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정 여성 쉼터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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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 안 착해요...
"남편 안 착해요. 너무 힘들어요. 도와 주세요…."
4년전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올해 34살 호앙 씨(가명)는 어눌한 우리말로 계속 이 말을 되풀이 했습니다.
부자 나라 한국에서 행복한 가정을 꾸릴 꿈에 부풀어 이곳까지 왔지만 지금은 그 꿈이 산산조각났습니다. 술만 마시면 계속되는 남편의 폭력 때문이었습니다.
너무 맞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셀수 없고, 이웃 주민들이 말리고 신고해서 경찰서에 가기도 했고요, 얼굴을 심하게 맞아 고막이 찢어진 적도 있었답니다.
견디다 못해 두 달 전 4살 난 딸을 데리고 가출해 다문화 여성 쉼터로 왔지만, 오히려 거액의 위자료까지 청구된 이혼소송을 당했습니다.
호앙씨가 폭력적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한국말이 서툴었던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병원에서도 경찰서에서도 모든 진술은 남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한국에 온지 2년이 넘어 국적취득이 가능한 조건이 됐는데도, 남편이 못하게 해서 오앙씨는 아직 국적도 취득하지 못했습니다.
쉼터의 도움으로 법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호앙씨.
그나마 쉼터의 도움조차 받지 못하는 여성들은 더 힘든 상황 속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돈으로 사온 사람(?)
시집에서 쫓겨난 23살 로즈(가명)씨는 임신 7개월째입니다.
한국에와서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만족하고 한국생활에 잘 적응해 왔었답니다.
그러다가 시아버지가 갑자기 필리핀 며느리가 싫다고 하면서 문제가 시작됐습니다.
갑자기 집에서 쫓겨난 로즈씨는 임신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 쉼터 관계자들과 집으로 찾아갔지만,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돈주고 데려온 것이니, 언제든 내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내내 로즈씨는 참 서럽게 울었습니다. 아빠 없이 태어날 아기 걱정 때문에요….
문제의 원인이 한국인 남성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해외에서 결혼을 알선하는 업체 대부분이 아무런 준비과정 없이 결혼을 주선합니다.
"20대 젊은 여성을 골라서 데려올 수 있다"는 류의 광고 보셨을 겁니다.
'돈주고 사온 사람'이라는 인식이 뿌리내린 것은 난립하는 이런 업체들 때문이지요.
한국으로 오는 대부분 여성들이 '속아서 왔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도 같은 이유입니다.
한국에 오면 무조건 잘 살 수 있고, 고국으로 돈도 많이 보낼 수 있다는 말에 빚을 져서라도 한국으로 오려고 합니다.
알선부터 결혼까지 일주일, 500만원에서 1,500만원의 돈을 업체측에 지불하고, 그나마도 대부분 알선업체가 챙깁니다.
불법 국제결혼 알선업체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힘들 것 같습니다.
◇ 신변보호 때문에 안됩니다….
취재하기 참 어려웠습니다.
다문화 가정을 위한 센터는 전국에 120곳. 쉼터는 18개가 있지요.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쉼터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정부기관에 전화를 해도, 다문화가정 관련 기관을 통해 물어봐도 쉼터의 위치와 연락처조차 알려주지 않는 겁니다.
분명 취재 의도와 방송 내용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을 해도 "죄송하다"는 답변 뿐이었습니다.
이유는 "결혼이민자 여성들의 신변보호"때문이었습니다.
남편에게 쫓기는 여성들이 대부분이라서 남편이 알게될까봐 그렇다는 겁니다.
결국 선배의 도움으로 섭외가 되어 취재는 했습니다만, 문득 걱정이 되더군요.
어려움에 처한 여성들은 어떻게 이곳을 찾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신변보호는 물론 이뤄져야겠지만, 그렇다고 찾아가야하는 여성들조차도 물을 곳이 없으니까요.
물론 누군가 도움을 주어서 찾아 오면 다행이겠지만, 대부분 여성들이 관련정책이나, 정보에 어둡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참으로 답답한 일이었습니다.
이곳 쉼터에 온 여성들은 다시 자활할 수 있는 교육을 받고, 한국어 교육과 직업훈련도 받습니다.
마음 편히 쉴 수 있고, 아이가 있는 경우 아이와 함께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까지 오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쉬움과 동시에 개선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역마다 지원센터가 있지만, 쉼터와 유기적으로 연계가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알음알음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취재를 하면서 정책의 통합이 절실하다는 생각을 새삼 해봅니다.
◇ 통계로 보는 다문화 가정
통계청에 따르면, 한해 결혼하는 남녀의 11%가 다문화가정이라고 합니다.
열쌍 중 한쌍 이상이 다문화가정을 이룬다는 말이지요. 국제이혼 건수는 2004년 3000건에서 2007년 9,000건으로 3배 이상 늘었고, (자녀 있는 경우도 13%) 그 중에서도 한국인 남편과 외국인 아내 간 이혼은 2001년 1,600건에서 2007년 5,800건이었습니다.
한 해 3만명 결혼하는 중에 5,800명이 이혼을 하는 것이지요.
다문화가정 여성의 콜센터 상담이 연 3만3,000건, 그 중에서도 가정폭력 호소만도 3,900건이라고 합니다.
◇ 에필로그
기사가 나가고 며칠 뒤에 보도국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저를 찾는 전화였습니다.
기사를 잘 봤다고 하시면서 덧붙인 말씀은, 결혼이민자 여성과 결혼한 한국인 남성의 고충도 다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문화 가정의 문제점 중의 하나인 '가정폭력'을 다루다보니, 다양한 사례를 담지 못한 부분이 아쉬우셨던 모양입니다.
후속 시리즈에서도 다른 사례를 다뤘습니다만, 이런 부분도 취재해 보겠습니다.
보도 이후, 출입국 관리 사무소에서 실태조사를 통해 도움을 주셨습니다.
시댁에서 일방적으로 이혼소송으로 이혼 판결이 나 다음달에 필리핀으로 강제추방 당하게 된(본인도 모르게) 로즈씨의 체류가 우선 1년 연장됐고, 호앙씨를 비롯해 몇몇 여성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피드백이 계속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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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장선이 기자는 2007년 SBS에 입사한 새내기 기자입니다. 지난해 수습 기자로서 이천 냉동창고 화재, 숭례문 방화 사건 등 굵직한 경험을 쌓기도 했습니다. 사회2부 사건팀의 '신형엔진'으로 불리며 기대주로 활약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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