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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꿈꾸는 발레리노 김현웅 "이제부터 시작"

입력 : 2009.12.22 10:43

[2010 문화 인터뷰]


"시간이 갈수록 발레라는 '바다'에 더 빠져들고 있어요. 아낌없는 사랑을 주는 관객을 위해서라도 더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몇 십년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완벽한 몸'과 일취월장한 표현력을 지닌 김현웅(29·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은 한국 남자 무용수의 계보를 잇는 발레리노로 꼽힌다.

지난 해 10월 무릎 부상으로 수술을 받은 뒤 한동안 공백기를 거친 그가 올해 하반기 굵직한 무대의 주역으로 복귀하며 더 힘찬 날갯짓을 예고한다.

9월 보리스 에이프만의 '차이코프스키'로 돌아온 그는 11월 창작발레 '왕자호동', 12월 고전발레 '백조의호수', '호두까기 인형'의 오프닝 공연을 잇달아 책임지며 한결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줬다.

김현웅은 "하반기에 공연이 몰려 몸은 조금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정말 행복했다"며 "무대에 서서 좋아하는 발레를 실컷 하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는 것 같다"고 한해를 되돌아봤다.

"지난 해 못한 몫까지 올해 원 없이 한 거 같아요. 특히 '백조의 호수'에서 3명의 파트너와 호흡을 맞춘 게 힘들었지만 기억에 많이 남아요."

'백조의 호수'에서 지그프리드 왕자 역을 맡은 그는 국립발레단의 간판스타 김지영과 김주원, 신예 고혜주 등 무려 3명의 발레리나와 짝을 이뤄 무대에 올랐다.

균형과 조화가 무엇보다 중요한 발레에서는 파트너가 두 명만 돼도 무용수들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문병남 부예술감독이 '한 공연에 세 명의 파트너와 춤을 춘 건 국립발레단 역사상 신기록일 것"이라고 말씀하더라고요. 힘들긴 했지만 서로 다른 색깔의 파트너와 함께하며 배운 점이 많아요."

그중에서 첫 전막 주역에 데뷔한 신예 고혜주와의 무대는 그에게 예전 자신의 신인 시절을 되돌아보고, 책임감을 느끼는 계기가 됐다.

"큰 무대를 앞두고 혜주가 많이 불안해하더군요. 군무로 출연하는 발레리나 선배들의 등에 맺힌 송골송골 한 땀방울을 가리키며 '어떤 역할을 맡느냐에 상관없이 모든 무용수가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면 된다'고 이야기해줬어요."

"혜주와의 공연은 제 신인 시절을 떠오르게 했죠. 똑같이 불안해하던 저를 김주원 선배를 비롯한 파트너들이 잘 다독여줬던 것처럼, 이제 저도 후배들을 잘 이끌어야 하는 위치가 된 것 같아요."

전통을 소재로 한 창작발레 '왕자 호동' 역시 애정이 가는 작품이었다.

"관객은 어떻게 보셨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그 작품을 하면서 굉장히 뿌듯했어요. 서양 발레만 하다가 우리의 정서가 묻어나는 작품을 하게 돼 무용수들의 자부심이 컸어요. 다만, 국립발레단 초대 단장이었던 임성남 선생님에 대한 헌정 공연으로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어요."

"'왕자 호동'은 과거에 임 단장님이 처음 무대에 올렸던 작품이거든요. 국가도 그렇고, 단체도 그렇고 역사와 전통이라는 부분이 참 중요하잖아요. 임 단장님이 국립발레단의 기틀을 만들었는데, 정작 공연을 할 때는 그분에 대한 언급이 너무 적었던 것 같아서 안타까웠어요."

그는 올해야 비로소 발레 인생 10년을 맞은 늦깎이 발레리노다.

중학교 때까지 전국 대회에서 상위 입상하는 촉망받는 수영 선수였던 그는 고교 때 유명 뮤지컬 배우인 작은아버지 김성기의 영향으로 발레에 입문했다.

"스포츠는 1등만 기억되는 게 너무 싫었어요. 다른 길을 고민할 때, 작은아버지와 함께 뮤지컬 '명성황후'를 보고 뮤지컬 배우를 꿈꾸게 됐죠. 작은아버지가 뮤지컬을 하려면 일단 움직임을 알아야 한다고 해 무용학원에 등록했고요."

그러던 어느 날, 작은아버지가 던져준 페르난도 보네스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발레리노가 되기로 결심을 굳혔다.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수석 무용수 출신의 보네스는 바리시니코프와 시대를 양분한 전설적 발레리노.

"거울에 비친 제 모습과 동작은 너무 웃긴데, 이 사람은 너무나 멋진 거에요. 나는 왜 이렇게 못할까 오기가 생겼어요. 그때부터는 발레만 생각하고 산 것 같아요."

그는 "10년 정도 하니까 이제 발레가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며 "가면 갈수록 발레를 하기 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관객들이 박수를 쳐주고, 감동을 받잖아요. 저는 아무것도 해 드린 게 없는데,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서 항상 감사해요.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보답하는 길은 더 열심히 하는 것뿐이라 생각합니다."

한 때는 콤플렉스이기도 했던 자신의 몸을 긍정적이고, 자랑스럽게 느끼게 된 것도 10년 세월이 준 선물이다.

"대학 때는 '몸만 좋은 놈', '몸 좋아서 선생님들이 자꾸 역할을 맡긴다'는 수군거림에 참 속상했어요. 울기도 많이 했고요. 지금은 좋은 몸을 주신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어요. 무용수는 몸으로 말하는 거고, 갈수록 몸이 중요한 재산이라는 걸 느껴요. 그렇다고 제가 몸만 믿고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에요. 하하."

김현웅은 무대 욕심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 욕심은 비단, 발레 무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원래 뮤지컬 배우를 꿈꿨던 만큼 언젠가는 뮤지컬이나 연극 무대에 서보고 싶은 소망이 있어요. 무대에서 대사를 하고, 노래를 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소극장에서 관객과 눈을 맞추며 연기하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굉장히 궁금하거든요."

기품있는 외모로 왕자 역을 도맡지만 의외로 그에게는 '개그 본능'도 흐르고 있다.

"사실 '개그콘서트' 같은 데도 한번 나가보고 싶기도 해요. 제가 TV 개그 프로를 한번 보면 다 외우거든요. 발레단 형들이 '야, 이번 주는 뭐였냐'고 물으면, 그대로 재연을 해주죠.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요."

이처럼 농담도 잘하고, 유쾌한 성격이라 팬 미팅을 하면 팬들에게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저를 보러 온 사람인데, 제가 먼저 다가 가죠. 지인들은 너무 그러면 가벼워 보인다고 충고하지만, 저는 인간다운 게 좋아요. 아직 발레가 대중적인 예술은 아니잖아요. 관객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라도 이런 노력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김현웅은 새해에 공자가 스스로 자립했다는 나이 이립(而立), 서른이 된다.

"발레리노로서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어디에서 어떤 역할을 맡든지 제 이름을 걸고, 당당히 춤출 겁니다. 앞으로 해야 할 작품도 많고,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해요. 지금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작품, 새로운 무대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