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묻어버린 이계안의 외침

지난 3일, 단 한번의 TV토론도 없는 당 서울시장 경선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이계안 후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 말을 하기까지 마음 속의 정말 많은 것을 억누르고 나왔음이 느껴졌습니다.
지금 확정된 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는 한명숙 전 총리입니다.
'민주'당 스스로 닫아버린 민주적 경선
이계안 후보는 이른바 '마이너' 후보였지만 만만한 인물은 절대 아닙니다. 굴지의 대기업인 현대자동차 경영인 출신으로 5년 가까이 서울시장을 꿈꾸며 준비해왔습니다. 4년 전 열린우리당 경선에선 강금실 후보에게 자리를 내줬습니다. 70쪽 분량의 그의 정책공약집을 잘 읽어보면 그가 오랜 시간 서울의 바닥을 열심히 훑어왔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자들은 또 한번 쓸쓸히 퇴장하는 그를 평가해주는데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또 미래보다는 오늘을 선택하기 급급했던 민주당의 태도에 아픈 질타를 보냈습니다.
경선 실시 여부조차 불투명했던 4월 중순 쯤, 이계안 후보가 몇몇 기자들과 점심 식사를 했었습니다. 그는 누가 들어도 일리가 있는 자신의 논리를 애타게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反 이명박'이라는 틀을 바탕으로 돌아가신 대통령과 살아있는 대통령의 대결 구도로 선거전을 가져가려는 당에게 이 후보는 단지 '잘 설득해 풀어야할 고민거리'일 뿐 이었습니다.
당시 이계안 씨는 기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경선 바람 속에 서서 자신의 이상과 비전을 설파할 기회만 있다면 자신이 이길 수도 있고.. 당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 후보의 외침은 이제 이미 본격화된 선거전의 열기에 녹아 사라졌습니다.
곳곳에서 부는 盧風.. 씁쓸한 이면
지방선거의 간판 격인 서울시장 선거 뿐 아니라 기초단체와 의원 선거에서도 '노풍'의 영향력은 실질적으로 선거 판세를 좌우하고 있음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인지도가 낮은 지역후보들에게서 참여정부 혹은 노 전 대통령 곁에서 일한 경력을 소개하는 항목이 '경쟁력의 핵심'이 된 것입니다.
실제로 5월에 잇따른 민주당의 서울 구청장 경선에서는 참여정부 청와대 비서실 출신들이 대약진했습니다. 어떤 비서관 출신은 당원 투표에서 8% 뒤지고도 시민 여론조사에서만 16% 앞서 승리했습니다. 여론조사 질문 속의 '노무현 대통령 비서관 출신'이라는 약력 소개가 승패를 가를 핵심변수가 됐다는 것입니다.
당 선거관리위원회 조차 시비를 우려해 전직 대통령 이름을 쓰지 못하게 했지만 후보 간 합의하에 '노무현 후보 선대위 무슨 위원장'이라는 경력까지 들어가는 웃지못할 모습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경력에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넣으면 지지율이 성큼 크게 올랐고, 결국 후보 인지도가 극히 떨어지는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젊은층의 몰표를 불러오는 결과를 낸다는 것이죠.
자기 동네를 수년 동안 꾸준히 돌며, 이른바 현장 정치로 승부를 걸었던 다른 후보들에게는 너무나 안타깝고 답답한 현상이기도 했습니다. 지방행정에는 꼭 필요했던 이런 풀뿌리 노력이 '바람'과 '후광'이라는 변수에 맥없이 무너진 것입니다.
진정한 盧風의 의미.. 동지들이 잊었나?
고 노무현 대통령의 기억은 한국 진보세력과 야권에서는 소중한 정신적, 정치적 자산입니다. 하지만 그 후광으로 또 다른 정치를 한다는 것은 분명히 노 전 대통령이 바라는 바도 변화를 바라는 지지층이 바라는 바도 아닐 것 같습니다.
노 전 대통령 자신에겐 지역구의 후광을 스스로 져버리고 야당의 불모지에 출마를 강행했던 숱한 전력이 훗날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는 것을.. 바로 동지였던 야당 정치인들이 잊고 있다는게 이상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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