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자의 전설 이렇게 가나?
이 사진 속의 여성을 아시나요? 바로 어제로 기자를 그만 두게 된 헬렌 토마스 전 백악관 출입기자입니다. 1920년 8월 4일생이니 한국 나이로 91세네요.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 나이까지 기자일을 계속했다는 거죠.
아이젠하워 대통령 임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백악관을 거쳐간 모든 대통령을 취재한 유일한 기자이기도 합니다. 본격적으로 백악관 출입기자가 된 것은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부터입니다.1961년이니까 올해로 59년이 됐네요.
백악관이라는 한 출입처만 59년을 담당한 것이죠.
대단합니다. 정년이 있는 한국 언론계 현실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그래서 마냥 부럽기만 한 헬렌 토마스의 기자 이력입니다.
미국 언론계에서도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헬렌 토마스의 지난 삶을 사진으로 간단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지난해 8월 4일 헬렌 토마스의 89번째 생일때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축하해주고 있는 모습입니다. 헬렌 토마스가 앉아 있는 곳은 백악관 브리핑룸 기자석의 맨 앞줄 한 가운데 자리입니다. 백악관 출입기자 가운데 유일하게 지정좌석을 갖고 있는 기자이기도 했습니다.

헬렌 토마스가 가장 뛰어난 정치인이자 대통령으로 꼽고 있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취재하는 사진입니다. 어쩌면 그녀가 가장 먼저 담당하게 된 대통령이어서 첫 사랑 같은 존재일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케네디를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기억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전에 세상을 떠난, 미국인들이 근래 대통령 가운데 가장 많은 업적을 남긴 대통령으로 추억하고 있는 레이건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는 헬렌 토마스의 모습입니다.

닉슨 대통령이 1972년 역사적인 중국 방문을 했을 때 사진입니다. 닉슨 대통령 부부가 주은래 중국 총리와 함께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네요.
주총리 오른쪽의 주황색 옷을 입고 있는, 왼손으로 하얀 서류봉투를 들고 있는 여성이 헬렌 토마스 기자입니다. 헬렌은 당시 미중 정상의 만남을 취재한 유일한 여성 기자였습니다.
바바라 월터스도 이때 동행 취재하기는 했지만 그녀는 NBC 방송팀의 일원으로 갔다고 하네요. 헬렌 토마스 왼쪽 옆에는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모습도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사진이 인상적입니다.

워터게이트로 닉슨이 불명예퇴진한 뒤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포드 대통령을 취재하고 있는 헬렌 토마스 기자입니다. 50대 중반의 베테랑 다운 포스가 느껴집니다.

카터 대통령 시절 기자회견장에서 헬렌 토마스 기자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재임기간 섹스 스캔들로 곤욕을 치른 빌 클린턴 대통령과 함께 한 모습입니다. 빌의 재임기간이 1990년대이니까 헬렌 토마스도 70대였네요.

헬렌 토마스는 매일같이 브리핑이 시작되기 30분 전에 자리에 와서 앉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진기자들이 리허설 삼아 헬렌 토마스의 사진을 많이 찍었다고 합니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산책을 했던 철학자 칸트처럼 매일 같은 시간에 백악관 브리핑룸의 자리를 지키던 그녀의 별명은 다름 아닌 '앉아 있는 부처'였다고 합니다.

