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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위헌성' 결정도 무시되는 입법풍토

입력 : 2009.07.16 10:21|수정 : 2009.07.16 10:21

헌법불합치 법령개정 미뤄 입법공백 빈발 "입법의무 게을리한다는 비판 면키 어려워"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법률이 국회의 '입법의무 태만'으로 효력을 상실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된 것을 기념하는 제헌절(7월17일)이 다시 찾아왔지만 정작 헌법 등 법률을 제·개정하는 국회가 제때 법률을 고치지 않아 '입법 공백'이 초래되는 현실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16일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2007년에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법령 3건이 헌재가 정한 시한인 지난해 12월31일까지 개정되지 않아 해당 법령이 효력을 상실했다.

헌법불합치란 해당 법령의 위헌성을 인정하지만, 바로 위헌 결정을 하면 법적 혼란이 예상돼 일정기간 해당 조항의 효력을 유지하거나 한시적으로 중지시키는 결정이다.

통상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릴 때는 개정 시한이 제시되는데 이 시한을 지나면 해당 법 자체가 효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그전에 개정안이 국회의결을 거쳐 공포돼야 한다.

작년 말까지 개정되지 않아 효력을 상실한 법령은 공직선거법 26조1항 별표2와 22조1항, 공무원연금법 64조1항 1호 등으로 이들 법률은 모두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공직선거법과 관련해 헌재는 경기도의원과 전북도의원 선거구의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 가장 적은 곳의 4배를 넘겨 평등권이 침해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내년 지방선거가 1년도 남지 않았음에도 이 법이 효력을 잃은 채 방치되면서 예비 출마자의 정치활동 자유가 제한되고 있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공무원연금법에서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공무원의 퇴직 급여나 수당 일부를 일률적으로 감액하도록 하는 규정이 헌법불합치 판단을 받았다.

공무원 신분이나 직무와 관련 없는 범죄에 대해서도 퇴직급여를 제한하는 것은 입법 목적을 달성하는 데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범죄의 유형과 내용 등으로 그 범위를 한정해야 한다는 게 결정의 취지였다.

이에 따라 공무원 직무와 관련이 있는 범죄를 저지르면 퇴직급여가 마땅히 제한돼야 하는데도 법이 효력을 상실하는 바람에 아직은 해당자의 급여제한이 불가능한 상태다.

2002년 9월에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약사법 16조1항은 개정 시한을 정하지 않은 탓인지 아직도 방치돼 있는 경우에 해당된다.

당시 헌재는 "변호사나 공인회계사는 법인을 만들어 영업하게 하면서 약사로 구성된 법인의 약국 개업을 막는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법령 중에서는 현재 19건이 미개정 상태이며, 그나마 13건은 국회에 개정안이 계류 중이지만 6건은 아직 개정안조차 제출되지도 않았다.

또 교통사고처리특례법 4조1항이나 국가보안법 19조 등 위헌 결정으로 효력을 상실한 법 가운데 단순 위헌 결정이 내려지고 아직 개정되지 않은 법령도 22건이나 된다.

단순 위헌은 헌재의 결정으로 즉시 효력을 잃기 때문에 후속 입법의 지연을 놓고 국회만 탓할 수는 없지만, 헌법불합치는 기한 내에 개정하지 않아 법률 공백이 야기됐다는 점에서 입법부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다.

헌재 관계자는 "위헌이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법은 국회가 적기에 개정해야 하며, 시한이 지나 효력을 잃은데 대해서는 입법 의무를 게을리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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