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나라는 없다"
정부 관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고 MB 정부 출범이후 외환시장 개입으로 현실화되기도 했던 정책기조가 드디어 본격적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정부가 급변동하는 외환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며 내놓은 이번 대책은 일단 국내로 달러를 빌려 들여오는 규모를 규제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손' 이 움직이는 자유로운 외환시장이라고 밝히고 다니면서 사실상 '보이는 손'이 각종 개입을 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을 인정하고, 외환시장을 가능한 관리하겠다는 뜻을 국내외에 천명한 것으로 봐야합니다.
원·달러 환율이 최근 하루에도 20~30원씩 움직이는 불안한 양상을 보이고 있기때문에 시기적으로 지정학적 위험이란 부담이 있긴하지만 지금 대책을 발표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우리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와 달러를 찍어내지 못하는 현실에서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은 숙명입니다.
다만 외국인들이 주식이나 채권을 급격히 사거나 팔면서 환율이 급등락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국내 기업이나 은행들때문에 생기는 불안 요인은 줄여보겠다는 것이 정부 대책의 의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조선업체 등의 선물환 매도인데요. 과정은 이렇습니다.
세계 1위 조선국가인 우리 업체들이 대규모 수주를 하면 달러 선물환을 받는데 몇 년 뒤에 환율이 급락할 지 모르니까 이걸 국내 은행들에게 팝니다. 국내 은행들이 이 선물환을 다른 곳에 그대로 팔면 부담이 없을 텐데 선물환은 거래하는 곳이 많질 않습니다. 따라서 국내 은행들도 장래 환율 급락에 따른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 선물환 액수만큼 우선 달러를 빌려서 외환시장에 내다 팔아 위험을 줄입니다. 이럴경우 외환시장에 달러 공급이 늘면서 원.달러 환율을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습니다.
국내은행들은 달러를 주로 1년 미만의 단기로 해외은행 한국 지점으로부터 빌려왔는데요.
이런 거래가 주로 우리 단기외채의 대부분을 차지해 왔습니다.
문제는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처럼 금융시장이 어려워지면 이 단기외채 규모때문에 과연 갚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커져 그때마다 환율이 급등하고 위기가 닥쳐왔던 것입니다.
정부가 이번에 선물환 거래 한도를 규제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죠.
그렇다면 시장은 과연 이번 조치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지난 2007년, 이번 조치보다 약한 외환시장 규제가 있었습니다. 당시 외국은행 국내지점들이 앞다투어 국내 보유 채권을 팔고 빠져나가면서 채권 가격이 급락하고, 원.달러 환율은 급등했는데요. 이번에도 선물환 규제 발표 움직임 이후 이달들어 원.달러 환율이 43원이나 뛰었습니다.
다만 정부 규제책이 이미 체결된 거래에 대해선 2년간 유예기간을 주기로 했기때문에
2007년 같은 반응은 아니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많은 편입니다.
그래도 앞으로 채권과 외환시장을 흔들 변수인 것은 분명합니다.
정부 규제의 골격은 국내은행은 자기자본의 50%, 외은지점은 자기자본의 250%, 그리고 기업들은 실물거래의 100% 한도에서만 선물환 거래를 할 수 있게 한 건데요.
현재 한도를 초과한 은행 19개 가운데 16개가 외은 지점이고, 초과한 규모 187억 달러의 9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외은지점들은 달러를 국내은행들에게 빌려주고 받은 원화로 국내채권에 투자해 금리 차이를 이용한 땅 짚고 헤엄치기식 '무위험 거래'를 해 왔는데요.
결국 외은지점들은 앞으로 달러를 빌려주고 받은 돈으로 산 국내 채권을 시차를 두고 처분할 수 밖에 없는데 규모가 20조원 안팎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돈이 빠져나가면서 채권 가격이 떨어지고 환율이 상승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반면 국내 기업이나 은행들은 대부분 지금도 규제 한도 내에 있기 때문에 당장 충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전체적으로 보면 은행권의 단기외채가 줄고, 환율 급변동을 줄이는데도 이번 조치가
도움이 될 것이란 분석이 많은 편이긴 합니다.
하지만 외환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외은지점 자금을 막게 되면 일시적으로는 단기외채가 줄고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는 듯한 '착시효과'가 나타날 수 있지만 사실은 해외 단기투기자금의 국내 유입을 늘리는 결과를 초래해 위기시 급격한 자금 유출을 키울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걱정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때문인지 정부가 앞으로 외환보유고를 현재도 2천7백억 달러 수준으로 사상 최고 규모인데 이를 더 늘려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한국투자공사(KIC)나 국민연금의 해외 자산 비중도 늘려 급할 때 외환보유고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는데요. 가급적 위기를 위해 실탄을 쌓아놓겠다는 뜻이죠.
외환시장의 본격적인 규제는 이제 첫 발을 딛게 됐습니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과연 우리 의도대로 시장이 따라 줄 지, 아니면 지난 2004년과 2007년 처럼 시장의 반격에 무릎꿇고 규제를 포기하게 될 지, 격동의 외환시장을 지켜보는 관전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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