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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법인데..

남승모

입력 : 2009.07.13 21:33|수정 : 2009.07.26 13:52


세간에 자주 거론되면서도 사문화된 법이 있다. 법 해석도 법 적용을 받는 주체들에 따라 제 각각이다. 해석이 제 각각이니 누가 법을 어겼는지 불명확하다. 판단을 해줘야할 법원도 유독 이 법에 대해서 만큼은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

바로 국회법이다.

국회법은 제1조(목적)에서 "이 법은 국회의 조직·의사 기타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운영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말 그대로 민주적, 효율적인 운영에 기여해야 한다. 실상은 어떠한까?

비정규직법 처리를 놓고 여야의 기싸움이 치열하던 지난 6월말,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와 민주당 소속 추미애 환경노동위원장이 국회법을 놓고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 안 원내대표는 실업대란이 우려된다며 비정규직법안을 환노위에 상정해 논의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추 위원장은 사회적 합의는 커녕 여야 간사간 합의도 안된 상황에서 법안 상정은 곤란하다고 맞섰다.

지난 6월 30일 당시 대화내용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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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상수 원내대표

안건이 오면 먼저 상정하고 그 다음 옳고 그름에 대해 토론해야한다.

▶ 추미애 환노위원장

국회법을 봐라. 의안에 대해서는 여야 간사 협의 거쳐 위원장이 상정한다. 여야 합의 안된 것을 위원장이 어떻게 마음대로 상정하나.

▶ 안상수 원내대표

협의가 잘 안될 때는 국회법 기본원칙에 따라 안건 상정 여부를 표결에 붙여야 한다. 안한다면 직무유기다.

▶ 추미애 환노위원장

환노위에서 의안상정까지 표결에 붙인 적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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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모두 국회법을 근거로 들었지만 주장은 정반대였다. 국회법이 효율적 '운영'이 보다 '공방'만 더 부추긴 꼴이 됐다.

여야의 공방은 비정규직법 협상시한을 넘긴 지난 7월 1일 더 극명하게 나타났다. 한나라당 소속 조원진 간사가 추미애 위원장이 의사진행을 거부했다며 비정규직법안을 포함한 147개 법안을 환노위에 일괄상정했다. 근거는 역시 국회법이었다.

제50조(간사) ⑤위원장이 위원회의 개회 또는 의사진행을 거부·기피하거나 제3항의 규정에 의한 직무대리자를 지정하지 아니하여 위원회가 활동하기 어려운 때에는 위원장이 소속하지 아니하는 교섭단체소속의 간사중에서 소속의원수가 많은 교섭단체소속인 간사의 순으로 위원장의 직무를 대행한다.<신설 1990.6.29>

하지만 추미애 위원장은 같은 국회법 조항을 근거로 한나라당의 법안 상정이 무효라고 선언했다. 한나라당이 사회권을 대행할 당시 자신은 위원장실에 있었으며 의사진행을 거부하거나 기피한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

핵심은 과연 추미애 위원장이 의사진행을 "거부 혹은 기피"를 했는지 여부였다.

여야는 각자 자기 편한대로 해석하고 행동했다. 설사 누군가 법원에 판단을 요구했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정치적 다툼에 사법부는 관여하지 않는 게 통례다. 결국 비정규직법을 포함한 147개 법안은 상정이 된 것도, 안된 것도 아닌 비법적(非法的) 상태가 됐다.

관련 규정이 명시돼 있는데도 국회법은 아무런 법적 역할을 하지 못했다. 명목상 법은 법이되 실효적 법은 아닌 것이다.

실제로 국회법은 정치적 타협의 수단이지 가부의 판단 기준이 아니다. 법제화 과정만 봐도 알 수 있다. 국회법 개정은 여야 합의로 하는 게 관례다. 다수당이라고 밀어붙이는 경우는 없다. 국회 운영의 기본 정신이 대화와 타협이고 이를 법으로 조문화한 게 국회법이다.

이런 이유로 무엇이든 '되는 것도, 안되는 것도 없는 게' 국회법이다. 여야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을 할 수도, 아무 것도 못할 수도' 있다.

요즘 국회에는 '되는 건 없고 안되는 것만' 있다. 여야가 국회법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편집자주] 예리한 시각과 꼼꼼한 취재가 돋보이는 남승모 기자는 2000년 SBS 공채 8기로 입사해 사회부,경제부를 거쳐 정치부 정당 출입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특유의 적극성으로 활발한 현장취재를 통해 복잡한 정치 현장의 맥을 짚어주는 기사들을 전해오고 있습니다.