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을 몰랐다면..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지 늘 '기사 판단'이 어렵습니다. 만약 사건의 전모가 애초부터 완전히 공개돼 있다면 기사 판단이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건은 기자의 취재 없이 한 번에 모든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묻고 따지고 찾아보고 사람을 만나는 과정에서 사건의 얼개가 조금씩 드러나고, 그 과정에서 사건이 기사가 되는지 안되는지 결판나는 경우가 많죠.
취재 과정이 부실하면 기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상황,'나는 기사가 안된다고 봤는데 다른 기자는 기사 가치를 발굴해 기사를 써버리는', 기자들 자주 쓰는 말로는 '물 먹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지난주 성동구민종합 체육 센터 붕괴 사고를 취재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 제가 들은 얘기는 '성동구의 체육관 하나 천장이 무너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인명피해도 없다고 합니다. 건물이 무너진 것도 아니고, 빈 체육관 천장이 무너졌다는 게 '8시 뉴스' 리포트로 다뤄질만큼 큰 사건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일단 우선 순위에서 뒤로 미뤄놓고 다른 사건을 취재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날따라 다른 취재들이 빨리 마무리되더군요.
한 숨 돌리고 있는데 아까 휘갈겨 놓은 기자수첩이 눈에 띄었습니다.
'성동주민종합체육센터 천장 붕괴' 귀찮기도 했지만, 어쩐지 찝찝한 마음에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안녕하세요 SBS 임찬종 기자인데요, 성동구민종합 체육관이 무너졌다면서요?"
"아 건물은 멀쩡하고, 천장만 무너진 거에요."
이런 말로 시작된 대화는, 몇시에 무너졌냐, 인명피해는 있냐, 구조는 나갔냐, 왜 무너졌냐 같이 '6하 원칙'을 체크하는 지리한 내용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귀에 쏙 들어오는 말이 튀어 나왔습니다.
"거기 뭐하는 데에요?"
"아 유아체능단이라고, 유치원생들 모아놓고 체육 수업했대요."
"다행히 오늘은 수업 안 했나보네요?"
"아니....아 수업했네요.. 이거 수업 끝나자마자 천장이 무너진거네."
"네?"
"아 맞아요. 우리가 CCTV 확인 했는데, 수업이 49분에 끝나서 애들이 나갔는데 52분에 천장이 무너지더라구."
인명피해도 없고, 붕괴 규모도 작아 '얘기 안된다'고 판단했던 사건이 갑자기 달리 보였습니다. "3분만 늦었으면..아찔한 붕괴" 이렇게 제목도 뽑을 수 있고, 게다가 당시 수업 했던 이들이 유치원생들이었습니다.
그 수업에 아이를 보낸 어머니들, 또 그 비슷한 곳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많은 부모들에게는 가슴을 쓸어내릴 만한 뉴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시간은 오후 7시 20분.
8시 뉴스 들어가기 40분 전이었습니다.
일단 사건 취재를 지휘하는 캡에게 보고했습니다. 마침 당일 사건 관련 리포트가 적어 캡도 리포트 제작을 지시했습니다.
사실 기사 쓰는 것보다도 관련 영상을 확보하고 편집하는 이른바 '제작'을 하기에는 빠듯한 시간대였죠.
여러 선배들의 도움을 얻어 어찌 어찌 무사히 방송을 내보 낼 수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사소한 에피소드입니다. 기사도 큰 기사가 아니었구요.
그래도 저에게는 다른 큰 사건 취재보다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만약 거기서 '3분 전에' '아이들이 수업을 했다'라는 팩트를 찾아내지 못했다면 기사 자체가 안됐을 겁니다.
'하찮은 사건도 기사 쓸 만한 구석은 있다'.
수습 기자 시절 귓 등으로 넘기던 선배의 말을 되새기게 하는 날이었습니다. 정말 앞으로는 꺼진 불도 다시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