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로 상심이 크신 분들 많으실 텐데 인터넷을 떠돌다보니 어느 분께서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당시에는 온 나라가 슬픔보다는 공포가 지배하는 분위기에 숨 쉴 수조차 없는 분위기였는데 이번에는 경건한 애도 분위기 속이지만 평상시와 별로 다름없는 일상이 지배하고 있다. 이것도 김 전 대통령이 이룬 시대 변화 업적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라는 의견을 올리셨더군요.
애도기간이라 표현을 안하고 있을 뿐이지(격한 표현을 하는 극소수 용감하고 위대한 인물도 있지만) 여전히 그의 서거는 물론 생애 전반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과 견해를 가지신 분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애도 기간이 지나면 다시 발호(?)할 것이 분명하기에 슬픔과 애도에만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고인이 생의 마지막까지 강조하셨던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화해' 이 세 가지 화두를 명심하고 '담벼락에 쳐다보고 욕하는 것' 이상의 작은 노력과 행동을 항상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사일런트 웨딩]이라는 루마니아 영화는 공산주의를 엽기적으로 변질시킨 철권통치를 역사에 남긴 스탈린의 죽음을 모티브로 합니다.
루마니아의 작은 마을의 젊은 남녀 '이안쿠'와 '마라'는 서로 눈이 맞아 들판에서, 창고에서 시간 장소 불문 자유분방하게 사랑을 나누다가 결국 결혼을 결정합니다.
이들의 결혼식은 양가 합의아래 마을 최고의 축제로 준비되며 각종 음식이 마련되지만 결혼식 당일 스탈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마을에 진주한 소련군은 일주일간 애도기간을 선포하며 모든 종류의 집회와 웃음을 금지시킵니다.
모처럼 잡은 돼지와 소를 포함 정성껏 준비한 음식이 상해버리게 되는 등 부작용에 마음 아파하며 흩어진 하객들은 밤늦게 다시 몰래 모여 제목 그대로 '침묵의 결혼잔치'를 거행합니다.
제가 루마니아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무시무시한 독재자 차우체스쿠, 드라큘라의 원산지, 체조요정 코마네치 정도네요. 루마니아 영화들은 소련 연방 해체와 동유럽 공산주의 붕괴 이후 해빙기를 맞아 자신의 역사와 현실을 되돌아보는 영화들이 근래에 들어 활발하게 세계 영화계에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 루마니아 사람들은 참 낙천적인 것 같습니다. 영화의 첫 장면은 현재 루마니아 방송 제작팀(우리 식으로 말하면 [세상에 이런 일이] 정도 되는 아이템을 취재하는 팀 정도?)이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찾다가 폐허가 된 공장이 들어선 곳을 찾는 장면부터 등장인물들은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낄낄거리고 이후 등장하는 1950년대 루마니아 시골 마을 사람들도 착취와 압제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만 '뭐 이까지 것'하며 유머와 낙관의 정서가 바닥에 깔려있습니다. 체제나 환경이 어떻든 어느 곳이나 그 곳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면 당연한 현상이겠지요.
영화 초반부 마을 애주가들이 모두 모이는 선술집 장면에서는 신랑, 신부 가족 간의 반목을 화해하는 과정과 지식인과 부르주아를 경멸하는 완장 찬 공산당 똥개 격 인물을 무시하고 짓밟지만 결국 큰 틀로 포용하는 공동체의 불가사의한 힘을 잘 표현하는 아주 멋진 연극적인 시퀀스입니다.
작가나 감독들은 그 압제의 강도가 폭력을 동원한 비인간성을 드러내면 그 고통에 대해 마술적 리얼리즘이나 판타지로 출구를 삼게 됩니다. 현실에선 해결책을 궁리해봐야 그럴 듯 하지도 않고 찾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슬픔의 정서를 동반한 판타지가 되는 것이죠. 영화의 결말부분 팬터마임 식으로 진행되는 침묵의 결혼식은 장면 장면 배꼽 빠지는 웃음을 선사하지만 그 바닥에는 애처로움, 측은함이 깔려 있습니다. (생리적 현상인 방귀 조절이나 떠들어 대는 아이들에 대한 대처 방식 등은 정말 빵 터집니다.) 절망적인 슬픔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유머나 웃음이 가볍게 날아가 버리지 않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무조건 따르라고 하는 이상한 체계와 행위가 만들어내는 비극적인 황당한 상황에 보기 좋게 엿 먹으라고 야유하면서 영화 자체도 재미있게 만들어내는 능력이 부럽습니다. 비극의 엄숙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작품으로서 참신한 접근을 하는 것은 훌륭한 예술적 성취입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평탄하지 않았던 생애와 궤를 같이하는 우리나라의 현대사에도 이런 비극들이 참 많았는데 문학이나 영화에서 이런 소재를 이런 방식으로 다루려는 시도가 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현재에만 집중하기에도 벅차 과거를 돌아볼 겨를이 없는 요즘, 이런 방식은 훌륭한 역사공부도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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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영화를 보는 편안한 시선' 남상석 기자는 2002년부터 영화계를 출입해 온 베테랑 문화 담당 기자입니다. 1993년 공채로 입사해 사회부와 정치부 등을 거쳐 오랜 기간 보도국 문화부에서 내공있는 필력을 과시해 왔습니다. 영화와 영화인들을 좋아하며 '평론가처럼 어렵지 않은.. 관객의 한사람 같은 친근한 눈높이의 영화평'으로 개인 블로그도 큰 반향을 얻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