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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산에 '장' 서던 날

유성재

입력 : 2009.08.18 17:16

현정은 회장 귀환 생중계


지난 주 내내, 그리고 어제까지 제가 속해 있는 정치부 행정팀의 최대 관심사는 방북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었습니다.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국지적 군사충돌 분위기 등 상반기에는 걱정되는 기사만 이어지다가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여기자들과 함께 귀환하고, 지난 주 목요일에는 136일동안 억류됐던 현대아산 근로자 유성진씨가 석방되면서 북한의 유화적인 조치에 모든 관심이 쏠리게 됐습니다.

일요일 밤에 현정은 회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을 가졌다는 소식이 북한 매체를 통해 알려지고, 다음날 새벽 현대그룹과 북한 조선아태평화위의 이른바 '5개항 합의'내용이 알려지면서 현정은 회장이 복귀한다는 것은 기정사실화됐습니다.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을 통해 5개항 '담판'을 이뤄낸 현정은 회장으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수는 없는' 성과를 올린 셈이고, 더 이상 북한에 머물 이유도 없으리라, 이런 정황상의 판단으로 어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는 현 회장의 귀환을 취재하기 위한 취재진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습니다.

돌아오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전해야 하는 방송 기자들은 출입사무소 현관에 '생중계용 좌판'을 벌려놓았습니다. 사실 며칠째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이었는데요, 어떤 모습인지 한번 보시는 게 백마디 설명보다 나을 것 같습니다.

플라스틱 책상에 각 회사의 로고가 자수된 천을 씌워놓고, 간이 모니터로 화면을 체크하면서 방송을 합니다. 하필 삼복더위에 습도까지 높아서 잠깐 앉아있다보면 등줄기로 땀이 줄줄 흐르던데, 중계 스탭들의 고생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아무튼, 현정은 회장이 평양을 떠났다, 개성에서 기다리던 조건식 현대아산 사장 등 직원들과 점심식사를 했다, 그런 소식들이 알려지면서 복귀가 임박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예상 시간은 오후 2시. 회사에서는 짧은 생중계를 계획해 놓고 현장 중계임무는 제가 맡았습니다. 

저는 지난 해 2월 숭례문 화재 다음날 남대문경찰서에서 1차 수사결과를 발표할 때 생중계를 담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옆에서 함께 출연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후배기자도 있었고, 경찰과 사전에 조율해서 발표 시간이나 내용을 미리 전달받을 수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현대측에서는 현 회장이 2시쯤 출입국사무소에 들어오고, 들어온 뒤에는 준비된 발표문을 읽고, 4~5개 정도의 기자 질문을 받겠다고 알려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앞뒤로 움직일 가능성도 있고, 발표문이 엄청 길거나, 질문이 많아질 수도 있는 등 변수가 많았습니다. 생중계 시간이 얼마나 될 지, 현 회장이 들어와서 차를 타고 나갈 때 까지 어떤 돌발상황이 생길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시간만 재깍재깍 흘러갔습니다.

복귀하기로 돼 있었던 2시에 현 회장은 군사분계선을 넘었습니다. 통관과 입경수속을 감안하면 이미 10~20분 정도 시간이 지체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옆눈으로 얼핏 보니 다른 방송사는 이미 속보에 들어가서 출연기자가 시간을 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말을 만들어 내거나, 아니면 아예 '할 말'이 없는 난감한 상태는 방송기자라면 가끔 꿈에도 나올 만큼 식은땀나는 순간입니다. 노트북 모니터에 메모장을 띄워 놓고 준비된 원고에서 수정할 부분을 체크하며 애써 평온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은 까맣게 타들어갔습니다.

드디어 속보 시작을 알리는 콜(call)이 귀에 들어왔습니다. 준비된 멘트를 시간을 감안해서 읽다보니 좀처럼 말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미리 써 놓은 내용이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머리속이 새하얘지는 순간, 다행히도 현 회장은 마이크 앞에서 준비된 원고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속보 방송은 큰 과실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뭐, 그 정도면 된 겁니다. 현정은 회장의 귀환과 기자회견, 그리고 출발까지 아슬아슬하게 딱 맞춘 시간이었습니다. 미리 들어가서 시간을 메꾸기 위해 고생하지도 않았고, 너무 늦게 방송이 시작돼 서두를 필요도 없었습니다. 회사 안에 있던 경험많은 선배들 덕에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았던 후배는 한 시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위의 캡쳐화면은 현장 연결의 거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멘트를 하는 제 뒤로 검은색 승용차가 휙 지나갑니다. 저때 멘트가 '지금까지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전해드렸습니다.'인 것을 생각하면, 현정은 회장이 탄 저 승용차가 끝 멘트와 맞물려 절묘한 순간에 지나간 것입니다. 다섯 차례의 체류 연장을 겪으면서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린 현 회장을 저는 이렇게 '등짝으로' 환송했습니다.

현대와 북한 아태평화위원회의 합의 내용은, 사실 흔한 말로 '레벨이 맞지 않는' 내용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여러 기사에서도 지적됐지만 제 아무리 대북사업을 주도하는 현대라고는 해도 대기업과 북한의 관변조직이 거론하기에는 무거운 내용들이 대부분입니다. 군사분계선 통행 문제도 그렇고, 체류문제도 그렇습니다. 또 이산가족 상봉 문제도 당국간의 협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진행상황에 따라 '앞으로 어찌될 지 알 수 없는' 일들 투성이입니다. 게다가 대북 제재조치는 아직도 진행형이고, 유성진씨 말고도 북한에는 아직 4명의 우리 선원들이 불안해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의도에서든 남북이 대화를 시작할 단초를 던져주었다는 것은 나름 큰 의미를 갖습니다. 이마저도 없었다면, 생떼같은 가장을 기다리는 연안호 선원들의 가족들도, 또 아직 가족을 보고 싶은 소망 하나로 이 더운 여름을 견디는 이산가족 1세대들도 작은 희망이나마 가지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