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정치

'12시간 동안 죽다 살아난'

박현석

입력 : 2010.06.03 17:32|수정 : 2010.06.03 17:33


"살아 돌아왔습니다."는 거의 죽을 뻔 했을 때 하는 얘기죠.

오세훈 시장 입에서 그 말이 나올 줄은 솔직히, 저는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아주 여유있게 이기고 돌아와 힘이 팍 들어간 어깨와 한층 뻗뻗해진 고개를 보여 줄 줄만 알았죠.
스스로 '패배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할 만큼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유있는 선두였으니까요.

하지만 '보약' 같은 경험이라고 말 할 만큼, 지난밤 오세훈 시장은 천당과 지옥을 넘나드는 경험을 했습니다.

자정 무렵까지만 해도, 각종 언론사의 카메라기자들은 '패배자 오세훈'을 담겠다며 선거 캠프를 찾은 오세훈 시장을 향해 연신 플래시를 터뜨렸습니다.

캠프로 나오기 직전, 참모들은 오 시장(당시 후보)을 언제 모시고 와야 하는지를 놓고도 심각하게 고심했다고 하는데요, 이런 시나리오를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 등장하기도 그렇고, 더 두고보자니 상황이 바뀔 것 같지도 않은데다 선거운동원들까지 귀가하고 나면 분위기마저 휑~해진 캠프에서 진정한 '패배자'의 모습을 보여줘야 했을테니 말이죠.

결국 일단 나오시라 해서 한 말이 '패색이 짙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정도였다네요. 그 순간이 오세훈 시장에게는 지옥이었을 겁니다.

뒤집기 끝에 오 시장 캠프에서는 새벽 5시 반쯤 승리를 확신했다고 하는데요, 잠깐이나마 은행에 몸 담았던(?) 조윤선 대변인이 연신 계산기를 두드린 결과였다고 하네요.(은행에서 법무본부장을 맡았던 변호사 출신인데...  -.-;;)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서울시의 첫 재선 시장에 당선된 오세훈 시장은 어찌보면 현 정권을 심판한 이번 선거에서 유일하게 '실력'으로 살아남은 몇 안되는 후보일겁니다.

25곳의 자치구 가운데 21곳의 구청장을 민주당이 차지했는데도, 시장은 '오세훈 개인'을 보고 뽑았다는 말이 되니까요. 그래서 민선 5기에 접어든 오세훈 서울시장에 거는 기대와 걱정이 더 큰데요, 4기와는 달리 '여소야대'의 자치구와 시의회,진보성향의 교육감과 일을 함께 해야하기 때문입니다.(시의회도 106석 가운데 79석을 민주당이 차지)

당장 뾰족한 수가 있겠습니까마는, 오세훈 시장은 이렇게 답변하더군요.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의 의견까지 더해져 한층 풍부해진 시정이 될 것으로 기대' 해도 좋지 않겠냐구요...

가뜩이나 힘들어하는 시청 공무원들만 더 업무량이 늘어나는건 아닌 지 모르겠습니다.

4기 때보다 더 철저히, 더 확실히 자료와 근거를 모아야 할 테니까요.(사실 팀장급 이하 시 공무원들은 밤낮 '창의시정'을 외치며, 본인들을 못 살게 굴어온 시장이 행여나 바뀌는 건 아닐까 좋아했다는 풍문도 있습니다 ㅋ)

증권가에는 이런 말도 들리더군요. 일이 힘들어 죽겠다는 직원이 많은, 그런 회사의 주식을 사라는... 서울시 공무원들을 더 힘들게 할 오세훈 시장. 저는 오세훈 시장 본인도 더 힘들어졌으면 좋겠네요.

본인 얘기처럼 보다 풍부해진 의견들을 바탕으로 한층 숙성된 시정을 보여주기를 출입기자로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