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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산책] 임동혁,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김수현

입력 : 2010.02.24 14:52

'죽음'을 기억하며 위로 받다


지난 20일, 임동혁의 피아노 리사이틀을 보러 고양 아람누리로 가던 길, 문화부 시절 취재원의 사고 소식을 들었다. 그는 수도권의 한 공연장 기획팀 직원이었다. 마지막으로 본 지가 4, 5년쯤 됐나? 나와 친분이 깊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서글서글하고 항상 맡은 일에 열심이어서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바로 이 날 새벽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아직 젊디 젊은 그가 한 순간 사고로 이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정말이요? 어쩌다…… 전화로 이 소식을 나에게 전해준 지인 역시 잠시 침묵을 지켰다. 우리는 안타깝고 침통한 기분으로 통화를 마쳤다. 

죽음은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인가. 지난해 말, 친한 회사 선배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선배가 세상을 떠나던 바로 그 날, 나는 선배와 1주일 후 점심을 같이 먹기로 약속을 했었다. 빈소를 지키던 선배의 아이들을 마주하고, 선배가 생전에 보도했던 리포트에서 선배의 육성을 다시 듣고, 눈물을 쏟았다. 선배를 떠나 보내고 며칠 뒤, 선배와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던 바로 그 날, 나는 지키지 못한 약속을 슬퍼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사람의 갑작스러운 부음이라니.

공연장에 도착했을 즈음에도 나는 침통한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임동혁의 독주회를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지만, 그래서였는지 평소였다면 느꼈을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나 들뜬 기분 같은 건 거의 없었다. 연주 프로그램을 모르고 갔는데, 가서 확인해 보니 마침 공연의 첫 곡이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였다. 이 곡에는 지난해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추모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프로그램 책자에는 쓰여 있었다. 임동혁의 어머니는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났다. 역시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임동혁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투명한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름다웠다. 내가 앉은 자리는 객석 맨 오른쪽 구석이라 시야가 그리 좋지 않았다. 아예 눈을 감고, 생각을 놓고, 음악에 빠져들었다. 가슴에 물기가 고이는 느낌이었다. 이 곡의 연주가 끝나자 박수가 터져 나왔지만, 이 때에야 눈을 뜬 나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뒤늦게 박수를 따라 했다.

무대 뒤로 퇴장한 임동혁이 두 번째 곡 ‘밤의 가스파르’를 치기 위해 다시 나오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추모곡'을 치고 나서 감정을 추스르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혼자 생각했다. '밤의 가스파르'는 화려한 기교와 색채를 자랑하는 곡이었지만, 나는 역시나 안개처럼 내려앉는 우울한 정취를 느꼈다.

인터미션 후 2부는 쇼팽과 프로코피에프로 구성됐다. 나는 인터미션 때 지인을 만나, 자리를 중앙 객석으로 바꿨다. 연주자의 손가락과 표정이 잘 보이는 자리였다. 2부 연주를 위해 걸어 나오는 임동혁을 보면서 무대 출입문과 피아노까지의 거리가 참 멀다는 생각을 했다. 소년 티를 벗은-이제 그는 26살이다-임동혁은, 여전히 마르고 가냘퍼 보였다.

날 임동혁이 고른 쇼팽의 곡들은 쓸쓸함을 뿜어냈다. 폴란드의 정취 물씬한 마주르카 세 곡, 그리고 화려함 속에 애수와 비극의 정조를 뿜어내는 폴로네이즈 환타지. 연주를 마치고 난 임동혁의 모습이 너무나 창백해서 안쓰러웠다. 싱긋 웃는 임동혁의 표정에 '오빠 부대'의 들뜬 한숨이 퍼지곤 했던, 다른 때의 임동혁 공연과는 달랐다.

지막 곡인 프로코피에프의 소나타 7번은 엄청난 기교와 힘이 필요한 난곡이었다. 그가 출전했던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자유곡으로 연주해 러시아 관객들의 감탄사를 이끌어낸 곡이기도 하다. '피아노를 타악기처럼 쓰고자 했던' 프로코피에프의 의도대로 임동혁이 체중을 실어 피아노 건반을 난타하며 연주를 끝내자, 객석에서는 우레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나도 힘껏 박수를 보냈다. 커튼콜을 위해 무대 입장과 퇴장을 반복하는 임동혁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그리고 앙코르. 천천히 무대로 걸어 나온 임동혁은 첫 연주곡이었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다시 연주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번엔 눈을 감지 않았다. 임동혁의 표정이 너무나 잘 들어왔기 때문이다. 슬픔과 그리움으로 가득한 그의 표정에 가슴이 아려왔다. 임동혁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어머니는 나의 영웅'이었다고 말했다. 임동혁의 얼굴에서 그의 영웅, 그의 어머니가 보였다.

나는 임동혁과 임동민을 취재할 때마다 어머니도 만났다. 아들 곁을 그림자처럼 지키던, 마르고 작은 체구의 어머니. 헌신적이고 아들 걱정에 여념이 없는,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였다. 언제였던가, 아들 둘을 다 잘 나가는 음악가로 키워놨으니 얼마나 좋으시겠냐고 했더니, '아유, 몰라서 그래요. 음악 하는 거, 정말 힘들어요. 옆에서 보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요. 누가 자식 음악 시킨다고 하면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면서 말릴 거예요.' 하고 대답했던 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투명한 선율이 울려 퍼지는 동안, 객석은 숙연해졌다. 나는 콧날이 시큰했다. 눈물을 참으면서 임동혁의 어머니를 생각했고,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회사 선배를 생각했고, 바로 이 날 새벽 갑작스런 사고로 이 세상을 등진 취재원의 생전 모습을 떠올렸다. 앙코르를 마치고 관객의 갈채에 답례하는 임동혁의 얼굴에 가냘픈 미소가 떠올랐다. 나도 눈가가 젖은 채 미소를 지었다. 나는 객석에 앉은 수많은 청중 중의 한 사람일 뿐이었지만, 마치 임동혁과 마주앉아서 실컷 함께 눈물을 흘리고 난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위로해 주고, 위로 받은 느낌.

연이 끝나고 백 스테이지로 가서 임동혁에게 인사하고도 싶었지만, 그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할 말이 없었다. 그 연주를 들은 것만으로 충분했다. 누가 그랬던가. 진혼곡은 '죽은 자를 위한 안식의 곡'이기도 하지만,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위로의 노래'이기도 하다고. 산 자에게 죽음을 일깨우는 것이 위로가 된다는 이 역설. 임동혁이 연주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죽은 왕녀'만을 위한 곡이 아니었다. 임동혁 자신을,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로하는 곡이었다. 

'죽음'을 기억한 날이었다. 인간의 삶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 뮤지컬 '렌트(Rent)'에서 'Everything is Rent'라고 노래하듯, 우리의 삶조차도 언젠가 돌려줘야 할 기한이 있는 '렌트'다. 나는 죽음의 '집행 유예'를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임동혁의 연주를 들으며 죽음을 기억했고, 이미 고인이 된 사람들을 추모했고, 위로를 얻었고, 기한이 있기에 더욱 소중한 나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

(*임동혁은 서울 예술의 전당(27일), 울산 현대예술관(24일), 부산문화회관(25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3월5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6일), 대구수성아트피아(7일) 에서도 같은 프로그램으로 연주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