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소·소아과 공급 태부족…자녀둔 교민들 '불안'
미국 정부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주 인플루엔자 A[H1N1](신종플루) 국가 비상 사태를 선포하면서 신종플루 확산을 막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으나 일선 의료계 현장 등에선 백신 부족 및 공급 지연 등으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과 뉴욕, 로스앤젤레스(LA),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대도시의 공중 보건소와 대형 병원에는 어린이와 노약자, 임산부 등을 중심으로 백신 접종을 받으려는 인파가 몰리고 있고 소형 병원과 개인 소아과 등에는 백신 접종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미주 한인들은 미국 현지에서의 신종플루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자녀 등에게 우선 백신을 접종하기 위해 소아과 등을 찾고 있으나 카이저퍼머넨테를 비롯한 대형 병원들을 제외하면 일선 소아과에는 백신이 공급되지 못하고 있어 발길을 돌리고 있다.
신종플루 발생 초기 가장 큰 타격을 받았던 뉴욕과 뉴저지 등 미 동부 지역은 상대적으로 낮은 발병률을 보이며 급격히 안정세를 찾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끌고 있다.
◇ 신종플루 사망 1천 명 돌파 = 26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미국에선 지난 4월 신종플루가 발생한 이후 지난주까지 사망자가 1천 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미 정부 당국은 최근 신종플루 감염자가 미국의 경우 수백만 명에 이르고 최소 2만 명이 입원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중 1천 명 이상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사망자 1천 명 중 어린이 환자는 100명 가량으로 나타났다. 어린이는 신종플루 뿐 아니라 계절적인 플루에 대한 면역력이 약하기 때문에 학교 등을 중심으로 신종플루 확산이 더욱 우려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당초 10월 중순까지 1억 2천만 명 분의 백신을 생산, 공급할 계획이었으나 백신 생산 자체가 지연되면서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주 현재 백신 생산량은 1천 610만 명 분에 그쳤고 이중 1천 130만 명 분의 백신이 미국 전역에 배포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격적인 플루 시즌이 임박한 가운데 신종플루 백신이 공급에 차질을 빚는데다 계절적인 통상의 플루 백신도 생산량이 부족한 상태여서 현지 주민들 사이에선 플루에 대한 공포감이 가시지 않고 있다.
그러나 뉴욕·뉴저지의 경우 지난 8월 31일부터 지금까지 확진 환자는 91명에 불과해 다른 지역 2천여 명에 비해 20분의 1 수준에도 못미쳤다.
뉴욕타임스는 9월 이후 뉴욕에서 감기 유사 증세로 응급실을 찾은 사람은 150~200명에 불과하며 공립학교의 학생 출석률도 91%에 달해 지난 봄 거의 60개 학교가 문을 닫고 18%의 학생이 결석했을 당시와 비교하면 크게 호전됐으며 91%의 출석률은 예년 이맘때의 평균 출석률을 웃도는 수치라고 보도했다.
지난 봄 11%의 청소년들이 신종플루에 걸린 것으로 나타났던 보스턴은 가을에 접어든 이후 공립학교와 대학에 신종플루 감염자는 거의 보고되고 있지 않다.
뉴욕시 보건 관리들은 "감기 시즌이 아직 피크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예년에 비해 뉴욕 등 미 동부지역의 감기 환자 발생률은 상당히 낮아졌다"면서 "이는 군중 면역과 관계된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군중 면역은 백신을 접종한 사람이 많아질수록 해당 균이 줄어들어 다른 사람에게 균을 전염시킬 위험이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뉴욕시 보건 관리들도 지난 봄에 10~20%의 시민들이 감기 증세로 병원을 찾았고, 또 20~40%가 이 질병에 노출됐던 것으로 파악하면서, 이후 이들에게 면역체계가 발달하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플루 시즌이 도래하고 있고 미 연방정부가 국가비상사태까지 선언한 상황에서 뉴욕시측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백신 공급 차질…일선 의료계 현장선 '발 동동' = 지난 24일 신종플루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이후 워싱턴 D.C. 일대에서는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을 중심으로 신종플루 감염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신종플루 백신 공급이 차질을 빚고 있는데다 일반 소아과에서는 일반독감 백신마저 동나 백신공급 물량이 확보될 때까지 독감 예방접종 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 보건당국은 지난 24일과 25일 관내 각급 학교학생들을 대상으로 백신접종을 할 예정이었으나 백신 공급량이 예상보다 적어 학교에서의 접종을 일단 연기했다.
대신 페어팩스 카운티 보건당국은 24일까지 확보한 1만 회분의 백신만을 이용해 페어팩스 카운티 청사건물에서 임산부와 6개월에서 36개월 유아들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을 실시했고 26일 또 한차례 관내 5개 지역에서 백신접종을 할 예정이다.
