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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24시, 보람은?

유희준

입력 : 2009.09.25 17:58|수정 : 2009.09.25 19:48


기자(記者)는 말 그대로 '기록하는 사람'입니다. 10년이 넘는 기자 생활을 되돌아보면, 사실을 사실 그대로 기록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글을 잘 써서 기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사람 많이 알고 취재를 잘한다고 기자가 되는 것도 아니더군요.

참고로 국무총리실을 출입하는 16년차 정치부 기자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간단하게 소개해볼까요? 기자의 하루 일과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바쁘다 바빠"입니다. 그럼 얼마나 바쁘게 하루를 보내는 지 일정을 정리해보겠습니다.

기상시간은 매일 새벽 5시30분입니다. 일어나자마자 거의 자동으로 현관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가 조간신문을 챙겨봅니다. 어제 주요 뉴스가 어떻게 다뤄졌는지 일람해보는 시간이지요. 출근시간은 6시20분에서 30분 사이. 승용차를 이용해 오전 7시까지 국무총리실로 나갑니다. 국무총리실 출입기자는 감사원과 국민권익위원회, 법제처에서 발생하는 관련 내용을 모두 다 챙겨야 합니다. 따라서 전날 저녁은 물론 출근 직후에 출입처의 일정과 예정사항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그리고 또 다시 조간신문을 점검합니다. 집에서 구독하는 신문외에 다른 신문에 단독 기사나 주요 기사가 없는지 확인해보는 겁니다.

출입처에 나간 뒤 일정과 기획 아이템을 챙겨 회사로 첫 보고를 하는 시간은 오전 7시 40분입니다. 전화로 데스크와 상의한 뒤, 오늘 8시 뉴스에 나갈 아이템을 정리해 기획서를 작성한 뒤 회사로 전송합니다. 회사에 있는 데스크와 부장은 현장에서 보낸 기획서를 토대로 오전 8시 30분부터 편집회의를 시작합니다. 오후 2시와 5시까지 하루에 3차례 진행되는 편집회의에서 보도국장과 각 부서장들은 개별 아이템의 취사선택, 배열, 그리고 당일 톱 뉴스를 결정합니다.

오전 편집회의가 끝나면 당일 방송에 나갈 아이템의 윤곽이 드러납니다. 이렇게 편집회의에서 당일용 뉴스 아이템이 걸러지면 담당 기자는 제작에 들어가야 합니다. 영상취재 기자를 현장으로 불러 필요한 화면과 인터뷰를 카메라에 담아야 하지요. 사전에 취재원을 섭외해 인터뷰 내용과 취재장소를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출입처에서 기획서와 관련된 내용을 브리핑하거나 기자회견을 하면 빠짐 없이 취재해야 합니다.

당일 편집회의에 기획서가 채택되지 않을 경우에는 다음날 아침에 올릴 기획 아이템을 찾기 위해 하루 종일 취재를 해야 합니다. 새로운 뉴스를 찾아 취재원을 만나고 출입처의 일정을 챙기는 것이지요. 취재과정에서 의혹이 생기거나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파고들면 의외의 특종을 낚는 경우도 생기고, 의미 있는 기사를 건지기도 합니다. 물론 하루종일 열심히 돌아다니는데도 아무것도 찾고 못하고 허탕 치는 날이 더 많습니다.

방송 뉴스는 영상을 토대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방송기자는 뉴스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카메라 기자와 함께 움직이게 됩니다. 편집회의의가 끝난 10시쯤 카메라 기자를 현장으로 부르면 11시쯤 현장에서 합류하고, 1시간 가량 취재를 진행한 뒤 점심 먹고 기껏해야 한 두곳 더 다니면 회사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됩니다. 갈수록 교통상황이 나빠져 인터뷰 하나 하는 데 무려 2-3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고 가는 시간과 준비시간을 다 합친 것인데, 인터뷰외에 현장을 찾아 관련 화면을 촬영하고 회사로 돌아오면 오후 4-5시가 됩니다.

정치부의 경우 이동시간을 줄이고, 긴급 상황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출입처에 오디오와 비디오 송출장비를 갖춰놓고 있습니다. 국회팀은 물론 행정팀 모두 현장에서 기사를 작성하고 오디오와 비디오를 송출하기 때문에 회사로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방송기술도 나날이 발전해 회사에 들어가지 않고 현장에서 컴퓨터에 접속해 당일 촬영한 화면은 물론 자료 화면 검색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대략 오후 4시부터는 당일 8시 뉴스에 방송되는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합니다. 1시간 정도 기사를 쓰고, 송고하면 데스크 수정을 거쳐 오후 6시에서 7시 사이에 편집을 시작하게 됩니다. 물론 8시 뉴스외에 낮 뉴스를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단신과 리포트 기사를 작성해 회사로 송고합니다. 요즘에는 인터넷 뉴스에 대한 관심도 커져, 방송용 기사외에 이렇게 취재파일이나 블로그용 기사도 작성하기도 하지요.

