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중앙지검 기자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습니다.
서울고검 총무과 직원이라는 사람의 전화였습니다. (참고로 서울중앙지검과 서울고검은 같은 건물에 있으며, 청사 관리는 서울고검이 맡고 있습니다.)
내용인즉슨, 12일로 예정된 서울고검과 서울중앙지검 등에 대한 국정감사가 진행될 동안 기자들이 국감장에 오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장소가 협소하다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국민을 대표한 국회로부터 감사를 받는 자리에 기자들이 못 오게 해 달라니요? 아마 국감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일 것입니다.
기자들이 기자석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한 적 없습니다. 장소가 협소하면 서서 들으면 그만입니다.
기자들은 모두 어처구니없어 했습니다. 한 기자가 의심스러워 서울고검 총무과에 전화를 걸어 물었습니다. 그렇게 전화한 사실이 있느냐고... 돌아온 대답은 '전화한 사실 자체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튿날, 고검의 한 검사한테서 정식으로 답변이 내려왔습니다.
"고검 총무과 직원이 기자실에 전화한 사실은 있지만, 의사소통이 잘못된 것 같다. 국감장이 협소하니 기자들 오지 말라고 요청한 게 아니라, 기자실에서도 국감 상황을 다 볼 수 있도록 CCTV를 설치할 테니 굳이 국감장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자들의 국감장 출입을 막을 이유가 없다"는 뜻도 '뒤늦게나마' 밝혔습니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보기엔 씁쓸하기만 합니다.
오히려 요즘 검찰과 출입 기자단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검찰과 기자들은 '냉전 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검찰총장이 새로 온 이후 검찰은 변화를 기치로 내걸고 있습니다.
의도했든 안 했든, 그런 변화를 기자단에게 가장 먼저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수사 관행 개혁을 통해서가 아니라, 보도와 관련한 일방적인 태도를 통해서입니다.
요즘 서울중앙지검의 부장검사들은 기자들의 전화를 무시하기 일쑤입니다.
찾아가도 바쁘다는 이유로 얼굴조차 보기 힘듭니다.
요행히 전화가 연결돼, 구속영장이 발부된 사건의 기초적인 사실 관계 (예를 들어, 범행 장소 등)를 물어보려고 하면, 질문이 시작되기 무섭게 "부장검사들은 입이 없습니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수사를 지휘하는 부장검사들이 이러한데, 평검사들은 어떨까요?
아예 기자와의 접촉을 금기시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기자가 자기 방에 왔다가 다른 사람의 눈에 띠면 간부들에게 질책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기자들은 천덕꾸러기나 애물단지로 비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검찰이 내세우고 싶은 것(예를 들어, 검찰 개혁 회의결과 등)이 있으면 어김없이 보도자료를 냅니다. '꼭 취재를 해 달라'는 간접적인 압력을 받기도 합니다.
아마, 기자들을 피하면서도 정작 기자실을 폐쇄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당연히, 언론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보도 관행을 되짚어보고 이를 바꾸려는 내부 논의도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최근 검찰의 태도를 이해하는 기자는 없습니다.
마치,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검찰에 대한 역풍이 '언론 때문'이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검찰의 한 고위 간부는 며칠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검찰의 수사가 마무리됐을 때, 즉 기소 단계에서 기사를 쓰라"며 보도 방향을 '친절하게' 가르쳐주면서, "우리가 보기에 국민이 꼭 알아야 할 것, 몰라도 되는 것, 모르는 게 더 좋은 것이 있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검찰이 공개하거나 발표하는 정보만 가지고 보도하라는 취지로 여겨졌습니다.
물론, 검찰이 의도적으로 수사를 왜곡하거나 은폐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말도 빼놓지 않습니다.
검찰의 수사 공보제도 변화도 좋지만, 이러다가 검찰이 역사를 거슬러 역행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듭니다.
며칠 새, 이곳 서울중앙지검에는 '국감 예행연습'을 알리는 방송이 수시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준비가 많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반면, 기자들의 감시의 눈은 어느 때보다 번뜩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