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 주점에 오신 변영로 선생께서 내가 대학 간다고 막걸리를 주셨어. 그걸 벌컥벌컥 다 마셨는데, 잔을 다시 드리려니 찌꺼기가 남아서 바닥에 탁 털었단 말이지. 그런데 선생님이 느닷없이 뺨을 탁 치시는 거라. '이놈이 곡식을 버리는 놈이구먼!' 내가 지금도 술을 마시고 털지를 못해."
배우 최불암은 명동에 오면 가슴이 떨린다. 50-60년대 예술의 중심지인 명동, 그중에서도 김수영, 박인환, 변영로, 전혜린 등 예술인들의 아지트였던 주점 '은성'이 여기 있었기 때문이다. '은성'을 운영하던 이가 바로 최불암의 어머니 이명숙 여사. 그는 여기서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경북 상주 출신의 소설가 성석제는 막걸리 심부름을 하며 홀짝홀짝 마시다 길거리에서 잠이 들어 '배달사고'를 냈던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린다. 성년이 되어 처음 마신 술도 막걸리라는 그는 '막걸리는 곧 고향'이라고 말한다.

한국인들뿐 아니다. 유학차 한국에 왔다가 막걸리에 반한 일본인 하타 야스시(33) 씨는 다양한 막걸리를 만나려고 한국을 다시 찾았다. 진천 양조장도 찾아보고 전주 막걸리 골목에도 간다. 막걸리를 마시려고 청계산 산행도 나선다. 산 중턱에서 시원한 막걸리를 들이키고 그 힘으로 정상까지 오르고서야 막걸리의 참모습을 알았다는 하타 씨. "와! 막걸리의 가장 좋은 안주는 땀이네요."
SBS는 막걸리를 주제로 한 SBS 스페셜 2부작 다큐멘터리 '당신에게 막걸리는 무엇입니까'와 '막걸리, 와인을 꿈꾸다'를 다음 달 2일과 9일 오후 11시10분에 각각 방송한다.
27일 서울 양천구 목동 SBS 사옥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막걸리'의 시사회장에서 류상우 PD는 "막걸리는 그저 술이 아니라 히스토리(역사)와 스토리(이야기)를 가진 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농사일하다 밥 대신 먹기도 하고, 민속주점 상에서 벽에 낙서하면서 먹기도 하는 우리 생활 속의 술이자 문화 자체라는 것.

그러나 지금 우리 막걸리 문화에는 문제가 많다는 지적도 많다. 전국적으로 한두 종류의 막걸리만 마시는 등 다양성이 부족하고 전통 막걸리의 맥도 끊어졌다는 것.
시사회에 이어 열린 국내 생산된 15종의 막걸리 시음회에서 하타 씨는 "한국에서는 전통주점에서만 막걸리를 파는데, 그나마 한 종류의 막걸리만 판다"며 "와인처럼 다양한 종류의 막걸리를 골라 마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지적한다. 술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허시명 씨도 "전통적인 막걸리를 비롯해 다양한 막걸리를 전해야 한다"며 "일본의 '사케(청주) 학교'를 본떠 '막걸리 학교'도 짓고, 각 지역에 막걸리 마을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