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생활·문화

[U포터] 우리는 승리의 순간에 무엇을 했던가

이희동

입력 : 2010.03.25 16:02


처음 영화 '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를 보리라 결심한 것은 영화가 다룬 인물, 넬슨 만델라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가르치려드는 까닭에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가장 좋아하는 배우 중의 하나인 모건 프리먼의 만남이었지만, 어쨌든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는 만델라가 영화의 주인공이라니 그것만으로도 영화는 기대할만했다.

만델라.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전 대통령. 27년간의 옥살이를 꿋꿋이 버텨내어, 결국 차별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이라고 할 수 있는 흑백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마침내 승리자가 된 살아있는 영웅. 과연 영화는 만델라에 대해 딱 이만큼 알고 있는 내게 무엇을 더 이야기 해줄까?

남아공의 승리

영화의 초반부는 지루했다. 한쪽에선 백인들이 럭비를 하고, 그 건너편에서는 흑인들이 축구를 하는 첫 장면을 비롯하여 남아공의 현실에 대한 설명이 영화의 주를 이루는 탓이겠지만, 특히 감독의 편집이 무미건조하고 투박한 까닭이었다. 보통 스포츠 영화 하면 초반에 역격과 고난을 늘어놓고 감동적인 인간승리를 그리는 법인데 감독은 이 밋밋함으로 무슨 감동을 주려는 걸까?

그러나 이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우선 1995년 남아공 럭비 월드컵 개막과 함께 흘러나오기 시작한 영화 음악이 관객들을 술렁이게 했다. 대번에 '라이온 킹' 주제곡을 떠올리게 만드는, ‘붐바붐바’ 하며 흥얼거릴 수 있는 바로 그 낯설지 않은 아프리카 리듬이 선율을 타면서 장황한 설명에 지쳐 있던 관객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한 것이다.

한 경기 한 경기 기적을 일구기 시작하는 남아공 대표팀 스프링복스. 월드컵 출전권도 주최국으로서 겨우 얻어낼 수 있었던 최약체 스프링복스가 한 팀 한 팀 이길 때마다 나는 영화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비록 여타 스포츠 영화와 달리 현란한 기교는 없었지만, 그 영화 속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했다. 감독 역시 팩트의 힘을 믿었을 테지.

드디어 월드컵 결승전. 남아공의 상대는 예선전의 모든 팀들을 큰 점수 차이로 이기고 올라온 강력한 우승후보 뉴질랜드였다. 경기에 앞서 마오리족 특유의 군무로 상대팀의 사기를 꺾고 시작하는 뉴질랜드. 그것은 원래의 원주민인 마오리족의 전통을 존중하여 강팀을 만든 뉴질랜드와 흑백 갈등을 이제부터 치유해야 하는 남아공과의 대결이었다. 럭비계의 살아있는 전설 요나 로무를 앞세운 뉴질랜드를 과연 남아공이 꺾을 수 있을까?


  ▲ 기적을 일구기 위한 발걸음

객관적인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남아공은 뉴질랜드와 동등한 경기를 펼친다. 남아공은 날카로운 뉴질랜드의 공세에 직면하게 되지만, 스타디움을 가득 매운 6천명의 함성이 쓰러진 선수들을 일으키고, 4천 3백만 국민의 하나 된 응원이 선수들의 투지를 북돋는다. 결국 남아공의 승리. 그 어떤 이가 이 승리를 기뻐하지 않겠는가. 그것은 약자가 강자를 이겼을 때 느낄 수 있는 쾌감 때문이었으며, 이 극적인 순간을 연출해낸 만델라에 대한 감탄, 그리고 그렇게 하나가 된 남아공 국민에 대한 감동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뿐이었을까? 그것만으로 감동을 느끼기에 영화는 너무 투박하지 않은가?

승리의 기억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올렸던 것은 2002년 월드컵이었다. 대한민국이 4강에 들었던 그 뜨거웠던 6월의 기억.

