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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꽃' 수치 여사

입력 : 2009.08.11 16:05


11일 재구금 결정을 받은 아웅산 수치 여사는 미얀마 국민에게 '군부 독재가 언젠가 끝날 것'이라는 꿈을 갖게 하는 유일무이한 희망이자 상징적인 존재이다.

최근 20여년 동안 14년 가량을 구금 상태로 지내온 수치 여사는 군부 독재에 비폭력 저항으로 맞서면서 국제적으로도 민주화 운동의 아이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수치 여사는 미얀마 독립의 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딸로 태어났다. 아웅산 장군은 수치 여사가 불과 두 살일때 암살됐지만 수치 여사는 아버지의 정신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살아온 끝에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됐다.

수치 여사는 인도대사였던 어머니를 따라 인도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뒤 1964년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해 철학과 정치학, 경제학을 공부했다.

옥스퍼드대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간 수치 여사는 영국인 교수인 마이클 아리스를 만나 결혼, 슬하에 두 아들을 낳고 길렀지만 군부 독재에 신음하고 있는 미얀마의 상황이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1988년 모친이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귀국한 수치 여사는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위대에 무차별 발포하는 군정의 잔혹성을 목격한 뒤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수치 여사는 야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창설하는 등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정치적 지도자로 급부상했지만 민주화 세력을 탄압하던 군정에 의해 1989년 첫 가택연금 조치를 당했다.

민주주의민족동맹은 1990년 수치 여사가 갇혀 있는 상황에서 실시된 총선에서 485석 중 392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지만 미얀마 군정은 정권 이양을 거부했다.

수치 여사는 1995년 가택연금이 해제된 뒤 비폭력 민주화 운동을 이어갔고 수치 여사의 활동에 위협을 느낀 미얀마 군정은 수치 여사를 2000년 다시 가택연금시켰다.

수치 여사는 2002년 가택연금이 해제됐으나 2003년 또다시 가택연금 조치를 당한 뒤 매년 연금조치가 연장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수치 여사는 비폭력 민주화 운동을 벌인 공로로 노벨평화상과 유네스코 인권상, 광주인권상 등을 수상하며 정치적 지도자로 자리를 잡았지만 오랜 연금 생활로 남편의 임종을 지켜보지도 못하는 아픔도 겪었다.

미얀마 군정은 수치 여사의 남편인 마이클이 1999년 암으로 사망할 무렵 수치 여사가 영국으로 건너가 남편을 볼 수 있도록 했지만 수치 여사는 미얀마 재입국이 허용되지 않을 것을 우려해 미얀마를 떠나지 않았다.

올해로 64세가 된 수치 여사는 또다시 구금 조치를 당했지만 그에 대한 군정의 탄압 강도에 비례해 미얀마 국민의 '민주화' 열망은 더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방콕=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