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가 격찬한 교육열이 이거냐?
이제 '공소시효'가 지나도 한참 지났으니 고백 하나 해야겠다.
부정시험의 공범이 됐던 적이 있다.
중학교 3학년이던 1993년 겨울, 고입 연합고사라는 게 있던 때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맛에 지각과 결석을 밥먹을 듯 했기 때문에 조금은 시험이 걱정됐다. 연합고사 커트라인을 걱정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시험 당일 교회에서 새벽 기도까지 드리고 오셨단다.
같은 교실에서 시험을 보게된 S군은 좀 더 현실적인 걱정을 해야했다. S군은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 사이에서도 학교를 정말로 운동삼아 다니는, 말 그대로 '놀던 놈'이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당시 실업계 고등학교들은 이미 지원 접수가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S군은 연합고사에 떨어지면 정말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물론 S군의 실력으로는 명성있는 실업계 고등학교 진학이 어려웠다. 시험전에 만난 '고입 삼수생' H형의 말은 S군을 더욱 심란하게 했다.
"난 19년간 총정리부터 봤는데 뭐, 걍 1,2년 놀아도 괜찮아!"
'고입 연합고사 19년간 총정리'라...당시 내가 공부한 교재는 '고입 연합고사 21년간 총정리'였다.
내년에 '22년간 총정리'로 다시 공부할 일이 걱정됐던 친구는 조용히 시험장 앞에 앉은 다른 학교 학생을 화장실로 불러냈다. 한눈에 보기에도 얌전해 보이는 머리 스타일과 옷차림. '딱' 이었다. 우리 둘은 우선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공부 좀 하냐?"
"그냥 조금..."
"몇 등이나 하냐?"
"그냥 10등안에는 드는데..."
얘기는 의외로 잘 풀렸다. '범생이'는 문제를 일찌감치 풀고, OMR카드에 진하고 선명하게 답안을 체크한 뒤 오른쪽 팔꿈치 뒤쪽으로 S군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다행히 S군은 눈이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안도의 한숨을 쉬던 S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래도 고등학교는 내 실력으로 가야하지 않겠냐. 쪽팔리잖아."
"그럼 걍 봐라."
성의 없는 내 대답을 듣는둥 마는둥 하더니 S군은 의지에 찬 얼굴로 '범생이'에게 다가갔다.
"됐다. 그냥 넌 시험봐라."라며 시험 시작 10분전에 자리에 앉아 심호흡까지 했다. 심호흡한다고 될 일이 아닌데...
결국 S군은 1교시 국어시험을 제 실력으로 봤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나름 소신있는 S군의 갈등과 고민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S군이 끝까지 자기 실력으로 간당간당한 점수로나마 고입에 성공했다면 과정도 결과도 아름다운 이야기였을 거다. 짐작했겠지만 S군은 1교시가 끝나자마자 상기된 얼굴로 교실밖을 나오더니 다시 '범생이'에게 구원의 손길을 요청했다.
'범생이'는 진짜 범생이었다. '범생이'의 OMR카드를 '스캔한' S군이 나중에 채점을 한뒤 2교시 시험에서 단 2개밖에 안 틀렸다고 환호성을 지르던 기억이 난다.
S군의 연합고사 점수는 120점이었다. 연합고사는 체육 실기 20점, 필기 180점을 합쳐 200점 만점이었다. 신체조건 하나만큼은 남부럽지 않았던 S군은 당연히 체육 실기가 20점 만점이었다.
가장어렵다는 2교시 수학시험에서 2개밖에 안 틀린 녀석의 답안지를 '엎어치기'해놓고 120점이라니... S군의 1교시 점수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S군은 '나름' 성실한 고교 생활을 했다.
지금은 회사 생활만큼 공부를 잘 했으면 외고에 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한 직장인이 됐다.
얼마 전 미국판 수능, SAT 시험지 유출 사건을 취재하면서 17년전 부정 시험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국제적인 컨닝 수법을 보고 어이없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난 일에 대한 찜찜함이 남아있었던 것 같다. 어찌됐든 합격 정원이 정해진 시험에서 결국 S군의 합격으로 누군가 한명은 떨어졌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 장황하게 풀어놓은 '고해의 글'과 함께 마음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털어내면서 이번 사건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태국과 미국에서 똑같은 시험지로 SAT 시험을 보지만 12시간의 시차가 나기때문에 미리 문제를 알 수 있다는 기발한 발상이었다. 사실 기발하다고 볼 수도 없다. 휴대전화는 삼성, 자동차는 BMW 듯(개인적인 선호가 다소 포함됨을 밝힌다.)
입시 노하우는 대한민국 사교육 전문가들이다. 실행에 옮기는 게 조금 어려울 뿐이었다. 태국 원정을 가야하고 현지에서 응시자를 매수해야하고 신속히 문제를 풀어 정답과 함께 미국의 응시자에게 '토스'를 해야한다. 사건을 저지른 김 모 강사의 부지런함이 돋보였다.
김 강사의 부지런함과 치밀함에 비하면 S군의 컨닝은 원시적인 수준의 애들 장난이었다. 하긴 열흘 수업에 3백만 원, 수강생은 열명 삼천이면 이 정도 부지런함은 어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완전범죄가 될 뻔한 김 강사의 '작전'은 오히려 너무 높은 학생들의 성적이 문제였다. 돌린 시험지로 시험을 본 학생들과 성적이 비슷했던 다른 학생측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이 공부를 하면서도 서로가 경쟁상대로 인식했던 살벌한 사이에서 한쪽만 '대박'이 터졌으니 당연한 일이다.
결국 김 강사의 국제 컨닝 시나리오는 들통났고, 오바마도 극찬한 우리 나라의 교육열은 다시 한번 바다 건너 미국에까지 전파됐다. 쪽팔림도 함께 바다를 건넜다.
그래도 S군과 내가 그 정도의 '국위선양'을 하지는 않아 다행이다. 물론 "'쪽팔림'은 순간이고, 성적은 영원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17년전 기억이 비슷한 사건을 취재할 때마다 떠오르는 걸 보면 '쪽팔림'이 순간은 아닌 것 같다.
참고로 강남에서 미국 명문 사립 B대학 출신으로 알려졌던 김 강사는 수도권의 한 대학을 나왔다. 미국 학위와 장기 연수 경험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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