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눈의 천사'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전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외국인(그 중에도 백인이겠죠) 자원봉사자나 간호사가 떠오르는데요.
저만의 고정관념일지 모르지만, 그런 이미지에 딱 맞는 사람을 지난 14일 하루종일 따라다녔습니다.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서 '전진상 의원'이라는 병원과 약국,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배현정 원장입니다.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눈이 그닥 푸르르진 않은데요;
나이를 묻는 질문에 '46년 개띠!'라고 답하실 만큼 그냥 우리네 옆집 아주머니 같은 분입니다.
전진상 의원의 목요일은 외래환자를 받지 않고 왕진만 다니는 날입니다. 대상환자는 당연히 병원까지 올 수 없는 분들이겠죠. 독거노인을 비롯해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인데요.
일일이 집을 찾아간 배 원장은 "어디 불편하세요? 가슴이 아직도 답답하세요? 쿠정(구정) 전에 토(또) 올게요. 건강하세요"
완벽한 발음은 아니었어도 대화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목소리로 열심히 할머니 귀에 대고 이야기를 풀어나갔습니다.
밥은 잘 드시는지 묻고 날씨 얘기도 나누고, 아들자랑도 들어주고요. 진료도 진료지만 말벗이 되어주러 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왕진이 중요하다는 신념은 확고했습니다.
정확한 진단 없는 성급한 처방, 처방 이후 나타날지 모르는 부작용이나 약물 오남용을 막기 위해서라도 배 원장은 왕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환자도 의사도, 서로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데 어떻게 제대로 된 치료가 되겠느냐", "이 추운날, 이 좁은 골목길, 저 언덕길을 휠체어 타고 어떻게 병원까지 오겠어요?" 라고 말할 땐 쉽지 않은 환경에서 지금껏 배 원장을 지탱해준 의지가 엿보였습니다.
판자촌은 없어졌지만 다닥다닥 붙은 주택가에 눈이 다 치워지지 않은 골목길을 아주머니는 경차 모닝을 몰고 요리조리 능숙하게도 다니시더군요. (영상취재팀 선배기자와 함께 회사차를 타고 따라가는데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거동도 불편하시고, 말씀하시는 것도 생각만큼 잘 안 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지만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이 아주머니가 집에 들어서면 누워서 앓다가도 환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켜 손을 꼭 잡는 분들의 얼굴에서 아주머니의 지난 삶이 보였습니다.
배 원장이 이곳을 처음 밟은 게 1972년, 전진상 복지센터를 시작한 건 1975년이니까 역시 이곳 토박이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겐 배현정 씨는 말그대로 동네 주치의나 다름없습니다.
(사진 속 배현정 씨는 이 때는 간호사 시절.. 의사선생님은 서울대 의대교수 박영배 선생님)
벨기에 출신의 배 원장은 처음 간호사 신분으로 한국땅을 밟아 봉사활동을 시작했다가 의사가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을 돌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중앙대 의대에 편입해 1985년 의사가 됐습니다.
상수도는 물론 화장실도 없던 판자촌에서 1978년 홍수 때는 큰 산사태로 달동네에서만 수십 명이 숨졌던 끔찍한 기억도 아주머니를 멈추게 하진 못했습니다.
전진상 의원이 '관리'하고 있는 환자만 1천여 명. 진료비는 아주 싼 편인데, 그나마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겐 무료입니다.
약국에서 버는 돈은 전부 자체 운영하는 어린이방이나 공부방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남는 돈은 형편이 어려운 동네 어린이들의 장학금으로 쓰이고요. 상수도도 없어 우물을 파야 했던 시절 설립된 전진상 의원은 이 동네의 '희망의 씨앗'이었던 거죠.
배현정 씨는 지난해 11월 아산재단에서 상도 받았고, 12월 31일에는 보신각에서 제야의 종 행사 타종멤버로 뽑히기도 했다네요^^ 그러나 이 아주머니에게 상이나 인지도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다음달 1일이면 의사가 너무 멀게만 느껴지던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어주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지 꼭 35년.
무언가 대가를 바라고 이런 삶을 택하신 게 아닐테니까요. 아주머니의 소망을 물어보니 계속 이 일을 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더군요. 구체적으로는 두 가지 답이 돌아왔습니다.
"나도 나이를 먹어서 한계를 느낀다. 뜻이 맞는 젊고 유능한 의사가 왔으면.."
"뉴타운 소문에 동네 사람들이 많이 떨고 있다. 개발도 좋은데 마구잡이 철거 때문에 원래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갈 곳을 잃게 되는 철거는 아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