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시작됐습니다. 미디어법 처리를 놓고 지난 연말과 올 2월 두 차례에 걸친 혈투를 벌였던 여야가 이번 6월 국회에서는 대치를 거듭하다 본회의장에서 동침까지 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 여야가 동반 점거 상황에 이르게 된 경위는 잘 아실 터이니 따로 부연하지는 않겠습니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정치가 실종됐다는 것, 더 얘기 해봐야 입만 아플 겁니다. 정치 대신 대치가 자리 잡아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킨 지 이미 오랩니다.
혈투와 활극으로는 모자랐는지 이제는 코미디까지 보여 줍니다. 레바논 파병연장 동의안을 처리하기 위해 열린 '원 포인트' 본회의에서 여야가 나란히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본회의장에 남아 철야 점거 농성을 벌이는 웃지 못 할 상황까지 연출해 내고 있습니다.
지난 1,2차 대전에서 본회의장에서 자일로 묶고 농성을 벌이던 야당.. 로텐더 홀에서 농성을 벌이며 야당의 자진 철수를 촉구하던 여당.. 여야간 감정의 골의 깊어지면서 여야의 격렬한 몸싸움은 고소 고발사태로 이어졌는가 하면, 국회 경위들과 야당 의원, 보좌진이 한데 뒤엉켜 벌였던 이종 격투기가 전국에 생중계된 것도 불과 석달 전입니다.
이제는 여야가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습니다. 여당의 강행처리를 막겠다며, 또 야당의 사전 점거를 막겠다며 국회의장 단상을 호시탐탐 노리며 적과의 동침도 마다않는 코미디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국회 사무처가 나서서 이 코미디에 깊은 맛을 더해 줍니다. 본회의장 점거는 불법이라며 혈투까지 마다않던 국회 사무처가 어제 밤에는 본회의장을 점거한 여야 의원들에게 이불과 침낭을 선사하며 '편안한 밤'을 위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본회의장 점거는 불법이라며 사정없이 끌어내던 국회 사무처가 갑자기 '친절한 금자씨'가 된 것은 왜 일까요? 지난 대치 때는 야당 의원들만 본회의장을 점거한 반면, 이번에는 여당 의원들도 점거에 동참했으니 알아서 모신 걸까요?
국회 본회의장은 지난번 야당의 점거 사태이후 요새화 돼 있습니다. 전자 개폐식 문이 달려 있어 손으로는 열수 없도록 돼 있습니다. 지난 점거사태 당시 야당 보좌진들을 대거 유입시켰던(?) 여닫이 창문을 뜯어내고 미닫이 창문으로 교체해 사람이 창문을 통해서는 들어올 수 없게 해 놨습니다. cctv도 계속 늘려 나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본회의장 점거사태로 인해 국회 운영이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그래서 말로는 되지 않으니 실제로 점거를 막기 위해 국민 세금 쏟아 부어가며 각종 장치를 설치한 겁니다. 그럼 뭐 합니까? 의지의 문젭니다. 여야가 대화보다는 대치를, 타협보다는 점거를, 절충 보다는 농성을 택하는 상황에서 백약이 무효일 뿐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국회 사무처의 각종 조치로 인해, 야당이 지난해 말처럼 본회의장에 몰래 들어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본회의장을 점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당시 야당 의원들이 이용했던 뒤쪽 진입로도 차단됐습니다. 결국 이번 원 포인트 본회의가 유일한 점거 기회였던 겁니다. 여당도 두 번이나 당해 봤으니 야당의 점거를 그냥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겠다며 동침도 마다않고 고난의 동반 점거 생활을 자청했습니다. 여야 모두 정치는 하얀 띠인데 대치는 노란 띠, 눈치는 검정 띠입니다.
국회법에는 법을 통과시킬 때는 본회의건 상임위건 위원장 석에서 망치질을 해야 합니다. 과거에 장소를 바꿔가며 해댔던 날치기를 막기 위한 개선책입니다. 그러다 보니 본회의건 상임위건 위원장 석 주변에서 여야 간에 혈투가 벌어지고, 특히, 본회의장에서는 위원장 석을 먼저 점거하기 위한 눈치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집니다.
며칠 지나면 이 코미디가 어쩌면 액션 무비가 될 지도 모릅니다. 이미 상임위에서는 수 십 차례, 본회의에서도 올해 들어서만 두 차례 경험해 봤으니 웬만한 격투는 자신감이 충만할 겁니다. 자신들이 그리 하는 것을 국민이 보고 편들어 줄 것이라는 자만에 차 있을 겁니다. 대한민국 정치의 수준은 이렇게 계속 하향화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회... 이제 '정치'는 없고 '대치'와 '눈치'만 남았습니다. 여야가 서로를 속이고 국민을 기만하는 눈치는 사라지고, 이제 국민을 무서워하는 눈치 좀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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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0년전 '출동 코끼리 기자' 또 '박병일 기자의 현장출동!' 등에서 맹렬하고 거침없는 시사고발 취재로 이름을 날렸던 박병일 기자는 현재 차장이 되어 정치부 여당팀의 현장팀장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에 이제는 연륜까지 더해진 깊이있는 정치 기사가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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