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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삶이라는 짐의 무게 '인 디 에어'

남상석

입력 : 2010.03.21 14:19


남상석의 영화이야기

인 디 에어(감독: 제이슨 라이트먼, 주연: 조지 클루니, 베라 파미가, 안나 켄드릭, 15세 관람가)

출장이나 여행을 준비하며 짐을 꾸려본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준비할때 많은 고민이 발생합니다. 미스터 빈 처럼 짐부피를 줄이겠다고 긴바지를 싹뚝 잘라 반바지로 만들어버릴 정도는 아니지만 바리바리 피난보따리 꾸리듯 자잘한 것까지 챙겨가면 여행 내내 짐 무게에 짓눌려 고통받고, 간편하게 꾸려갔다가는 꼭 필요한 물건이 없어 낭패를 겪게 되죠.

[인 디 에어]는 갑자기 임신한 10대 소녀의 당돌하지만 깜찍한 홀로서기를 그린 [주노]로 단박에 명성을 얻은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이 이번에는 명배우 조지 클루니와 함께 해고 겸 출장 전문가라는 직업을 등장시켜 요즘 미국 사회의 아픔을 들여다보는 영화입니다.

[주노]의 속사포같은 그래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던 수다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경쾌하면서 여운이 남는 대사들이 인상적입니다.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각 기업의 해고 대상자들에게 해고 통보를 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고 있는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은 1년에 300일 이상을 출장으로 보냅니다. 텁텁한 기내 공기와 어디에서나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이 더 편안하고 집에 돌아오면 오히려 어색함을 느끼는 완벽한 출장 체질이자 출장의 달인으로 당면한 목표는 미국에 6명 밖에 없는 국내선 천만마일 돌파로 이런 자신의 세계관을 설파하는 전문 강연인으로도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12살 때 할아버지, 할머니가 양로원에 들어가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는 걸 보고 인생은 어차피 혼자라고 깨달은 라이언은 철저한 개인주의를 실천해 누나와 동생 등 그의 가족들은 그를 아예 없는 셈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출장 길에서 자신과 흡사한 체질이면서 뜨겁고 솔직한 여인 알렉스(베라 파미가)를 만나 호감을 느끼고 이 여자라면 자신의 삶을 간섭하지 않으며 같은 취향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회사에서 능력과 실적을 인정받고 있는 라이언에게 눈에 가시같은 존재가 출현하는데 그 사람은 바로 신입사원 나탈리(안나 켄드릭)로 출장 면담이 아닌 화상통화로 해고를 통보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해 출장비를 절감하고 직원들에게 안락한 가정생활을 보장해주는 혁신적인 개혁안을 내놓아 사장의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해고통보가 경륜과 철학이 묻어나야 한다고 반대하는 라이언에게 사장은 나탈리와 동행하며 업무수행을 점검해보라고 지시해 두 사람은 함께 출장길에 오릅니다.

영화의 오프닝은 주인공의 시선을 반영하듯 하늘 위에서 본 구름의 모습, 땅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해고통보를 받은 직장인들의 다양한 반응들이 등장합니다. (대다수의 인물들이 실제 해고당한 자들로 감독이 디트로이트같은 해고자가 대량으로 발생한 지역에 해고자를 뽑는다는 구인광고를 내서 선발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항의와 푸념은 너무 절절해서 가슴이 아픕니다.

한때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분들께서 부러워라하며 도입의 시급성을 강조하던 '노동시장의 유연성'의 모범사례로 소개해대던 미국에서도 대다수 직장인에게 해고 통보는 "가족 구성원을 잃어버리는 것에 준하는 스트레스"를 준다고 합니다.

이러한 껄끄러운 일을 하기 싫어하는 기업측을 대신해 해고 통보를 전문으로 하는 대행사가 존재합니다.

잔인하지만 부드럽게, 시끄럽지만 신속하게….

자기만의 세계를 갖춰놓고 다른 사람이 들어올 틈을 주지않는 남자는 [어바웃 어 보이]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등에서 선보였던 캐릭터입니다.

그가 어떤 계기나 인물을 만나서 변화해 간다는 것, 혹은 가족이나 사랑의 가치를 알게 된다는 구성은 진부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독은 이 영화에서 적절한 장치를 사용해 진부함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누이동생의 결혼식 장면 전후에서 사실적인, 있음직한 사건들의 배열이라는 적절한 변주를 통해 감독의 남다른 감각을 보여줍니다. 그 변화의 계기들이 각각 다양한 의미를 품고 있고 변화의 방식에서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나거나 하며 도식적인 전개를 탈피합니다.

각각의 상황이나 대사를 통해 유발하는 웃음의 강도도 당초 예상보다 무척 강하고 빈번합니다. 조지 클루니는 50이 다 된 나이에도 여전히 섹시한 매력을 발산합니다.

베라 파미가의 연기도 좋고 나탈리를 연기한 안나 켄드릭은 당돌할 정도로 패기를 보여주지만 속으로는 여린 신입사원 역을 톡톡 튀게 선보입니다. 호텔 로비에서 자신이 겪은 고통을 토로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이 제일 압권입니다.

경제 위기의 여파로 발생한 당대 미국사회의 아픈 단면을 적절하게 녹여내며 '혼자일 때 숙명처럼 느끼는 불안과 고독, 그것을 덜어주고 나누는 것이 결국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라는 것'을 교조적이지 않게 에둘러 말해주며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할때 어떻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