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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야근 공화국'…수당 덜주기 불법 만연

입력 : 2010.01.14 10:00

[야근 공화국] ① 법규 못미치는 '쥐꼬리 수당'…당국 뒷짐, 일자리 창출·출산율 제고 위해서라도 개선 필요


#1. 이모(30) 씨는 지난 해 임신 4개월 만에 유산을 했다.

유통업체 기획부서에서 일했던 이씨는 임신 중이었지만 회사 전반에 대한 컨설팅 작업으로 매일 야근에 시달리다 아이를 잃었다.

"일찍 귀가한다는 말을 꺼낼만한 분위기가 아니었죠. 몸이 안 좋아 휴가를 신청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니까요. 회사에서 조금만 배려했어도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유산 후에도 격무에 시달리던 이 씨는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2. 통신업체에 다니는 김모(33) 씨는 한 달 내내 야근을 한다. 거의 매일 8시 이후 퇴근하고 10시 넘어 일하는 날도 보름을 넘는다. 지난 해에는 과로로 1주일 동안 입원까지 했다.

하지만, 그가 받는 하루 야근 수당은 밥 값 6천 원이 전부다. 입사 후 5년 내내 이런 식이었지만 불만을 느낄 수는 없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람은 아예 야근수당이 없는 경우도 많지 않나요. 열심히 일하지 않아 실적이 바닥이면 퇴출 대상인데… 알아서 야근할 수밖에 없지 않나 싶네요"

우리나라를 '야근 공화국'이라고 부를 만하다.

대기업을 다니건 중소기업을 다니건 야근은 벗어날 수 없는 직장인의 멍에와 같다. 저녁 7~8시까지 일하는 것은 당연하고 밤 9시 이후까지 일하는 것도 예사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미국인 리사 위터(27.여) 씨는 "한국 사람들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다. 가족하고 같이 있을 시간마저 뺏기는 것 같다. 모두 이를 당연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사회적 비용은 너무도 많이 든다. 매년 수백 명이 과로사로 죽는다. 수년째 '세계 최장 근로시간'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저출산을 얘기하지만, 저녁에 아이를 돌보거나 집안일을 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이제는 바꿔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 야근수당 '쥐꼬리'..축소 지급 관행化

문제는 이러한 장시간 근로 문화를 개선하는 데 기업들이 별다른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일까. 바로 법이 정한 것보다 훨씬 싼 값에 야근을 시키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56조는 `연장근로에 대해서는 통상 임금의 100분의 50 이상을 가산해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야근을 시키려면 시간당 급여의 1.5배를 지급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시간당 급여는 보통 2만 원이 넘는다. 2만 원이라면 연장근로 1시간당 3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 퇴근시간이 6시인데 저녁 8시까지 일하면 6만 원, 10시까지는 12만 원을 줘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지급하는 기업은 별로 없다. 법정 수당보다 터무니없이 적은 수당을 줄 뿐이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윤모(36) 씨는 "저녁 8시 30분 넘어 퇴근해야 8천 원을 준다. 그전에 퇴근하면 수당이 아예 없다. 10시 넘어 일하면 7천 원이 더 나온다. 다른 회사도 비슷하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에서 일하다 외국계 기업으로 옮긴 이모(35)씨는 "자정까지 일해도 2만 원의 수당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회사보다는 많이 주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당국 감독않고 방치.."삶의 질 낮아져"

사정이 이렇지만 감독 당국의 대처는 말 그대로 방치 수준이다. 현실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을 뿐 아니라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지 의심스러운 수준이다.

서울지방노동청 관계자는 "근로자가 신고하면 조사에 들어간다. 하지만, 영세사업장에서 가끔 신고가 들어올 뿐 대기업은 거의 없다. 연장근로 관련 법규는 대부분 잘 지켜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야근 수당을 적게 받는다고 당국에 신고할 '간 큰' 직장인을 찾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당국이 뒷짐 지고 있는 틈을 비집고 불법 수당 문화가 자리 잡은 셈이다.

지켜지지 않는 법규는 수당 관련 규정만이 아니다.

연장근로는 1주일에 12시간으로 제한돼 있다. 임신 중에는 연장근로도 하지 못하도록 규정돼 있다. 지나친 야근으로 유산한 이씨는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로 아이를 잃은 셈이다.

법무법인 한울의 이경우 대표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장시간 야근이 관행화돼 있어 기업은 물론 감독 당국마저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불법적인 연장근로수당 축소 지급 관행을 바꾸려면 감독 당국의 철저한 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영기 한국노사관계학회장은 "야근을 줄이면 삶의 질을 높이고 가사 및 양육 분담이 가능해 출산율까지 올릴 수 있다. 개인의 지나친 노동량을 분담해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며 "이제는 긍정적으로 야근 문화 개선에 나설 때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