80대 후반의 나이로 오바마의 백악관을 출입하게 된 헬렌 토마스는 고령으로 인해 가끔씩 졸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깁스 백악관 대변인이 그녀의 자는 모습을 보고는 다른 기자들에게 장난스러운 모습으로 조용히 해달라고 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네요.
이런 사진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다 헬렌 토마스 덕분이겠죠.
이렇게 사진을 보기만 해도 기자로서 헬렌 토마스가 지나온 인생이 얼마나 드라마틱하고 고단했을지, 그래서 더욱 값어치 있는 길이었는지가 짐작이 됩니다.
아쉽게도 그녀가 이번에 기자일을 그만두게 된 것은 다름 아닌 구설수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언론보도로 상황을 알고 계신 분들도 있을 텐데요.
다름 아니라 지난달 27일 백악관에서 열린 Jewish Heritage Celebration Day 행사때 유대교 랍비 데이비드 네세노프가 카메라를 들이대고 그녀에게 이스라엘에 대해 한 말씀을 부탁했는데요,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에게 ,젠장, 팔레스타인 땅에서 떠나라고 하세요. 그 땅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것입니다." "어디로 가라는 건가요?"라고 묻자 헬렌 토마스는 "집으로 가야지요. 그 사람들이 원래 살던 폴란드나 독일로 가야 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바로 직전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국제구호선 공격과 맞물려 평소 이스라엘에 반감을 품고 있던 그녀의 성정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인데요, 다름 아니라 이스라엘의 구호선 공격 다음날 브리핑에서 백악관측이 이스라엘 비난에 소극적으로 나오자 헬렌 토마스는 "당신들이 이러는 게 다 이스라엘의 로비 때문 아니냐? 공격한 나라가 이스라엘이 아니라 다른 나라였더라도 당신들이 이렇게 나왔겠느냐?"고 공격성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이 발언이 문제가 된 것은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라는 부분보다는 폴란드나 독일로 가라는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2차 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수많은 유대인들이 희생됐던 홀로코스트의 아픈 기억을 건드렸다는 거죠.
사실 헬렌 토마스는 평소에도 자신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기사도 그렇게 썼던 기자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발언도 헬렌 토마스 다운 말이었다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짐작하시는 것처럼 유대인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 땅에서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것 역시 일종의 금기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백악관 깁스 대변인까지 나서서 "모욕적이며 비난받을 만한 발언이다. 그녀가 사과해야 한다."는 논평까지 냈을까요?
헬렌 토마스는 며칠 안 지나 자신의 개인 웹사이트에 "나는 지금 그 때 한 발언을 가슴 속 깊이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 발언은 중동의 모든 당사자들이 상호 존중과 관용의 필요성을 깨달을 때 평화가 올 것이라는 나의 평소 신념과 다른 발언이었습니다. 그런 평화의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랍니다."며 사과성 글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헬렌 토마스가 마지막으로 소속돼 있던 '허스트 코퍼레이션'측은 어제(7일)자로 헬렌 토마스가 은퇴한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헬렌 토마스의 은퇴는 올바른 결정이었습니다. 그녀의 발언은 공격적이었고 선을 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녀의 빛나는 이력에 오점이 됐습니다." 오바마는 물론 그녀에 대한 존경의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녀야말로 워싱턴 그 자체였습니다."
세계의 심장부 미국 워싱턴의 심장부인 백악관, 온갖 권력투쟁과 음모가 횡행하고, 세계를 뒤흔든 갖가지 정책들과 성명이 나왔던 그 곳을 59년간 취재해왔던 살아있는 언론계의 전설의 마지막치곤 황량하기 그지 없습니다. 저같은 이방인들은 헬렌 토마스의 갑작스러운 퇴장을 보면서 아쉬움을 느끼는 한편 유대인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한지도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이제 다시는 헬렌 토마스가 이렇게 대통령을 향해 거침없는 질문을 하는 모습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SBS 워싱턴 지국 사무실이 있는 내셔널 프레스 빌딩의 내셔널 프레스 클럽의 첫 여성 회원, 백악관 출입기자협회 첫 여성 회원이자 첫 여성 회장, 미국 언론사상 최장수 백악관 출입기자였던 헬렌 토마스는 기자회견때 질문을 하면서 항상 마지막은 "Thank you, Mr. President."라고 했답니다. 그 목소리도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USA Today 창립자인 알 뇌하스가 쿠바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를 인터뷰하면서 "미국과 쿠바의 민주주의에서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이냐?"고 묻자 카스트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헬린 토마스 기자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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