처음으로 백신접종이 시작된 24일 페어팩스 카운티 청사건물에는 이른 아침부터 접종 대기자들이 몰려 큰 혼잡을 빚었다.
페어팩스 카운티 보건당국에는 추가접종과 관련된 문의가 빗발치고 있지만 구체적인 일정에 대해서는 확실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페어팩스 카운티 보건당국은 "백신이 확보되면 공급 계획을 발표할 계획"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페어팩스 카운티 보건당국은 학교에서 감염사태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학부모와 학교 당국에 아픈 학생들은 등교하지 않도록 하고 만약 학교에서 감기 증상 등이 있는 학생이 발견되면 곧바로 집으로 보내도록 권고하고 있다.
메릴랜드 주 몽고메리 카운티 락빌의 한 보건소에서도 200회분의 신종플루 백신을 확보해 접종에 나섰으나 이른 아침부터 확보한 백신량을 훨씬 웃도는 접종대기자들이 몰렸다.
뉴욕시의 경우 예방백신의 절대량이 모자라 25일 일단 400명 미만의 소규모 학교들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플루 전문가인 마틴 세트런 박사는 "뉴욕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면역을 갖게 됐고, 더 이상 이 질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예방 백신을 맞을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직 위험한 결론"이라며 "남은 겨울을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맨해튼 주민인 니콜 루리는 "지금은 뉴욕이 별 문제가 없지만 정부가 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백신을 맞으려고 하고 있다"며 "지난 주에 학교에서 백신 접종 허락여부를 묻는 통지서가 왔지만 부작용이 우려돼 허락하지 않았는데 다소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주 주요 공중 보건소와 대형 병원들은 10월 들어 플루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의 수가 크게 늘고 있다고 밝혔다.
실리콘밸리 지역의 경우 신종플루 발생 이후 어린이나 학생을 포함해 지금까지 58명이 숨진 것으로 나타나 지역 사회에 비상이 걸렸다.
카이저퍼머넨테 등 대형 병원들은 어린이는 물론 17~65세의 일반 환자들에게 백신을 접종하기 시작했으며 충분한 백신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보건소와 일선 병원들은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됨에 따라 백신 공급이 좀 더 빨라지고 플루 접종 등과 관련한 각종 규제 등이 완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한인사회 '불안감' = 신종플루 백신 공급이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주에 거주하는 초·중·고교 자녀를 둔 한인들이 백신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워싱턴 인근 한인커뮤니티인 애난데일의 한인 소아과들은 신종플루 백신접종에 대한 문의가 잇따르고 있지만 신종플루 백신은 물론 일반 독감 백신도 떨어져 예방 접종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인 소아과의 한 관계자는 "제약회사들이 신종플루 백신을 만드는데 매달리면서 일반 독감백신마저 부족사태가 빚어지고 있다"면서 "일반 백신을 사전에 대량으로 확보해 놓지 않았다면 현재 많은 병원에서 백신 자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한 한인 학부모는 "신종플루 백신 공급이 지연돼 일반 독감백신 접종이라도 하려고 했는데 상황이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면서 "백신공급이 정상화될때까지는 가급적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 한인 사회는 지난 봄 한인들이 집중적으로 모여살고 있는 롱아일랜드를 중심으로 감염환자가 급증하면서 비상이 걸렸지만 최근에는 다소 잠잠해진 분위기다.
플러싱 한인 타운내 김세진내과의 김 원장은 "봄에는 약 30명 정도가 H1N1으로 분류됐지만, 올 가을들어서는 단 한명의 신종플루 환자도 없다"면서 "정부 측과 연락해 백신도 상당수 확보해 놓고 있어 뉴욕 한인사회는 아직 크게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뉴욕 총영사관의 최병선 영사는 "지난 봄 이 지역을 휩쓸고 간 신종플루로 군중면역이 생겼다는 것은 상당히 신뢰할만한 이론이며 현재 뉴욕·뉴저지 지역은 '면역의 섬'과 같다"면서 "그러나 신종플루 바이러스가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특성이 있는 만큼 한인사회도 경각심을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소아과를 운영하는 손동선 원장은 "한인들을 비롯해 많은 주민들이 매우 걱정스런 목소리로 백신 접종을 문의하고 있는데 일선 소아과에는 백신 공급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언제, 얼마나 공급될 수 있을지 현재로선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와 새너제이, 오클랜드 등지의 일선 소아과에는 백신 접종을 문의하는 전화가 빗발치고 있으나 백신 자체가 없어 접종이 어려운 상태다.
새너제이에 위치한 이부웅 소아과 관계자는 "백신 접종에 대한 고객의 문의가 많지만 현재 확보된 것은 없으며 다음주가 되면 공급이 이뤄지지 않을까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뉴욕.샌프란시스코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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