가 속은 것이 전체적 내용이다. 그러나 (피해자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상식적 수준을 넘는 A씨의 욕망이 판단력을 흐리게 해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뭐 인간이란 원래 불완전하고 나도 언제 그런 상황에서 그릇된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뭐라 할 순 없지만 '상식대로 살자'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추신: 직접 이 사건과 관련이 있지는 않지만 조금 더 이야기를 확대하자면 청와대, 前 정권 비자금 등을 이용한 사기행각이 꾸준히 하나의 테마로 발생하고 피해자도 여전하다. 결국 이 말은 우리네 전직 대통령들이 이런 일에 연루돼 있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여전하다는 반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