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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쓰레기 봉투 뒤지고 다닌 사연

안서현

입력 : 2009.10.13 10:15|수정 : 2009.10.13 10:16

- '1회용품 줄이기 자발적 협약', 그게 뭐야?


밤새 서울 시내 쓰레기 봉투를 헤집고 다니는 직업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정답은, 기자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ㅠㅠ

지난 9일 밤.

금요일 밤이라 그런지 젊은이의 거리 신촌에는 데이트하는 연인들로,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 흥에 겨운 학생들로 넘쳐났습니다.

그런 학생들 틈에 껴서 저는 환경단체인 자원순환연대의 팀장님과 패스트푸드점인 M사 앞 종량제 봉투 앞으로 다가섰습니다.

멀리 영상기자 선배와 오디오맨이 지켜보는 가운데 종량제 봉투 안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깊숙이 손을 넣을 것도 없이 봉투 안에는 여기저기 일회용 컵과 재활용 가능한 종이 용기가 가득했습니다.

가끔씩 손에 닿는 뭉클한 케첩소스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역한 냄새.

미친 사람을 보듯 신기해하며 휴대전화로 사진까지 찍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다음날 포털사이트에 '쓰레기녀'로 검색어에 오르지 않을까하는 걱정들로 정신이 혼미해졌으나 봉투 속을 완전히 쏟아내자 일회용품 천국이 따로 없었습니다. (다시 담느라 죽을뻔 했습니다.ㅠㅠ)

광화문의 한 커피전문점 S사 앞으로 자리를 옮겨서 그 곳 종량제 봉투 안도 조사해보니, 약속이나 한 듯 재활용 가능한 일회용 컵들로 넘쳐났습니다.  

그리고, 다른 봉투엔 S사가 평소에 퇴비로 사용하거나 원하는 고객에게 제공한다며 '친환경' 정책의 일환으로 대대적으로 홍보한  '커피찌꺼기'가 봉투 전체를 하나 가득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놀라운 일들이었습니다. 왜냐구요?

지난 5월. 환경부와 국내 유명 패스트푸드점, 커피전문점 등 13개 업체는 '1회용품 줄이기 자발적 협약'을 맺었습니다.

원래 환경부의 이 자발적 협약은 2003년도부터 있었던 것인데요, 과거에는 컵 보조금이 협약의 핵심적인 내용이었습니다.

기억하시죠? 음료를 살 때, 일회용컵 보조금이라고 해서 50원이나 100원을 받았던 사실.

그런데, 지난해 3월 이 컵 보조금 정책을 없애면서 일회용품 사용은 다시 급격하게 늘어나게 됩니다. (환경부 조사결과, 20~50%정도 증가)  

그래서 환경부는 '업체 스스로 1회용품 사용을 줄이자'는 자발적인 내용의 협약을 새롭게 들고 나옵니다.

                     

오호.

그럼 업체가 자발적으로, 양심적으로 지키는 일만 남았군요!!

참, 쉽죠........?가 아니라,

기업이라면 '편리함', 혹은 '나 하나쯤이야..'이라는 생각을 떨치기가 쉽지는 않죠.

어쨌든 업체들의 자발적인 양심에 맡긴 이 '1회용품 줄이기 자발적 협약'은 업체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친환경적인 이미지도 부각시키는 탓에 서로서로 좋은 방향으로 운영되는 듯 싶었습니다.

또, 매장 면적이 266㎡(80평)이상인 경우에는 매장 안에서 1회용품 대신 다회용기(머그컵 등)를 꼭 사용해야 하고, 이를 어길 경우 협약이 파기돼 자동적으로 협약 명단에서 제외됩니다. (과연, 업체들이 이를 무서워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대로 밤새 종량제 봉투를 헤집고 돌아다닌 결과 이를 제대로 지키는 업체를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날이 밝은 어제 낮, 신촌의 커피전문점 C사를 찾아가 아이스 커피를 주문하며 '(매장 안에서)먹고 갈 거다'라고 말했지만 자연스럽게 1회용컵에 담아서 음료를 내주더군요.

그래서 '머그컵에는 줄 수 없나요?'고 묻자, 너무나도 당당히 '아이스 음료는 일회용 컵에 밖에 안 된다'고 매장 직원은 답했습니다.

                       

환경단체는 협약을 지키지 않는 업체들도 물론 잘못이 크지만,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이 '자발적' 협약을 만든 정부도 잘못이 크다고 비판합니다.

원래 저런 협약 말고 우리에겐 '재활용 촉진법'이라는 법이 있습니다.

밤에 조사한 것처럼 재활용 가능한 일회용 컵 같은 자원을 분리수거도 제대로 안 하고 저렇게 내다버릴 경우 과태료 등을 물리는 강제력을 갖는 법이죠.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환경부가 업체들을 봐주려고 일부러 '자발적 협약'이니 뭐니를 만들어 상위법이자, 강제력과 처벌 근거가 있는 재촉법(재활용 촉진법)을 슬쩍 묻어두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뭐, 일회용품 사용 규제에 대한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것이겠죠.

이 말이 맞든, 저 말이 맞든 무분별한, 그리고 불필요한 일회용품의 사용은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더욱 나쁜 건, 사용한 뒤 재활용이 충분히 되는 데도 일반 쓰레기와 함께 종량제 봉투에 같이 버린 것이구요.

이 보도로 이제 매장 안에서는 종량제 봉투 단속 한 번 더 확실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일회용컵 같은 재활용 가능한 자원들이 더 이상 섞이지 않도록 말이죠.

또 말뿐인 협약이 아닌 진정 자발성과 양심을 보여줄 수 있는 협약으로 거듭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