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사회

Indubio pro reo

한승환

입력 : 2009.11.01 14:17|수정 : 2009.11.02 09:15

그 불은 누가 냈을까


'의심스러운 것은 피고인의 이익으로' 라는 뜻의 법언(法言)입니다. '무죄추정의 원칙'과도 일맥상통하지요. (보통 이런 법언은 라틴어가 많은데, 프랑스어라고 하네요) 눈물바다가 된 결심공판에 이어, 끝내 농성자 아홉명 가운데 일곱명에게 징역 5~6년의 중형이 선고된 용산참사 재판 1심 결과를 보고난 뒤 계속 저 말이 머리를 맴돌았습니다.

흔히 농성자들이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죄로만 기소됐다고 생각하시지만, 검찰은 이것 말고도 일반건조물방화, 업무방해, 일반교통방해, 화염병사용등의처벌에관한법률 위반 등 아홉가지 죄목을 들어 기소했습니다. 그러니 무죄가 선고될 여지는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에 대해서는 조금 따져볼 부분이 있었습니다. 일단 법조문을 종합해보면,

(1)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특수)

(2) 직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에 대하여 (공무집행)

(3) 폭행 또는 협박을 통해 (방해)

(4-1) 상해에 이르게 하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치상)

(4-2) 사망에 이르게 하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데요. (치사)

그래서 이 재판에선, '농성자들이 진압 경찰에게 화염병을 던져 사망하거나 다치게 했는지' 를 알기 위해 발화원인이 주요 쟁점이 됐던 겁니다. 재판부는 뭐라고 했을까요. "1차 화재(이 불은 금방 꺼졌고, 다친 사람은 없었습니다)는 화염병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을 검찰, 변호인 양 측이 모두 인정하고 있고, 2차 화재 당시 망루 바깥에서 촬영한 영상에서 불똥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 등의 증거를 보면 농성자들이 화염병을 던져 불을 냈을 것이 상당하다" 라며 유죄로 결론내렸습니다.

선고가 끝나고 변호인측은 기자회견에서 2차 화재 직전 화염병을 본 적이 없었다는 경찰 특공대원들의 진술이 있었는데도 재판부가 이런 결론을 내렸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지요. 물론 법관이 진술과 증거를 검토해서 이런 결론을 내린 것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것이 적절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직 고등법원, 대법원의 상소 절차가 진행될 수도 있기도 하고요. 다만 법원 출입 기자로서 얼마전에 봤던 다른 법원의 판결 하나만 더 소개해볼까 합니다.

한 남성이 술에 취한채 논둑을 걷고 있다가 경찰의 음주단속에 걸려 면허가 취소됐습니다. 이 남성의 차가 논바닥에 세워져있었고, 차에 앉아있는 걸 봤다는 목격자도 있었으니 술 취한 채 그 차를 몰았던 것 아니냐는 건데요. 하지만 대법원까지 올라갔던 지리한 송사 끝에 법원은 이 남성의 차가 어떻게 논바닥에 있었는지 명확하지 않다며 음주운전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Indubio pro reo.

두 의심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게, 제가 법률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라면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