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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서거 자세히 알리지 말라"

김지성

입력 : 2010.02.27 22:35

외교문서 공개③ - 10·26 사건




'1979년 외교문서' 공개 세번째, 오늘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해된 이른바 '10·26 사건' 직후 문서들입니다.

◆"자세한 사실 알리지 말라"

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해된 다음 날, 즉 1979년 10월 27일 외무부 장관은 전 재외공관장에게 비상시국을 타전합니다.

이날 하루에만 7차례의 비상시국이 타전되는데, 이 가운데 비상시국 3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대통령 각하 서거와 관련, 아래 사항 조치바람.

주재국 정부 및 외교사절에 서거 사실만을 통보(자세한 내용설명 불필요)

공관에 반기 게양, 조문록 비치. 국장 기간 중 연회 등 행사 중지

외국 정부에 박 전 대통령의 서거 사실만 통보하고 자세한 설명을 하지 말라고 한 부분이 눈에 띕니다.

아마,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 전 대통령을 살해한 동기가 밝혀지지 않은 시점이라 그랬을 것으로 추정될 뿐입니다.

아시는대로,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는 이번 사건을 '김재규 개인에 의한 암살 사건'으로 규정합니다.

당시 발표된 수사결과의 일부입니다.

<원래 김재규는 업무 수행 과정에서 무능이 드러나 대통령 각하로부터 수차례 힐책을 받아왔을 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 각하께 드리는 보고·건의가 차지철 실장에 의해 제동을 받아왔으며, 또한 자신의 비위사실 때문에 각하로부터 경고 친서를 받은 사실이 있어 근간 요직 개편설에 따라 현 시국과 관련 자신의 인책 해임을 우려한 나머지 대통령과 경호실장을 살해하고 정권을 잡아보겠다는 망상으로 기회를 노려오던 중...(생략)>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범행 장면을 재연하는 모습



◆중국·소련 "미국의 음모"

그렇다면, 사건 발생 직후 외국에선, 특히 공산권 국가들은 어떻게 바라봤을까요?

주일 대사가 외무부 장관에게 보낸 전문에 보면, 모스크바 주재 일본대사가 10월 29일 소련 외무차관을 만난 자리에서 소련의 차관이 '박 대통령은 미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KCIA 분장에게 살해된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또, 주홍콩 총영사의 보고에 따르면, 중국계 '문화보'는 10월 29일 '한미 양국의 CIA가 밀접한 관계임을 고려할 때 김재규가 시전 음모 없이 그리 쉽게 박정희를 사살했다는 보도는 믿어지지 않는다'고 썼습니다.

이어 다음 날 중국 '인민일보'는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을 순전히 김재규 개인에 의해 미리 꾸며진 암살사건으로 축소시키려 한다'며 '김재규의 침착한 행동과 보호적인 구류(구속)의 성격으로 볼 때 시해사건은 개인간 권력쟁탈이라기보다는, 국제적으로 큰 배후와 의도에서 나온 사건'이라고 보도합니다.

박 전 대통령 살해가 이른바 '미국의 음모'라는 것입니다.

당시 한국의 인권상황 등을 놓고 한국과 미국이 불편한 관계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의 음모설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미국 "항공모함 한국 해안으로 이동"

미국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당시 주미대사가 우리 외무장관에게 보낸 전문에는, 우리나라에 대한 미국의 정책 기본방향에 변화가 없어 보인다고 돼 있습니다.

특히 안보면에 있어, 카터 행정부는 신속, 확고하게 우리나라와의 방위공약을 준수하겠다는 뜻을 재천명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보고했습니다.

<한국이 연합 사령부 경로를 통해 요청한 사항(AWAC 경보기 2대 파견, 7함대 소속 항공모함의 한국 해안 이동 및 대북괴 각종 정보수집 활동 강화 등)을 백악관 안보회의에서 신속하게 결정. 불과 2시간 내에 카터 대통령의 결재를 맡았음(단, F-15 파견 건은 기술적 곤란이 있다고 함).

또한 브라운 국방장관은 10.28 기자회견을 통해 주한미군에 관한 정책도 외교 정책면에 있어서 박 대통령 서거와 관계없이 유효하다고 밝힘.>

이어, '소련과 중공에 대해 북괴가 이번 사태를 틈타 군사적인 모험을 시도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경고를 계속 취할 것'이라고 돼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언론 보도에서는 당시 한미의 불편한 관계가 드러납니다.

10·26 사건 발생 6일 뒤인 11월 1일, 워싱턴포스트지는 당시 반스 미 국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해 향후 한국의 정치개편에 관해 논의한다고 보도했습니다. 공식 방한 목적은 박 대통령 영결식 참석이지만 박 대통령 후임자를 1972년 발표된 유신헌법이 정하는 선거인단이 아닌, 직접투표를 통해 뽑아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를 전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해된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의 도면


이어 11월 3일자 뉴욕타임즈는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가장 큰 비판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택연금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후계자는 직접선거를 통해 뽑혀야 하며, 이런 선거과정이 진행될 동안 군이 중립을 지킬 수 있도록 미국이 도와달라는 성명을 발표했다고 보도합니다.

다음 날 뉴욕타임즈는 반스 미 국무장관과 한국 임시정권 인사들간의 면담을 소개하며 한국의 군 당국이 민간 정권 수립을 약속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계속해서, 12월 1일 워싱턴포스트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 당한 지 한달이 지났지만 수백 명의 학생 등이 불법 집회를 이유로 검거되는 등 박정희 정권하의 군사정권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고, 앞서 뉴욕타임즈 등도 한국언론은 계엄사의 검열 때문에 학생들의 검거 사태가 보도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적어도 10·26 사건 이후 우리나라에 민간 정부가 수립되고 인권상황이 개선되기를 기대하는 기류가 미국 내에 있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러한 기대는 두 달이 채 안 돼 발생한 신군부의 군사 쿠데타, 즉 12·12 사건으로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다음 편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조문과 관련한 외교문서들을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