마감시간은 밤 8시. 저녁 7시부터 8시까지는 하루 중 제일 긴장도가 높아지는 시간대입니다. 방송 직전 기사가 제대로 편집됐는지, 방송용 자막에 오탈자는 없는지, 취재한 내용의 사실관계에 문제는 없는지 보고 또 보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입니다.

이후 방송이 잘 나갔는지 확인한 뒤에는 다음날 예정사항을 챙기고 퇴근합니다. 이외에도 경쟁사 뉴스를 모니터하고 출입처와 취재원으로부터 전달되는 수십통의 메일과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는 일도 기자의 하루 일과 중 하나입니다. 또 퇴근후 주요 취재원과 만나 출입처에서 돌아가는 속사정을 듣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기자의 일과라고 볼 수 있지요.

힘든 기자 생활이지만 보람을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전에 기사로 문제를 제기한 내용이 실생활에 반영되거나 개선책이 나오는 걸 보면서 저는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에 대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예전에 학교폭력 현장을 취재한 뒤, 국회 교육위에 출석해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취재한 내용을 소개하고 학교폭력 예방특별법이 시급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촉구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국회 속기록에 제가 발언한 내용이 다 남아 있는데요. 이후 학교폭력예방 특별법이 실제로 통과돼 큰 보람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이밖에도 친일파의 재산 환수 문제와 전,의경 구타 문제를 심층 취재해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을 때에도 보람을 느꼈지요.

오늘 뉴스에서는 "돈이 없어 벌금을 못 낼 경우 교도소 노역 대신 사회봉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특례법이 내일부터 시행된다"는 내용이 나갈 예정인데, 이 뉴스는 제가 8년 전 <뉴스추적>에서 문제를 제기한 내용과 관련돼 있어 잠시나마 뿌듯한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이 특례법은 3백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벌금을 낼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만 사회봉사 기회를 주도록 했습니다.

8년 전에 제가 <뉴스추적>에서 '강제노역 -벌금 247만 원과 바꾼 목숨'이란 제목으로 40분 가량 집중적으로 보도한 내용을 다 인용할 수 없어, 당일 8시 뉴스에 제가 보도한 1분 30초짜리 내용을 인용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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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달 19일 울산구치소에서 강제노역에 동원됐던 한 40대 남자가 수감 이틀만에 숨졌습니다. 당시 검찰과 구치소측은 사인을 알코성 질환으로 사망했는데 추정했는데, 새로운 부검결과가 나와 이 사건에 대한 전면적인 재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유희준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지난달 19일 울산구치소에서 40살 구숭우 씨가 수감 이틀만에 숨졌습니다. 구 씨는 벌금 247만 원을 낼 돈이 없어 강제노역에 동원됐다 변을 당했습니다. 당시 검찰과 구치소측은 평소 알코올 중독자였던 구 씨가 수감 직후 금단증상을 보이다 숨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또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역시 구 씨가 알코성 질환 때문에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1차 소견을 냈습니다. 이런 결과에 따라 당시 대부분 지방 언론사에서는 구 씨가 술병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뉴스추적에서는 구 씨가 구타로 숨졌다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는 한편, 강제노역의 문제점을 심층취재해 방송했습니다. 뉴스추적이 구타 의혹을 제기하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지난주 초 이례적으로 재부검에 들어갔습니다. 재부검 결과 구 씨는 강한 외부의 충격으로 빚어진 외상성 쇼크 때문에 숨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국과수 부검의} "멍이 들었다든지, 근육에 출혈이 있다든지 이런 걸 말하거든요. 이게 범위가 넓기 때문에 그 사람이 사망했을 것이다" 숨진 구 씨의 엉덩이와 다리, 그리고 팔 부분을 비롯해 거의 온 몸에서 강한 외상에 따른 과다출혈이 있다는 사실을 새로 밝혀낸 것입니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에 대한 전면적인 재수사는 물론, 울산 구치소내 관련자들의 처벌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2001.12.21. 8시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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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 247만 원을 못내고 구치소에서 강제노역을 받다 숨진 故구숭우 씨는 차상위계층이었습니다. '무전유죄'라는 말처럼 구 씨는 돈이 없이 구치소로 끌려갔다 변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중이던 딸은 이제 고3이 됐지만, 돈이 없다는 이유로 구치소에 끌려간 아버지는 그 이후로 줄곧 다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이제부터는 형편이 어려운 경우에는 돈을 내는 대신 사회봉사 기회를 주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됐으니 제2의 피해자가 나올 가능성은 없어졌습니다. 오늘 이 소식을 전해들으면서 힘든 기자생활이지만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한 데 대한 보람과 세상은 조금씩 천천해 변한다는 점을 새삼 느낍니다.

 

[편집자주] 16년차의 경력에도 왕성한 취재력을 과시하는 유희준 기자는 현재 정치부 소속으로 총리실을 출입하고 있습니다. 굵직한 특종과 호소력 짙은 시사다큐로 2002년 한국방송대상과 2003, 2005년 한국기자상을 두번이나 수상하며 SBS 탐사보도의 위상을 높인 베테랑 방송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