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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뺀돌이 윌리'의 화려한 침묵(?)

입력 : 2009.08.06 10:04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별명은 '뺀돌이 윌리(Slick Willy)'다.

매력이 넘치고 현란한 말솜씨와 능수능란함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재주가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달변가로 소문난 클린턴 전 대통령이지만 5일 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난 여기자 2명을 데리고 로스앤젤레스 밥호프 공항에 도착한 후에는 마이크 앞에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북한 억류 140일만에 풀려난 여기자의 가족들이 그를 향해 열렬한 박수를 보냈지만 '뺀돌이 윌리'는 별 말없이 총총히 무대뒤로 사라졌다.

그러나 미국의 모든 언론매체들은 클린턴의 화려한 귀환을 대서특필하면서 그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집중했다.

클린턴은 이날 L.A. 밥호프 공항에서 취재진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실제 주인공은 석방된 여기자들이 아니라 바로 자신임을 충분히 과시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미국의 주요 TV네트워크를 통해 생중계된 여기자들의 공항도착과 가족상봉 장면은 웬만한 멜로드라마를 능가할 정도로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클린턴은 여기자 2명과 그들의 가족이 감격속에 재회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여기자들이 비행기 트랩에서 내린 후 5분여를 비행기에서 기다렸다가 뜨거운 가족 상봉의 열기가 다소 가라앉은 후 트랩에 모습을 나타냈다.

여기자 가족들을 위한 배려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별도의 카메라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기 위해 계산된 연출에 가깝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실제로 클린턴이 트랩에 내려서는 순간 현장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일제히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클린턴은 평양 공항을 떠날 때도 카메라를 철저히 의식하는 모습을 보였다.

먼저 비행기에 탑승한 클린턴은 여기자 2명이 비행기 트랩에 올라섰을 때 출입구에서 이들의 손을 잡아 안으로 안내했으며, 이후 트랩 아래에 대기중이던 카메라를 향해 성공적인 임무완수를 알리는 제스처로 가볍게 거수경례를 보냈다. 그의 거수경례는 군최고통수권자 시절을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클린턴이 이번 방북에 나선 것은 북한 측이 억류 여기자들의 가족들을 통해 그의 방북을 요구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클린턴은 지난달 24일과 25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제임스 존스 보좌관과 대화하면서 방북 문제를 협의한 후 방북 결심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시 클린턴은 자신이 방북을 통해 여기자들의 석방이 이뤄져야 한다는 확실한 보장을 해줄 것을 요구했다 후문이다.

CNN은 계산 빠르기로 유명한 클린턴이 여기자들의 석방이라는 성과를 확신할 수 없었다면 자신의 체면이 손상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방북길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여기자들의 석방이라는 확실한 결과를 보장받고 북한을 방문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위야 어쨌건 클린턴으로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귀환, 국내 정치무대에서 주가를 한껏 끌어올렸다.

미국 언론들도 클린턴의 이런 속내를 잘 알고 있지만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뺀돌이 윌리'에 찬사를 보내는 분위기다.

(워싱턴=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