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 역정은 숱한 고난과 좌절, 영광의 순간이 어우러진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았습니다.
6년이 넘는 투옥, 사형선고를 받아 죽음의 경계까지 넘나 들어야만 했던 파란만장한 정치 역정을 유성재 기자가 되돌아 봤습니다.
<기자>
지난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
김대중 전 대통령은 '40대 기수론'을 앞세워 야당인 신민당 대통령 후보 자격을 쟁취해 박정희 정권과 정면대결을 벌였습니다.
전 대통령은 당시 46%의 득표율로 높은 대중적 지지를 받았지만 선거에 패하면서 정치 탄압의 표적이 됐습니다.
년 뒤인 1973년 8월에는 이른바 김대중 납치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도쿄의 한 호텔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된 뒤 현해탄에 버려져 수장될 위기에 처했지만, 구사 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납치 닷새만에 서울로 돌아 왔습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납치사건 당시) : 폭력으로 제압당하고 마취제를 써서 의식을 잃게 만들어가지고, 자동차에 강제로 태워져서…]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찾아온 1980년 서울의 봄.
김 전 대통령의 정치인생에 해빙기가 열리는 듯 했지만 곧 더욱 엄혹한 탄압이 뒤따랐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 시간에 민주정부 수립에 총 매진한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호소하고 싶은 것입니다.]
신군부는 "광주 민주화 항쟁을 주도했다"며 김 전 대통령을 내란음모 혐의로 체포했고 계엄 군법회의에서는 사형이 선고됐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나라 안팎의 탄원과 구명운동으로 사형집행은 피할 수 있었지만 82년 12월 미국으로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1985년 2월 총선을 앞두고 귀국한 김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손잡고 이른바 신민당 돌풍을 일으켜 화려하게 재기했습니다.
하지만 1987년과 1992년, 잇따라 대선에서 고배를 마시며 또다시 좌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노태우 씨가 창피한 줄 알면서 이렇게 무리하게 사람들을 끌여들였는가, 우리는 이 독재자들의 간교한 저의를 알아야 합니다.]
김 전 대통령은 IMF 외환위기의 와중에서 실시된 97년 대선에서 극적으로 승리해 한국 정치사에서 처음으로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를 이뤄냈습니다.
다섯 차례의 체포와 6년의 투옥, 생명까지 위협하는 군사정권의 탄압과 박해를 이겨낸 김대중 전 대통령.
험난했던 그의 정치역정은 그 자체가 한발 한발 전진해온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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