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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학계 상반된 역사관…쟁점마다 엇갈려

입력 : 2010.03.23 19:40

일본 "고종 을사조약 주도" 주장…반발 예상, "한·일교과서 토론의 장 마련…긴호흡 필요"


한국과 일본이 23일 공개한 제2기 한·일 역사공동연구위 최종보고서는 시대를 관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양국 역사학자들의 시각과 인식차이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일부 주제에서 공통의견을 도출하고 역사상 처음으로 교과서 공동연구를 시도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현해탄의 파고 만큼이나 융화될 수 없는 양국의 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는게 안팎의 평가다.

특히 을사늑약이 당시 고종황제의 주도 하에 체결됐다는 일본 측 주장을 경술국치 100년만에 접해야 하는 한국인들의 좌절감은 한일 관계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연결되고 있다.

한.일 양국에서 각각 17명씩의 역사학자로 구성된 제2기 공동위는 고대사와 중.근세사, 근.현대사 그리고 교과서위원회 등 4개의 분과에 걸쳐 모두 24개의 주제를 선정해 2년 6개월간의 공동연구를 마치고 이날 최종보고서를 공개했다.

◇임나일본부설-왜구분야에서 공통의견 도출 =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양국 위원들은 고대 임나(任那)일본부설과 조선 시대 왜구의 주체 등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우선 임나일본부설과 관련해 한반도에 외국의 영토가 존재했다거나 외국이 한반도에서 대대적인 군사활동을 전개했다는 것에 대해 재검토하거나 정정할 필요가 있으며 임나일본부라는 용어가 부적절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또 14∼15세기 왜구의 주요 구성원이 일본 이키와 쓰시마, 마쓰우라 지역의 해민(어민)이라는 견해가 타당하다는 데 양국 의원의 의견이 일치했다고 한국측 위원장을 맡은 조광 고려대 교수는 설명했다.

이 밖에 일본 벼농사와 금속문화가 한반도에서 전래됐다는 점과 임진왜란이 일본 내부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일으킨 전쟁이라는 점, 일제 강점기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 민족적 차별이 존재했다는 점 등에서 일부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일 양국의 역사학자들이 구체적으로 공감대를 이룬 사안은 여기에 그쳤다.

이마저도 양국 역사학자들이 '합의했다'고 표현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동의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는 게 공동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일 견해차 여전 = 한.일 역사학자들은 조선통신사는 물론 을사늑약과 일제 강점기 '근대화', 식민지배하 여성을 포함한 노동자 동원, 교과서 등의 문제에서 뚜렷한 견해차를 보였다.

특히 근.현대사 분야에서 한.일 양국의 역사 인식의 차이는 두드러져 한국측은 을사늑약이 일본의 협박으로 이뤄진 불법 조약이라는 입장인 반면 일부 일본측 위원은 고종이 '을사조약'의 주체로 조약을 반대한 운동을 탄압했다고 주장했다.

또 일제 강점기에 대해 한국측은 외래권력과 자본가가 지배해 관세.금융 주권이 없었던 시기로 규정하는 반면 일본측은 일본어 사용을 통해 근대화의 실현이 연결됐다고 기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식민지배하 여성을 포함한 노동자 동원에서 강제와 폭력이 있었다는 게 한국 역사학자들의 입장인데 반해 일본 측에서는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강제연행한 사실은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 사례도 있었다.

이 같은 양국의 괴리는 2기 공동위에서 처음 수행한 교과서위원회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한국측 위원은 '불평등조약'을 둘러싼 한·일 역사교과서 기술의 차이에 대해 "한국 역사교과서는 일본의 침략 과정 속에서 조약을 파악한 반면, 일본은 일본의 자위를 강조하는 측면에서 제국주의적 침탈 부분을 약화시켜 서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일본측 위원은 "한국에게 근대란 '새로운 기준(빛)'과 '식민지 경험(그림자)'을 동시에 의미하는 데 반해, 일찌감치 근대 질서에 적응한 일본에게는 스스로 극복해 온 '현실'을 의미한다"면서 "한국이 식민지 경험을 강조하는데 비해 일본은 불평등조약의 내용이나 영향보다는 그것을 해소하는 과정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日민주당 정부 '과거사 외면' = 한·일 양국의 역사관에서 이처럼 괴리가 여전히 존재함에 따라 외교가에서는 '과거사를 직시하겠다'는 일본 민주당 정부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공동위 일본측 위원들이 과거 자민당 정권에서 임명된 인사들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하기도 했다.

특히 독도나 위안부, 한일강제병합 등 근.현대사의 핵심쟁점은 제대로 다루지 않고 이미 사문화된 것으로 알려진 임나일본부설 정도에만 공감대를 끌어낸 점은 피할 수없는 한계로 지적된다.

조 교수는 또 "우리는 한일 양국 위원들이 합의한 주제만을 다룰 수 있다"고 공동위 역할의 한계를 강조했다.

다만 그는 "의견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국 학자들은 학자적 입장에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함으로써 새로운 대화와 연구를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중.근세사 한일관계 사료 해제집 간행과 교과서위원회 활동을 언급한 뒤 "프랑스와 독일의 경우 공동역사교과서가 나오는데 50년이 걸렸다"면서 "한.일 상호간 역사교과서에 대한 공동의 토론의 장을 마련한 만큼 앞으로 긴 호흡으로 봐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