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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부앞 풍경

주영진

입력 : 2010.06.07 09:26|수정 : 2010.12.29 18:08

허탕을 치더라도


이틀전 미국 국무부 앞 풍경입니다.

저는 미국을 방문한 천영우 외교통상부 차관을 취재하기 위해 갔습니다. 그런데 이미 다른 나라 기자들이 이렇게 장사진을 치고 있더군요. 어느 나라 기자들인가 물어봤더니 터키 기자들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누구를 기다리기 위해 뻗치기를 하고 있느냐고 했더니 자기네 외교장관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바로 전날 발생한 이스라엘의 국제구호선 공격과 관련해 터키 정부가 강한 톤으로 미국을 비난한 직후였습니다. 즉, 미국이 이스라엘 감싸기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거죠.

그런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터키 외교장관이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을 만났고, 만남 결과를 설명듣기 위해 장사진을 치고 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씁쓸했습니다.

터키 외교장관은 아무런 말없이 이들 앞을 그냥 지나쳐 버렸습니다. 이들이 목청 높여 질문을 던져도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말입니다. 느낌으로는 얘기가 잘 안됐구나 싶었습니다. 그 밑의 한 두명 정도가 평소 친분 있는 기자들한테 다음 약속이 급해서 미안하다고 한 마디 던지고는 황급히 장관을 쫓아 가고요.

기자들이란 피부 색깔이 다르고 사는 곳이 틀리고 회사조차도 천양지차지만 하는 일은 대개 비슷합니다.

저 역시 천영우 차관이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을 만나기 위해 국무부에 들어가있는 동안 기약없이 기다려야 했으니까요. 다만 터키 기자들과 제가 틀렸던 것은 저는 친절한 대답을 들었다는 것이죠.

천영우 차관은 30분 정도 안에 있다가 나오더니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유엔 안보리가 취하기를 바라는 조치는 정치적이고 상징적,도덕적 메시지다. 북한이 다시는 이런 도발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안보리결의문이나 의장성명같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뜻이지요.

46명의 무고한 젊은이가 북한의 어뢰에 의해 희생됐다며 지난 두 달동안 북한을 향해,국제사회를 향해 목청을 높여 왔지만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이 것 뿐이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했습니다. 그리고 이 것이 우리가 처해 있는 국제 질서의 틀일 것이고요.

국무부 앞에서 뻗치기 하는 날이 앞으로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국무부에 들어갔다 나오는 한국 정부의 고위 공직자, 아니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의 고위 공직자의 모습을 자꾸 사극에서 본 것만 같은 착각이 떠나지를 않습니다.

그 사극속에 저렇게 뻗치고 서있는 저같은 기자들이 없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이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