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도 성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어른들이 빨리 인정해야 합니다."
10대 임신 현실을 취재하면서 만난 교수님이 힘주어 한 말입니다. 불편하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
뜨거운 여름의 오후를 탓하며 찾아간 서울의 한 동네.
저보다 10년도 더 어린, 앳된 티가 풀풀나는 얼굴에 여드름이 송글송글 돋아있는 그 학생이 임신 4개월에 접어드는 예비 엄마였습니다.
혹시나 내가 자기를 '날라리 여고생이나 한심한 학생'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오해를 하고 있지는 않을까, 어린 나이에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견뎌냈어야 하는 주변의 걱정과 잔소리와 수근거림에 풀 죽어 있지는 않을까, 온갖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밝게 맞아준 덕에 조심스레 궁금했던 것들을 이야기 할 수 있었습니다.
+++
▷ "아이 가지니까 어때요?"
▶"처음에는 지금 가지면 어떻게 살아 어떻게 살아 그랬는데, 막상 딱 가진걸 아니까 '아..낳아야겠다. 하나의 생명이니까..' 그런."
▷"부모님께 말씀 드렸다고 했는데 용기가 대단하네요."
▶"친구한테 먼저 문자 보내고, 고민하다가 낳아야겠다 싶어서 말을 했어요. 아버지가 화를 조금 내시다가..인정해 주시고, 어머니도."
▷"학교는 다니고 있나요?"
▶"아뇨. 학교에서 자퇴서를 쓰라고 했어요. 아니면 애를 지우고 다니든지. 담임선생님이 반 애들한테는 입도 뻥긋하지 말라고.. 자격증 딴게 있는데, 학교를 졸업해야만 받을 수 있다더라고요. 자격증을 받아야 아이라도 먹여 살릴텐데.."
+++
한시간 정도에 걸쳐 여학생, 그리고 그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내내 저는 좀 혼란스러웠습니다.
스스로 방치되는 10대 임산부에게 관심을 기울이자는 취지로 기사를 준비하면서도 마음 깊은 가운데서 '너부터도 문제아라는 인식을 버리지 못하면서 그게 되겠냐?'는 생각들이 계속 치밀고 올라온 탓입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이를 갖는 10대에 손가락질을 하든 하지 않든 간에 10대 임산부의 숫자는 빠른 속도로 늘어가고 있습니다.
2006년 천 4백여 건에서 2007년 2천 3백여 건, 그리고 다시 2008년에는 3천 3백 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공식 집계한 기록이니까 몰래 아이를 낙태시키거나, 낳고 버리는 경우, 무허가 의료기관에서의 출산 등을 합치면 1년에 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임신을 한 10대는 여러가지 문제에 봉착합니다.
사회적인 비난은 차치한다손 치더라도 먼저, 학교를 다닐 수가 없습니다. 교육권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에 속하지만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낙태나 자퇴를 강요당합니다.
아이를 낳긴 낳아야겠는데도 질 높은 진료는 꿈도 못 꿉니다. 숨기기 위해 배를 복대로 꽁꽁 감고 다니거나 산부인과 진료비를 마련하지 못해 막달까지 산부인과 한 번 못가고 끙끙 앓는 산모들이 허다합니다.
기존의 복지 정책이 기혼부부나 흔히 말하는 정상적인 가정 위주로 설계됐기 때문에 10대 임산부들이 볼 수 있는 혜택이 사실상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결국 문제를 저지른 애들이 받는 당연한 고통' 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겠죠?
하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가 반드시 돕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점을 이해하실 겁니다.
요즘 고령사회 고령사회 하는데, 우리가 노년이 됐을 때는 10대들이 낳은 아이가 산업의 주축이 되겠지요. 지금처럼 10대 임산부들이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중퇴하면 좋은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죽었다 깨어나도 어려워집니다.
당연히 10대 엄마도, 그 밑에서 자라날 아이도 사회의 빈곤층으로 전락 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죠 (사회적 빈곤층을 돕는 것 자체를 싫어하시는 분들에게는 딱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지금 조금만 도우면 나중에 들어갈 사회적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훌륭한 인재로 키울 가능성이 있는데도 너무 아깝지 않나요.
아이를 가진 10대 여성에게만 비난이 쏟아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10대 임산부가 일년에 만 명 있다면 아이가 생기는 과정에 관여한(^^) 남성도 (10대든 아니든) 만 명은 되는데, 학교를 자퇴하고 갖은 불편을 감수하는 건 늘 10대 여학생들이니까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선진국들은 이런 10대 임신 문제를 이미 겪었는지 다양한 제도를 구비하고 있습니다.
중고등학교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이 구비돼 있다든지, 임신을 한 사실을 학교에 알리면 반드시 아버지를 찾아내 양육비를 절반 부담하게 한다든지, 아니면 기혼 부부들과 똑같이 출산과 양육혜택을 준다든지 하는 것들이지요.
전문가들은 10대 임신 증가에 대한 원인을 다양한 곳에서 찾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한 성문화의 개방, 입시에 치우쳐서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치지 않는 성교육 등등이지요.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연애를 하는 모든 10대가 어떻게 하면 성관계를 할까 하고 고민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소위 말해 발랑 까진 10대들만의 문제는 아니라는건 분명해졌어요. 최근 저희 센터에도 남자친구와 주기적으로 성관계를 맺는 모범생이 있었는데요. 똑부러지게 피임을 하는 것만큼이나 공부를 잘해서 명문대에 수시 합격했다고 연락이 왔어요. 하다 못해 춘향전의 춘향이도 10대 청소년 아니었나요."
자, 인정하시겠습니까?
세월의 흐름을 타고 10대들의 연애는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어른들이 애써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려고 해도, 10대들은 아직도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수정 어쩌고 저쩌고 하는 어른들을 비웃으며 자신들의 의지대로 행동하고 있을 겁니다.
아직 신체적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10대.
그 10대들이 성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도록 돕고, 혹시 어른들의 관심이 부족해 임신을 비롯한 소위 '실수'를 한 아이들에게는 먼저 따뜻한 손을 내밀어 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