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나(혹은 일레이나) 케이건 미국 대법관 지명자가 오늘 하루 바빴습니다. 미 의회를 찾아서 인사를 다닌 거죠. 오늘 하루에만 미 상원의 민주당 대표, 공화당 대표, 법무위원장과 법무위원회 야당 간사를 만났습니다. 쫓아다닌 방송기자의 질문에는 아무런 답변없이 미소만 지은 채 발걸음을 옮기더군요. 짧은 시간 만나 특별한 얘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의원들은 지명자에 대해 덕담을 던지고, 지명자는 잘 부탁드린다는 상식적인 수준의 만남이었습니다.
케이건 지명자가 발빠르게 움직였지만 사실 청문회는 오는 8월말이나 돼야 열릴 것으로 보입니다. 공화당 의원들이 굳이 서두를 이유가 없다고 밝히고 있는데다, 금융개혁법안등 현안이 많기 때문입니다.8월말은 미국의 노동절 연휴 직전이어서 회기말이어서 청문회를 열기에도 좋은 시기라고들 하더군요.
아직 석달 정도 남은 청문회지만 부지런히 다니는 케이건 지명자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정치권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것 자체가 진일보한 것이기는 하지만, 지명자와 의회의 관계는 아직 어색합니다. 후보자가 각 정당 대표들에게 인사를 하고, 인사청문특위가 구성된 뒤에는 특위 위원들에게 인사를 하기도 하지만 케이건 후보자처럼 공개적으로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전화로 하거나 조용히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혹 인사를 왔다가 기자들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뭔가 잘못하다 걸린 사람같은 표정을 짓는 후보자도 봤습니다.
하지만 의회 청문회가 통과절차가 아니고 제대로 된 검증의 장이라면 후보자가 공개적으로 의회를 찾아 인사하는 것도 나쁘게 볼 일은 아닙니다. 그 인사 때문에 될 사람이 안되고,안될 사람이 되는 경우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공개적으로 후보자에 대한 각 정당의 반응, 공개석상에 나타난 후보자의 언행을 보면서 국민들은 나름 판단할 또 하나의 근거를 갖게 될 수도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별난 나라이기는 합니다. 케이건 지명자가 아직도 독신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일각에서는 동성애자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는데요. 지명자의 오랜 친구들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 "케이건은 하버드대 재학시절에도 수시로 남학생과 데이트를 했고, 어떤 남자들이 이상형이고, 그 남자의 마음에 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던 평범한 여성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아직 마음에 드는 짝을 만나지 못한 게 유일한 이유라는 거지요.
아, 케이건 지명자의 전임자는 스티븐슨 대법관입니다.올해 나이가 92세인가요, 40년 가까이 대법관으로 지낸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케이건에 앞서 대법관이 된 소토마요르 대법관의 전임자는 수터 대법관, 20년을 대법과으로 지내다가 지난해 은퇴선언을 하고 표표히 고향앞으로 돌아간 귀거래사의 주인공입니다.
이렇게 미국 대법관은 한 번 임명되면 종신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대법관이 되는 것 자체가 법조인으로서는 대단한 영광이고, 대법원의 판결이 미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도 자기네 이념에 맞는 인물들을 앉히기 위해 애쓰고는 합니다. 하지만 종신직이다보니 어떤 대통령은 재임기간 단 한 명의 대법관도 임명하지 못하고 물러나기도 합니다.
미국 민주당은 지난 15년동안 한 번도 자신들의 손으로 대법관을 임명하지 못하다가 지난해 수터 대법관의 은퇴선언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소토마요르 대법관을 임명하기도 했습니다. 케이건 대법관이 청문회를 통과한다면 앞으로 몇년동안 대법관으로 있을지, 소토마요르 대법관과 함께 민주당의 진보적 이념과 여성들의 관점을 반영한 판결에 앞장설지를 지켜보는 것도 의미 있어 보입니다. 제가 기자직을 떠난 이후 한참이 지나서야 혹 은퇴소식이 들려올 지 모르지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