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 연구 집대성한 '겸재 정선' 출간
"겸재와 간송의 만남이 숙명이듯이 내가 겸재를 만나게 된 것도 숙명이죠. 겸재를 연구한 40년은 한 마디로 '영광스러웠다'라고 할 수 있겠네요."
40년의 겸재 연구를 일단락짓는 책 '겸재 정선'(전 3권·현암사 펴냄)을 펴낸 최완수(67)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실장은 겸재 연구에 바친 평생을 '영광스럽고 행복했다'라고 표현했다.
겸재 연구의 권위자로 그동안 꾸준히 발표해 온 겸재 관련 연구 내용을 총망라해 펴낸 책은 연구에 바친 세월과 노력을 반영하듯 본문만 200자 원고자 3천 673장 분량에 도판 206장, 참고그림(삽도) 147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겸재 그림 자체에 대한 연구 외에도 겸재의 가계도와 가정형편, 교우관계, 학맥 등 겸재의 개인적인 측면과 당시의 정치·경제·사회 상황까지 연구해 겸재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세상에 알려진 겸재 관련 문집은 가능한 한 거의 독파했다"는 최 실장은 40년간의 연구 성과가 집대성된 책에 대해 큰 자신감과 자부심을 나타냈다.
"(내용을) 더 보태고 싶었지만 마침 겸재 서거 250주년을 맞아 작심하고 일단 마무리를 지은 겁니다. 하지만, 겸재 그림을 이해하려면 이 책 한 권이면 될 겁니다. 남은 것은 이제 낙수(落穗. 뒷이야기) 정도죠. 과거에 냈던 겸재 관련 책은 작품 성격에 따라 그림을 나눠서 한 화첩에 있던 작품이라도 흩어져 있었지만, 이 책은 편년체로 서술돼 일목요연하게 겸재의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국립박물관에서 근무하던 그가 미술사학자 고(故) 최순우 선생의 제의로 간송미술관에서 일하게 되면서부터 겸재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왜 겸재였나'라는 질문에 그는 "조선문화가 형편없었다는 주장에 반박하려면 '진경산수화'를 보여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조선왕조의 멸망 이후 일본 강점기 근대사학의 영향으로 우리 사학계에는 조선왕조 500년이 정체돼 있었다는 시각이 만연해 있었고 이를 바로잡으려면 조선시대를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었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조선왕조 500년의 문화사 중 절정을 이루는 '진경시대'를 조명할 수 밖에 없었고 자연스레 진경시대의 핵심 인물인 겸재에 대해 연구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겸재 그림들을 바탕으로 겸재 연구를 시작한 최 실장은 자신의 연구는 간송 전형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간송이 겸재의 가치를 알아보고 집중적으로 겸재의 대표작들을 수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겸재와 간송의 만남은 숙명이었어요"
오랜 세월 동안 도망치고 싶던 적은 없었을까.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최 실장은 "도망치고 싶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평생을 걸고 연구하지 않았다면 겸재가 이렇게 밝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미치지 않으면 못할 짓이기도 했죠. 하지만 행복했습니다"
"이 책을 바탕으로 앞으로 겸재 연구자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하는 최 실장은 후학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겸재 연구에만 그쳐서는 안 되고 진경시대 전체를 연구해야 합니다. 제가 일단 (이 책으로)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준 것이죠. 또 조선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릴 수 있도록 언젠가는 이 책도 외국어로 번역해야겠죠"
1976년 추사집을 번역한 책을 펴내기도 했던 최 실장은 앞으로 추사를 연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추사 연구도 이제 해야죠. 그리고 왕릉 연구도 마무리해야 돼요"
각 권 400~570쪽. 전 3권 32만 원.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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