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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행보

주영진

입력 : 2010.05.02 14:30

상황을 놓치면 안된다


워싱턴은 지금 토요일 저녁입니다. 조금 전에 뉴스전문채널 CNN이 생방송을 하나 했습니다. 백악관에서 열린 백악관 출입기자협회 초청 만찬 행사였습니다. 이 행사가 유명한 이유는 정치의 도시 워싱턴에 유명 스타들이 대거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평소 딱딱한 모습을 보여줄 수 밖에 없는 대통령의 유머를 마음껏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참석은 1923년인가에 시작된 전통이라고 합니다.

 AP통신이 찍은 사진인데요, 활짝 웃고 있는 미셸과 달리 오바마의 표정이 어째 좀 그렇습니다. 실제로 오늘 오바마 대통령은 많은 농담을 하지 않았습니다.농담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도 멕시코만 원유 유출사고의 피해를 막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미국과 미국인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있다."는 말에 더 힘을 줬습니다. 상황이 대통령의 농담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멕시코만 원유 유출사고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환경재해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해당 지역 미국인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굳이 밥먹고 농담이나 하는 그런 자리에 꼭 참석해야 하느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게 나왔습니다. 오죽하면 오바마가 오늘 저녁에 참석할까 아닐까가 관심거리가 됐을까요?  결국 오바마는 참석은 하되 말은 최대한 줄이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멕시코만 원유유출 피해현장에 갈 계획이 없다던 당초 태도를 바꿔서 당장 내일 현장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바다밑에서 새어나오는 원유의 하루 유출량이 8십만 리터의 5배나 될 것이다, 석유시추회사는 물론 연방정부의 늑장대응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비판을 의식안할 수가 없었을 것 같습니다.


이럴 때 대통령과 그 스?들은 적지 않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다른 정치인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선약은 했는데, 갑자기 어떤 일이 터져서 선약을 지키는 게 사람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 상황이 됐을 때 어떤 선택을 하느냐 하는 문제 말입니다. 정치인들 뿐 아니라 저나 여러분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혜롭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고 상황을 해결하는 묘책을 찾아야 하겠죠. 오바마는 그런 면에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것 같습니다. CNN  생방송 도중에 안그래도 앵커가 "멕시코만 현장에 가지 않고 오늘 저녁에 오는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고 하자, 한 코메디언은 "무슨 문제냐, 오늘 저녁 참석하고 바로 가면 되는 것 아니냐?"고 대답하더군요. CNN의 실시간 시청소감에는 "제발, 오늘 저녁과 멕시코만을 연계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영원히.그런 식의 비판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지지자의 글도 실려 있더군요.

아, 오바마는 한 마디 더했습니다. "건강하고 활력있는 언론은 오늘날의 미국에 대단히 중요합니다." 백악관 출입기자들이 모인 자리니 당연한 소리겠지만, 그래도 언론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언론의 역할을 존중하는 대통령이 있는 한 미국 언론인들은 일할 맛이 날 것 같습니다. 다만,일정한 간격을 유지해야 하는 권력과 언론이 오히려 백악관 만찬을 통해서 유착하는 것 아니냐는,어떤 면에서 언론을 향해 본령을 지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백악관 예산국장과 ABC 여기자가 지난해 바로 이 만찬 자리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가 사랑에 빠져 최근 약혼을 했다는 사실도 드러나 이래저래 오늘 만찬 자리는 화제에 오르고 있습니다. 


아, 오바마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평가를 뉴욕타임스 기자들은 현장에서 듣지 못했습니다.백악관 출입기자 만찬이 시시한 농담이나 주고받는 디너쇼로 전락했다면서 재작년부터 만찬에 불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유유출 사고가 일어난 상황에서 오늘 만찬 참석은 옳지 않다는 기사를 쓴 곳도 바로 뉴욕타임스입니다.

뉴욕타임스 하니까 한 가지 얘기가 더 떠오릅니다. 언론 재벌 루퍼스 머독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월스트리트 저널을 뉴욕지역 최고의 신문으로 만들기 위해 뉴욕타임스와의 일전을 선포했습니다. 방법은 월스트리트 저널 배달망을 통해 뉴욕에 관한 소식만 다룬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판을 함께 배달한다, 뉴욕판은 전면 칼라로 만든다, 뉴욕판 광고는 다른 신문 단가의 최대 1/10까지 깎아준다 등등입니다. 뉴욕타임스 독자 2천 2백만, 월스트리트 저널 독자 1천 3백만이라는 현실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짐짓 여유만만한 표정을 짓지만 뉴욕타임스의 속이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