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유일한, 이종문화간의 호스피스 단체를 이끄는 한국인 여성
- 오는 9월 독일회사 후원, 독일 언론과 함께 동아시아 장례문화 탐방 나서- 4월, 독일 인도주의 협회(약칭 HVD) 베를린 사무실. 짧게 자른 흰머리의 동양여자의 분주한 몸놀림이 눈에 띈다. 바로 독일 베를린에서 외국인들을 위해 5년째 봉사단체를 이끄는 한국인 김인선 씨(60세). 9월에 개최될,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장례문화 탐방을 위해 요즘 준비작업이 한창이다.
독일의 유수 전자제품 회사인 BOSCH의 후원과 독일 언론계의 관심 하에 진행될 '장례문화 탐방'의 기획이 분주하기 때문이다. 사회복지가 비교적 잘 되어 있는 독일이지만 여전히 외롭게 죽어가는 노인들에 대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특히 죽음은 독일에서도 터부테마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시아권의 죽음과 장례문화를 통해 노인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움직임이 일고있다.
김인선 대표. 그녀가 하는 일은 외국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동행해주는 호스피스다. 그래서 말 그대로 '동행 이종문화간의 호스피스'라는 명칭을 붙였다. 독일 내 이종문화간의 호스피스 단체는 김씨가 이끄는 이곳이 유일하다. 독일, 특히 베를린은 20% 이상이 외국인이다. 한국인도 통계상으로 5천명에 육박한다. 그녀가 호스피스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도 어쩌면 먼저 한국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출발했다.
현대 산업경제의 종자돈 역할을 했던 파독간호사와 광부들이 점점 나이들어가고 있다. 외롭게 죽어가는 그들을 보듬아 줄 그 무언가가 필요했다. 비단 한국 사람뿐만이 아니다. 베트남, 인도, 필리핀 등 5만명에 육박하는, 이곳에 사는 동남아시아인들도 죽음의 문제는 절실했다. 그녀는 종교와 민족을 초월한 봉사를 기본 모토로 한다. 지난해부터는 단체 명칭이 바뀌었다. '동반자 호스피스'
그동안 김인선 대표는 오랫동안 독일정부를 향해 이국에서 죽어가는 외국인들에 대한 관심을 주문했다. 처음엔 작고 여린 동양여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사무실이 없어 지인의 집을 빌려 교육도 했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 외국인 문제 및 외국인에 대한 처우 부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독일정부 또한 김대표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는 독일 인도주의 협회(Der Humanistische Verband Deutschlands, Landesverband Berlin e. V. (HVD Berlin) 지원을 받아 더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김인선 씨는 22살때(1972년) 독일에 첫발을 내디뎠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도움 없이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16살 때 쉬지 않고 아픈 외할머니를 간호했지만 안타깝게도 사별(死別)을 경험했다. 오갈 데 없는 고아가 된 그녀에게 외할머니의 죽음은 충격 그 이상이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호스피스'를 시작하게 된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김씨는 불우했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독일에서 꼭 성공하리라 다짐을 했다. 독일인 계부의 초청으로 시작된 독일생활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물론 독일에 살고 있던 어머니의 도움은 전혀 없었다. 어머니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어머니는 김씨를 낳고나서 아시아, 유럽 등 전 세계를 유랑했다. 달랑 남겨진 분신인 김씨는 안중에도 없었다. 몇 년 전 돌아가시기 전 뵈었을 때도 어머니는 수장(水葬)을 원했다. 독일 북부에 있는 '오스트 제'(Ost See) 바다 가운데 놓아서 대서양으로, 태평양으로 자유롭게 흘러가길 바랬다.
독일에 도착한 후 김씨는 독일 카톨릭 교회의 도움을 받아 수녀들과 생활하며 간호사 공부를 시작했다. 1987년 디아코니쎄로 Witten에 있는 사회봉사국에서 안수도 받았다.
2001년 카톨릭병원 암병동에서 독일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한 교육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강의하면서 비수처럼 꽂힌 생각이 있었다.
