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로존에서 우리 돈으로 1100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재정안정기금 설립에 합의하고 유럽중앙은행이 이례적으로 유로존 국가 채권 매입에 나서고 있는데도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거리고 국내 금융시장도 요동치고 있습니다.
1100조 원을 투입하겠다는 발표가 불과 하루 정도 밖에 세계 금융시장을 달래지 못했다는 점에서 볼 때 앞으로 돈을 더 투입한다고 발표한 들 얼마나 효과가 있을 지 의문입니다.
특히 이제 걱정이 유럽 내에서 돈 줄이 마르는 '신용경색(Credit Crunch)'에서 유럽 발 세계 경기 침체, 즉 더블 딥(Double Dip:경기침체 뒤 잠시 회복하다 다시 침체에 빠지는 현상)으로 옮겨가는 양사입니다.
조금 이른 걱정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금융시장이라는 데가 불안심리가 커지면 악재만 보이고, 좋아지는 국면에는 호재만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안 좋을 때는 불안심리가 불안심리를 키우는 악순환이 나타납니다.
더블 딥을 걱정하는 직접적인 계기는 유로화의 추락입니다. 달러 대비 유로화가 1유로에 1.21달러까지 떨어지며 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유럽 금융시장이 불안해 유로화를 파는 이유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빚을 갚기 위해 유럽의 빚 많은 나라들이 허리 띠를 졸라매겠다고 하니까 역내 교역이 많은 유로존 경기가 회복도 하지 못한 채 침체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깔려있습니다.
그러면서 유로존의 경기침체가 유럽경제를 끌어내리고 다시 세계 경기 둔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로화 급락은 유럽에 수출을 많이하는 미국과 중국, 한국, 일본 기업들에게는 당장 수익 감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유럽은 전 세계 IT 시장의 20%를 차지하는 나라고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데 유로화가 떨어지면 유로존에 수입된 외국산 제품 가격은 오르는 효과가 있고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들이 덜 사서 매출이 줄어들 수 밖에 없기때문이죠.
금융위기에서 세계 경기 회복을 선도했던 중국의 유럽 수출비중이 무려 20% 가까이 되고 우리의 경우 직접적인 유럽 수출 비중만 12%이고 중국에 중간재를 팔아 유럽에 수출하는 비중도 상당합니다. 그리스는 세계 선박 발주의 30%를 차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최근 우리 증시에서 유럽 수출액의 절반을 차지하는 IT와 조선주들이 급락한 이유도 유럽발 경기침체 우려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괜찮지만 유럽의 경기침체가 본격화 되면 우리 기업들도 업종에 따라 예상보다 타격이 클 수 있는 이유입니다.
여기에 독일이 투기자금에 대한 제한 조치(공매도 금지)를 발표하고 유럽연합이 금융규제안을 통과시키면서 유럽 내에서 돈을 회수할 길이 막히게 된 외국인들이 현금을 확보하려고 그동안 많이 올랐던 국내 증시를 비롯한 신흥증시에서 공격적인 매도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금융시장을 흔드는 주된 원인입니다.
외국인들은 이달에만 5조원 가까이 팔았고 최근 나흘동안 2조원을 팔아치우고 있는데요. 유럽 내에서 다시 신용경색 모습이 나타나고 있어서 이런 공격적인 매도세는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갈수록 세계 경기 둔화에 대한 걱정은 커지는데 중국은 지금보다 더 성장하기 어려울 것 같고, 유럽은 침체가 우려되고, 각국이 재정부담때문에 금융위기 때처럼 돈을 풀기 힘든 상황이라는 점 때문에 이제 시장의 기대는 온통 미국의 경기회복 속도에 집중되는 모습입니다.
유로존 경기가 침체되지 않고 반등하거나 미국의 경기회복이 속도를 더 낸다는 소식 외에는 현재의 세계 금융시장 불안을 달랠 길이 마땅히 없어 보이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