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 금요일 오후에 일본 민주당 당사에 다녀왔습니다.
하토야마 대표가 차기 총리 자격으로 주요 외교 사절들과 연쇄 면담을 하는데 권철현 주일대사와 그 날 오후에 면담이 있었습니다.
그 취재를 위해 처음으로 민주당사를 가본 것입니다. 예전에 자민당사는 두 번 정도 가봤습니다만 민주당사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건물의 4개층을 쓰고 있던데, 첫 소감은 좁다는 것이었습니다.
빌딩 입구는 물론 하토야마 대표의 집무실이 있는 곳을 비롯해서 각 층마다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기자들이 몰려있는 복도는 사람 한 명이 지나가기도 힘들 만큼 붐볐습니다. 집권당이 되는 민주당, 더구나 지금은 정권교체 시기이기 때문에 기자들이 민주당사로 몰려드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정권교체 직후의 집권정당의 모습은 한국이나 일본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야스나리君은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했지요?
그렇지만 자민당 몰락, 민주당 정권 등장이라는 이번 드라마에는 관심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버님, 어머님이 정치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시니 야스나리군도 조금은 영향을 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본은 지난 93년도에 여.야 정권 교체가 있긴 하지만 선거에 의한 여.야의 교대는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지요. 저는 반세기 만에 이루어진 일본의 정권 교체, 특히 그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집권 당사의 풍경은 비슷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정권 교체 과정은 많이 다릅니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와 의원내각제 국가의 차이, 두 나라의 다소 상이한 정치 문화, 전통도 정권 교체 풍경을 다르게 하는 주요 원인이겠지요.
제가 비교적 가까이에서 지켜본 98년과 2002년의 한국 정권 교체는 지금 돌이켜보면 마치 혁명이 일어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지난해 한국의 정권교체 당시에도 그런 느낌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을 겁니다.
저는 정권교체하면 처음 떠오르는 것이 검색대입니다. 금속탐지 기능이 있는 검색대를 야스나리군은 잘 모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요인 경호를 위해 쓰이는 장비입니다.
한국에서는 대통령 선거 개표가 이루어져 당선자가 확정이 되면 곧바로 청와대 경호실에서 당선자의 신변 경호를 맡습니다. 당선자로 결정된 바로 그날 당시 노무현 후보가 있던 당사 집무실 입구에는 금속 검색대가 설치가 됐습니다.
그것을 처음 본 제 느낌은
아, 이제 당선자는 우리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이 됐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검색대라는 것은 경호에 필요한 물리적인 장비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국민과 일정한 거리를 두도록 하는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는 장비였습니다.
후보 시절 거의 매일처럼 얼굴을 대하던 인물이 당선자가 되자 얼굴 보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어쩌다 바깥 출입을 하는 당선자를 먼 발치에서 보고 목소릴 높여 인사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선자가 우리와 멀리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대통령직 인수위라는 기구가 설치 되고 별도의 사무실이 설치됩니다. 그 사무실에 출입하려면 별도의 출입증이 필요했습니다. 당선자와의 벽이 높아지고 벽이 높아질수록 당선자가 이끄는 인수위라는 기구는 청와대 이상의 서슬 퍼런 권력 기관이 되고 있었습니다. 누가 어느 자리에 가느냐를 두고 연일 하마평이 끊이지 않고 거기에서 나오는 이른바 새정권의 정책 구상이 톱뉴스가 되는 것, 그것이 한국 정권 교체의 모습입니다. 권력의 탄생이지요. 요란했습니다.

이에 비하면 일본의 정권 교체는 한국에 비하면 초라하다 싶을 만큼 조용한 편입니다. 한국에서는 두 달 여의 기간에 대통령직 인수위라는 공식 기구에 의해 정권의 인수 인계가 이루어지는 데 비해 일본은 정권 교체 기간은 2주일 남짓입니다.
정권 교체를 위한 별도의 법정 기구도 없습니다. 정권 교체의 경험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일부 신문에서는 정권 교체의 매뉴얼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하고 있더군요. 주요 각료와 당직 인사 인선 문제,연립 정권 구성 문제가 뉴스가 되긴하는데 세상이 바뀐 것 같은 요란함은 적어도 겉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토야마 대표가 차기 총리로 결정됐다고 해서 별도의 사무실을 제공받았다는 이야기나 경호가 눈에 띄게 강화됐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습니다. 평소에 타던 승합차를 타고 기자들과 만나는 모습도 그대롭니다. 지난주 각국 대사와의 면담에서 의전이 강화됐다는 인상도 저는 받지 못했습니다. 취재를 위해 민주당사를 들어가는데 별도의 출입증이 필요하지도 않았습니다. 사전 취재 요청서 같은 것을 보낼 필요도 없었습니다.
일부 일본 언론이 걱정하는 것처럼 정권 교체 시스템이 마련돼있지 않은 것은 조금 염려스러워보이긴 합니다. 2주 남짓한 시간에 정권 교체가 제대로 되는 것인지, 국정에 대한 파악은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인지, 선거 때 공약한 내용들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만드는 작업은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하고 있다면 누가 하고 있는 것인지 등등...
정권 교체와 관련해 궁금한 것이 참 많은데 그와 관련한 정보는 너무 적다는 것이 솔직한 제 느낌입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정권 교체에 따른 국정 공백이 꽤 있겠구나 싶습니다. 더구나 민주당 정권이 관료들에게 의존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만큼 그 공백은 더 크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야스나리군.
많은 사안이 그런 것처럼 정권 교체 방법 역시 어느 쪽이 낫다는 결론은 내릴 수도 없고 그런 결론을 내리자고 이 글을 쓰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한가지는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비교적 가까이에서 본 두 차례의 한국 정권 교체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이 있다면 현대 국가, 특히 민주적인 시스템이 확립된 국가에서 정권이 바꿀 수 있는 일이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정권 교체는 사람 교체인데요. 책임자의 교체로 인한 정책의 전환, 공직 분위기의 쇄신 등은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영향은 생각보다 제한적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정권 교체에 따른 인물의 교체는 사실 공직 사회에 제한된 것입니다.
정치 권력이 사회 전 영역에서 자신의 주도권을 관철시킬 수 있었던 독재 정권 시절에는 정권 교체는 사회 모든 것의 변화로 이어지겠지만 민주화가 정착된 사회에서는 정치 권력의 영향력은 점차 제한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그런 모습을 봅니다.
정권이 바뀌면 경청동지할 정도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아직도 한국에서는 강합니다만 그러나 의외로 변하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특히 국민의 일상과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말이지요.
일본의 너무 조용한 정권 교체를 보면서 저는 다시 한 번 일본이 얼마나 안정된 사회인가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너무 안정돼 있어 지루하고 활기가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긴 합니다만 조용한 민주당 정권 교체는 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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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일본 사회를 관통하는 깊이있는 시각과 연륜이 느껴지는 윤춘호 기자는 2007년부터 SBS 도쿄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1991년 SBS 공채 1기로 입사해 사회부와 정치부, 국제부 등에서 일했고 특히, 북한 관련 취재와 통일안보분야, 국회 정당팀에서 오랜 기간 활약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