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성에 관한 한 세계 최고 기업인 도요타자동차의 품질 신화가 깨진 이유를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자금력과 기술력, 정보력 등을 두루 갖춘 도요타자동차와 같은 초일류 기업이 이렇게 곪아 터지도록 사태를 방치했던 원인에 대해서도 의문이 일고 있다.
무엇보다 문제가 표면화해 증폭되고 악화하는 상황에서도 위기관리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최고 경영책임자(CEO)인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사장의 리더십도 도마 위에 올랐다.
품질관리 담당 부사장을 지내 이 분야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도요다 사장은 이번 사태 전개 과정에서 뒷북으로 일관해 화를 키웠다.
도요타는 그동안 1등에 취해 발밑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잘 나갈때 몸조심을 해야 하지만 도요타는 이런 교훈을 잊었다는 것이다.
도요타는 1996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하이룩스 서브'의 조향장치 결함을 확인하고도 리콜을 하지 않는 바람에 이 차량을 몰던 운전자가 2004년 8월 구마모토에서 사고를 내 5명이 부상했다.
도요타는 경찰의 수사를 받았고 2006년 7월 리콜담당 부장과 고객품질부장 등 직원 3명이 리콜지연에 따른 업무상 과실상해 혐의로 기소됐다.
조향장치는 자동차 핸들의 움직임을 앞바퀴에 전달하는 기능을 하는 안전과 관련된 핵심 부분이지만 이 결함과 관련한 리콜을 8년이나 방치하다 들통이 났던 것이다.
도요타는 결국 2004년과 이듬해에 전 세계에서 하이룩스 서프 150만여 대를 리콜했으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다.
직원들이 기소됐던 2007년 7월 와타나베 가쓰아키(渡邊捿紹) 사장(현 부회장)은 리콜 은폐·지연을 사과한뒤 "품질의 도요타의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다짐했었다.
현 도요다 사장은 당시 품질담당 부사장으로 와타나베 사장의 사죄 회견에 참석했었다.
그럼에도 3년 반여 만에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했다.
도요타는 지난달 가속페달 잠김현상이 문제가 됐을 때도 결함사실을 시인하려 하지 않으려다 마지못해 리콜을 발표했고 이달에는 프리우스의 브레이크 결함을 '차체 결함이 아닌 운전자의 감각문제'라고 강변하다 전세계 여론의 뭇매를 맞고서야 결함을 시인하고 리콜에 나섰다.
1등의 자부심, '품질 완벽'의 오만에 빠져 잘못을 은폐하려고만 했다.
결함의 은폐와 리콜지연이 들통나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3년반 전의 교훈을 잊은 것이다.
양립하기 쉽지 않은 생산 확대와 고품질화를 동시에 서둘렀던 것도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2004년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 리콜이나 이번 대량 리콜은 도요타가 시장 선점과 확대를 위해 생산을 공격적으로 늘리거나 가격 경쟁력에 집착하는 상황에서 발생했다.
도요타의 2007년 생산대수는 853만 대로 5년전의 1.5배로 팽창했다.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GM) 등 경쟁업체를 따돌리기 위해 공격적인 글로벌 생산 확대를 10년 이상 추진하는 과정에서 품질관리를 소홀히 한 것이 2004년의 리콜을 불렀다.
도요타는 2008년 하반기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GM과 포드 등이 파산위기에 몰리고 작년에는 극심한 경기침체로 자동차 수요가 격감하자 사활을 걸고 경비 절감을 추진했다.
한국의 현대자동차 등 신흥국 자동차기업이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공격적인 시장 확대에 나서자 위기감을 느낀 도요타는 코스트 다운을 위해 부품의 현지조달을 확대하는 한편 가격 인하를 강도높게 요구했다.
소니 등 세계를 호령하던 일본 전자업체들이 야금야금 한국의 삼성과 LG에 시장을 잠식당하던 모습을 지켜봤던 도요타로서는 현대자동차와 인도.중국의 자동차업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가격경쟁력에 집착하다보니 부품의 질에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도요타 기술의 정수가 총동원된 최첨단 하이브리드차인 프리우스는 세계적인 친환경 에너지 절감 붐을 타고 주문이 폭발하면서 생산을 늘리는 과정에서 브레이크 결함이 발생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본에서는 작년 7월 주문한 소비자가 아직도 신형 프리우스를 받지 못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프리우스가 친환경에 어필하기 위해 극한의 연비를 추구하고 효율화를 위해 차량의 컴퓨터화를 가속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불가피한 '사고'라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연비 개선을 위해 휘발유 엔진과 전기 모터를 함께 사용하고 이의 최적 제어를 위해 컴퓨터화 비중이 높아지면서 기존의 차량 지식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휘발유차에 비해 하이브리드차는 반도체가 3배 이상 많은 100개 이상 탑재된다는 통계도 있다.
고객의 승차감과 안전성을 극대화했다는 최첨단 차량에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흉기'가 될 수도 있다.
창업자의 4대손인 도요다 사장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겨졌던 도요타의 경영권을 작년 6월 인수받아 새로운 도약의 기대를 모았으나 1년도 안 돼 리더십의 문제가 부각됐다.
도요다 사장은 리콜 문제가 작년 11월 터진 이후 연일 도요타의 안전성에 대한 세계 여론이 들끓었으나 참모들에게 대응을 맡긴 채 고객 앞에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그러다 프리우스 문제가 터져 미국 의회가 청문회를 열겠다고 나서고 일본 정부가 신뢰성 있는 대책을 세우라고 압박하자 지난 5일 마지못해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했으나 여기서도 프리우스의 결함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참다못한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국토교통상이 "고객 관점이 결여돼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자 도요다 사장은 9일 기자회견을 열어 결함을 인정하고 다시 사과하는 해프닝을 빚었다.
나가에 히로야스 일본대 명예교수(자동차공학)는 11일 "도요타는 프리우스의 제동시스템 결함을 '운전자의 감각 문제'라고 했으나 이는 설명이라고 할 수 없다"면서 "문제 발생 초기에 결함을 공개하고 소비자들을 납득시켜야 했다"고 말했다.
(도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