난 어디서 죽고 싶은가. 외롭게 홀로 죽어갈 것인가.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마치 잔다르크가 받은 계시처럼 그 일은 그녀의 생명처럼 생각되었다고 한다. 이후 그녀는 훔볼트 대학에서 신학석사를 마친 후, 호스피스 활동을 위해 자신이 그동안 부어두었던 생명보험을 털었다.
현재 7기 학생들이 호스피스 자원봉사 교육을 받고 있다. 수업은 독일어 수업반과 한국어반이 있다. 1년의 교육이 끝나면 베를린 시정부가 인정하는 자격증을 받게 된다. 현재 7기 한국어반 학생들은 유학생인 20대에서 간호사 출신인 60대까지 연령이 다양하다. 그들이 수업 중에 표현된 언어와 체험들은 하나의 우물에 담겨진다. 그리고 그 우물은 해갈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마음껏 부어진다. 1년의 과정 안에는 실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찾아 봉사하는 시간을 갖기 때문이다. 현재 음악치료사, 미술치료사, 교사, 간호사, 작가 등 다양한 경력자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걸어왔던 일생기를 더듬으며 먼저 자신을 점검하고 치료하는 시간을 갖는다.
"남을 위해 봉사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을 알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특히 죽음의 문제를 토론하기에 앞서 자신의 인생의 서랍을 먼저 정리하고 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업은 김인선 대표가 직접 지도한다. 그는 교육생들이 자신을 알아가고 케어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도록 권한다. 자신 또한 불우한 가정사를 교육을 통해 부단히 정화시켜왔기 때문이다.
올 8월에는 HVD 주최로 동아시아 문화행사를 베를린에서 개최한다. 다문화 및 죽음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는 독일정부 관계자 및 의학계 등 전문가들이 대거 이 행사에 참여한다. 김인선 대표는 이 문화행사에서 동아시아의 식문화 및 장례문화 등을 선보일 생각이다. 9월에 이어질 장례문화 탐방과 독일어 출판에 대한 선행작업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난해 5년 여 동안 앞만 보고 달렸던 그녀에게 시련이 닥쳐왔다. 그녀의 표현에 의하면 '작은 시련'이고 '역동적 힘의 모티브'이라는 시련은 다름 아닌 암.
하지만 그녀에게 암은 죽음의 문제에 대해 더 진솔하게 다가가는 발판이 되었다고 한다. 혹독한 겨울 후에 봄의 새순이 돋는 것처럼, 힘든 항암치료 때문에 짧게 깎은 머리에는 뾰족뽀족 새로운란머리카락이 자라가고 있다.
"이 머리도 결국 자라잖아요. 비록 흰머리가 많지만요. 흐흐흐... 희망은 항상 절망의 언저리에 함께 있답니다"
죽음의 문제를 연구하는 그에게 희망의 문제는 왠지 언밸런스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결국 잘 죽어가는 것도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을까.
그녀는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동행마을'이라는 복지관을 베를린에 세워 동아시아 및 외롭게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의 쉼터를 조성하고 싶어요. 온돌방도 만들고 재미있는 교육도 하고, 치매간호도 하는 것 말이죠. 아시아 사람들은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니만큼 정을 느끼게 하는 복지관 만들고 싶어요."
한국은 노인복지관이 많이 있지만 개인주의가 팽배한 이곳 독일에서는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한다. 게다가 재정적 후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기에 이루어질 수 없는 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게 꿈으로 끝나는 건 아니겠죠?” 김씨가 옆에 앉아 있는 독일인 동료에게 웃으며 묻는다. "인선!, 그것은 꿈이 아니라 비전이에요. 꿈은 '한여름밤의 꿈'처럼 지나갈 수도 있지만 비전은 그렇지 않아요. 생각한 만큼 이루어진답니다"
박경란 SBS U포터
https://ublog.sbs.co.kr/kyou723(※ 이 기사는 '연합뉴스'에도 송고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