아마도 내가 영화를 보면서 재미있다고 느낀 건 바로 광화문에서의 기억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 밋밋한 편집에도 불구하고 스타디움을 가득 매운 이들이 하나 되어 남아공을 외칠 때 느낄 수 있는 희열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그와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 축구에 관심이 있었던지 없었던지 상관없이 모든 국민이 하나가 되었던 2002년의 기억. 비록 혹자는 그 때의 집단적 열기를 파시즘과 연결시키고 그 ‘국민’의 호명을 부담스러웠다고 고백하지만, 어쨌든 경기가 끝나고 나를 비롯해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광화문에서, 신촌에서 하이파이브를 하고 무조건 껴안는 광경은 분명 충격이었다. '우리는 하나'라는 당위성이 현실이 되는 순간. 그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강력한 집단적 기억이 새롭게 형성되는 순간이었으며, 스포츠의 위력을 다시금 목도하는 현장이었다. 왜 독재자들이 단순한 스포츠 경기에 그리 세심한 배려를 쏟았었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된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경기가 끝나고 시상식을 하기 위해 경기장으로 걸어 나오는 만델라가 다시 보였다. 스포츠라는 에너지를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이 아니라 국가의 통합을 위해 쓸 줄 알았던 그의 선견지명이, 그리고 그를 지도자로 뽑은 남아공 국민들이 부러울 뿐이었다.

과연 우린 승리의 기억을 어떤 용도로 사용했으며 전유했던가. 또, 그럴만한 지도자를 가져본 적이 있던가. 80년대 국민 통합은커녕 지역 분열을 획책하기 위해 프로야구가 도입되었고, 한일전의 격앙된 민족주의 감성은 사회적 의제를 모두 집어삼키며, 2002년 월드컵에서의 승리는 국가주의를 소재로 한 대자본의 마케팅으로 기억되는 우리의 처참한 현실.

어쩌면 2002년 이후 승리의 기억을 소환해 내어 '정치적 계산'이 아닌 '인간적 계산'으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했던 사건은 2009년 촛불집회가 처음이자 마지막인지도 모른다. 권력과 자본의 간섭에서 벗어나, 광장에서 승리를 즐기던 그때 그 기억을 반추했던 건 촛불집회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패배주의를 넘어

스프링복스 팀은 월드컵 도중 만델라가 수감되어 있던 감옥으로 견학을 나간다. 연습할 시간도 빠듯한 이 시기에 무슨 견학인가 하겠지만 그들은 만델라가 27년간 생활했던 참혹한 현장을 방문한다.

정복당하지 않은 내 영혼을 위해
내가 임하는 모든 신들에게 감사합니다.
나는 내 운명의 지배자요
내 영혼의 선장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만델라가 그 오랜 시간 동안 읽으면서 견뎌내었다는 윌리엄 E. 헨리 '인빅터스'를 읊조리며 자신들의 승리를 결의하는 스프링복스 팀. 그 결의가 실제로 있었는지, 혹여 있었다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팀원들은 만델라의 삶을 통해 희망을 얻고 이를 발판 삼아 승리를 거둔다. 만델라 개인의 역사가 사회 전체의 역사가 되는 순간인 것이다.


▲ 부러운 만남

지도자의 인생이 그 사회 구성원의 귀감이 되고, 이를 통해 사회 갈등이 치유되는 사회. 역시 부럽다는 생각이 우선이었다. 우리는 그런 지도자를 가져본 적이 있던가. 혹자들은 만델라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교하기도 하지만, 그 이유야 어쨌든 현충원 내 김대통령 묘소가 훼손되기도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 아닌가.

이젠 승리의 기억을 소환할 때이다. 냉소와 무기력을 걷어내고 함께 승리를 자축하던 그 때를 떠올려야 한다.

이희동 SBS U포터 https://ublog.sbs.co.kr/rcn60(※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송고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