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부분의 성(性) 관련 범죄는 친고죄입니다.
친고죄는 다 아시다시피 피해 당사자가 고소를 원하지 않을 경우 국가 기관이 나서서 죄를 물을 수 없도록 한 제도입니다. 쉽게 말해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경찰이나 검찰이 설사 그런 범죄 사실을 알았더라도 문제를 삼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죄는 피해자의 고소나 처벌 의사와 상관없이 국가기관이 알게 되면 무조건 처벌합니다. 피해자의 의사는 형량을 결정할 때 참고하는 요인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죄에 대한 처벌은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건전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친고죄는 그 예외입니다. 피해자의 명예를 보호한다는 취지입니다.
일견 성(性 )범죄라면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뜩이나 수치스러운 일을 당했는데 수사나 재판 때문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을 계속 떠올려야 하고, 말해야 하고, 누군가와 다퉈야 한다면 싫을 만도 합니다. 그런 피해자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방안인 듯 합니다. 피해자의 선택권을 폭넓게 인정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럼 친고죄는 과연 피해자에게 유리하고 바람직한 제도일까요?
강간죄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형을 받는 중범죄입니다. 죄로 인정되면 엄한 처벌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범죄를 없는 일로 돌릴 수 있습니다. 피해자가 합의만 해주면 됩니다.
내가 그런 범죄자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피해자에게 달려가서 살려달라고 매달리겠죠. 돈을 바리바리 갖다 바쳐서라도 용서를 얻어내면 되겠죠.
그런데 만약 끝내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하지 않으면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피해자가 야속해질 것입니다. '관용'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않는 냉혈인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생각해봅시다.
죄는 누가 짓고 누구를 원망하는거죠? 절도나 강도라면 가해자가 감히 피해자에게 원망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을텐데 성 관련 범죄는 거꾸로 가해자가 피해자를 탓하게 되는 것이죠?
친고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성 범죄 피해자들은 2차 피해를 입게 되는 경우가 대단히 많습니다.
관련 단체를 취재하면서 접한 사례들은 말 그대로 가관입니다.
가해자의 부모가 피해자 직장에까지 찾아와서 큰 소리로 따지는 경우, 집 앞에 한달 넘게 진을 쳐서 바깥 출입도 못하게 막는 경우 등은 약과입니다. 폭력을 동원해 합의를 강요하기도 하고, 살해 협박을 하거나 피해자 가족들에게 해꼬지를 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친고죄가 피해자에게 권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엄한 책임을 지우는 셈입니다.
합의를 하게 되는 과정도 문제입니다. 가해자가 하도 용서를 구해서 합의를 해주기로 했다고 칩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금전적인 피해보상 얘기가 나올텐데, 그 순간 피해자는 '꽃뱀' 취급을 받게 됩니다.
싹싹 빌던 가해자들은 갑자기 자신들이 '갑'인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피해자는 돈을 노리고 문제를 일으킨 부도덕한 인간으로 매도됩니다. 악덕 빚쟁이인 것처럼 여겨집니다. 이 또한 친고죄가 낳는 부작용입니다.
이런 상황이 성 관련 범죄에 대한 죄의식을 약화시킨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대단히 무서운 범죄인데도 "나중에 합의하면 되지", "돈으로 해결하면 되지"하는 관념으로 인해 그 엄중성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죠.
죄를 모면할 또 다른 길이 뚫려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죄목에 대한 사회적 방어는 헐거워질 수 밖에 없다는 주장입니다. 친고죄를 만든 취지 자체가 전근대적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일반 폭행이나 강·절도의 경우 범죄 피해자라는 사실을 애써 숨겨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별나게 성 관련 범죄는 피해자에게 수치스러운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줍니다. 우리 사회에 엄존하는 여성 차별의 한 유형이라는 설명입니다.
성 피해를 입은 여성에 대해 사회가 '뭔가 그런 피해를 당할 만한 부적절한 일을 했을거야.', '처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좀더 노골적으로 말해 '먼저 꼬리 친 것 아니야'하는 시각을 갖고 있어서 도덕적으로 책임을 지운다는 것이죠.
그리고 친고죄를 만들어 여성들에게 '성폭력 피해는 숨겨야 하는 것'이라는 엉뚱한 인식을 강화한다는 것입니다. 친고죄는 법률 선진국에서는 아예 개념조차 없다고 합니다.
다만 이웃 일본만이 강간죄에 한해서 적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도 유교 관념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나라이니 만큼 비슷한 맥락에서 제도를 운용하고 있겠군요. 여성 정조에 대한 유별난 관념이 친고죄라는 기형적인 제도를 낳았다고 반대론자들은 주장합니다.
친고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은 피해자의 명예를 보호하는 것은 수사 상황에서 피해자의 신원 노출되지 않도록 하고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좀더 편안하게 진술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보호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해결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피해자의 처벌 여부 의사는 다른 범죄와 마찬가지로 형량을 감경 요소로 취급하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여러분은 성 관련 범죄가 친고죄여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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